사랑하는 국제 영화제
나는 국제 영화제를 사랑한다. 그것은 공기를, 하바가 터지는, 어떤 것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서울은, 항상 하바가 터진다. 그것을 국제 영화제를 한답시고, 부산에서, 그나마 하바가 터지는 것이다. 학생들은 하바가 터지면, 그 터지는 기분으로다가, 공부를 잘하게 된다. 그것의 하바가 터지는 원리를 우리는 잘 알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은, 연예인을 한 번 보고, 씨비사백 브이텍처럼, 하바가 터지고, 갑자기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천년의 사랑, 천년의 유혹이다. 혹은 천장지구이다. 그것의 하늘을 어떻게 묘사할 수가 없고, 그것의 도박과 슬픔을, 사랑의 예감을, 안전지대, 중삼명채를, 어떻게 담아낼 수가 없다.......
사극이 어떻게 뱀극인지, 우리는 그것의 태초를 다만 과장법이라고 여겼고,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우리가 사극을 보면서, 단 한 번도, 뱀이 나오는 것을 실질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류성룡이나, 홍콩의 성룡을 보면, 임금이 입은 용포는 그렇다면, 뱀포인가 상상하게 된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뱀이 아닌 것이다. 뱀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연극에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찰라의 차원에서, 누군가 세상을 뜨는 것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사극을 찍는다고 했다. 우리는 허준, 이명래 고약, 엄복동, 그런 사극인 줄 알았으나, 허준, 닭강정, 유승준, 그런 사극인 줄 알았으나, 이렇게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여인천하, 야인시대, 징비록, 그런 사극인 줄 알았으나, 정난정, 난정서, 추사 김정희, 그런 사극인 줄 알았으나, 다만 시원하게는 사극이었던 것이다. 사기에 보면, 강의 어떤 지역에서 사람의 시체가 나왔는데, 그것이 중국의 것인지 묻는 편지가 나온다. 중국 황제는 그의 국민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것의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다. 어쩌면 그 둘은 일치하는 것일 것이다. 사기와 사극이, 뱀의 단순한 일본을 넘어서지고 못하고, 그만 하나가 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것은 찬란한 것이다.
내가, 어느 배우 협회 대변인 같은, 싸가지 없는 년을, 차마고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고, 도올 김용옥을 닮았다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혹은 공중에서, 노래방 도우미를 닮았다고 즉시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컨네이너 항구의 엘리게이터들 같았다. 뭔가 맞는 말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는, 차이와 차별이, 차이나가 있는 것이다. 씨더 차별차이나. 씨지 차별차이나. 그런 것이다. 혹은 씨엔엔 호텔. 영어 공부하는 분위기로는 좋으나, 내가 공부했던 채널과는 근본적으로, 차별이, 씨지 차별차이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극은, 강변의 뱀극이 되는 것인가? 그것도 또한 맞는 것이다. 이제니. 이제니와 이제는은, 서로 이제니, 말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말장난에 낄 수 없다. 아는 것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기, 그런 왕뚜껑이 없기 때문이다. 비싼 야구모자를 쓰고, 왕뚜껑을 먹다가, 모자챙 끝이 라면 국물에 젖고 마는. 그것은 세인트 세이야의 슬픈 브금 같은 것이다......
노량진은 필수적이나,
금세 뱀이 지나는 것 같은 착시 같은 것이 있다. 노량진은 건강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강사도, 아가씨, 아가씨, 내가 예전에 시로 썼던 것은 가볍게 무시하면서, 아가씨, 아가씨,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싫다면서, 일종의 무한도전처럼, 무한하게, 계속해서 주자에게 노래방 도우미를 편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끊임없이 부산 아가씨 찾는, 그것들의 강사도, 신체가 건강하다 보니까 주관적인 세계관이 뚜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이 없다 보니까, 금세 지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건강을 놓칠 수도 없고, 노량진도 놓칠 수 없고, 노래방 도우미도 놓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탐진치이다. 아니면 하는 수 없다. 코울리지의 엔션트 마리너스에서처럼, 물뱀이 지나는 것은 좋은 징조인 것이다. 건강한 것이고, 그것은 진정, 탐진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이, 드디어 알바트로스가 되고, 이글이 되고, 다만 날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되고, 그리고 엔션트 마리너스의 물뱀이 되는 것일까? 나는 전기 충격을 주면, 그린 마일처럼, 갑자기 똑똑해지고, 외국어에 능통해지며, 수학 문제를 청소하다가 갑자기 잘풀며, 그렇지는 못해도, 갑자기 헐크처럼 변하고, 그렇지는 못해도, 머리에 충격을 입고, 뱀처럼 자기를 흐물흐물 느끼고, 전류가 계속 흐르는 것 같으니까, 일본의 기시 총리처럼, 겉모습은 인간이어도, 마음은 뱀인,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미술사에서의 자포니즘, 자포자기가 되는 것이다.
