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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독일 사람들은 정말 헤겔을 사랑하는가?

by 마음대로다 2024. 10. 17.

독일 사람들은 정말 헤겔을 사랑하는가?

 

 

 

 

 

 

 

 

얼마나 서양은 사상가나, 철학자, 이론가, 교육철학자들이 많은가? 그것은 최인호 원작의 겨울 나그네 드라마 같다. 우리는 다시, 그레고리안 성가를 배경으로, 브금으로, 전투기에 올라타는 파일럿 같다. 그런데 어째서