만 번의 전기 충격에, 한 번의 뱀이 나오는, 성공적인 실험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레보러터리 엔지니어는, 왕에게 아부하면서, 생닭을 유지할 수는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군수 산업도 그렇다. 갑자기, 내가 야수의 심장으로, 멋지게 검수원 생활을 하니까, 숱한 동종? 직업의 급여가 끊긴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사탄과의 접경지역까지 내몰리게 되고, 드디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생닭이 내몰리게 되어, 매진한 결과, 그렇게 빛나는, 완벽한 무기와 기계들, 항공 어떤 것들을 생산하게 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가정이고, 가정에서 가장 호랑이처럼, 다른 여자에게는 그렇게 친절하나, 멍청이처럼, 가정에서는 호랑이처럼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시할 수 있지만, 우리가 빈 공간에서, 그것을 또한 완전히 없는 것으로, 외계 플러스 인의 썬더처럼, 그것이 고양이가 되었던 것처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그래서 우리들은, 영화제의 영화들이, 모두, 사극의 전초전, 그것의 그나마 인격적인 사후 지경, 혹은 그와 같은 레보러터리의 주변 풍경, 이문열의 변경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단순하다. 코브라이다.
우리는 코브라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당연히, 유럽처럼, 사탄과 천사가 공존하는 시공간을 준비해야 한다. 코브라 헬기는, 그것의 태극기와 같다. 우리가 전두환과 노태우를 극렬하게, 온몸과 마음을 다해 비판했던 것처럼,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다른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윤석렬을 비판할 수 없는 것도, 그가 약간, 기시 총리처럼, 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시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나마 안경을 쓰고, 학생이나 교수처럼 보여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드라마가, 그렇게 일본이 수준이 높다. 어쩌면 뱀과 인간의 경계를 정확하게 구사해서 그런 결과를 얻었던 것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정신의 여유 때문에, 도리어 뱀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한 드라마들을, 케이 한류, 많이 생산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이 완벽하게 구분한 것인가? 거기에 부산 국제 영화제와 같은 긴장이 있다. 긴조. 혹은 긴자. 그런 것이 있다. 항상 한국은 그런 것 같다고 여겨졌고, 항상 뱀과 인간, 학생으로 이뤄진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집에서, 식구들 중에, 한명씩, 개와 고양이, 그렇게 변할 때는 참을 만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고, 한국에서는, 백백교가 일어나고, 드디어 일본이 문화적으로 승기를 잡는가 싶었더니, 전반적으로는 한국에서 백백교가 승리하지 못하고, 통일교, 신천지, 그런 여자들을 이순신 장군이 내몰고, 여수 앞바다에서, 울돌목에서 죽이는 것이 아닌가? 일본에서, 승기를 잡고, 승리는 모든 범주에서의 승리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식구들의, 서양적인 음식들을, 식기들을 즐겼으나, 금세 세계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그것은 문학의 힘인데, 이광수의 무정이, 일본인들의 가정에, 뱀을 발생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섹스를 하고, 근친상간을 하고, 그런 상징적인, 마를린 먼로, 섹스상징적인 뱀이 아니라, 일본인이 세계의 중심, 이 우주의 중심 같은, 실제의 뱀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일본 청년들의 가미가제 특공대는, 그것과 연속하는 뱀이 있다.
그에 비해
삼별초의 난은
개여울에 주저앉은 것일 수 있다.....
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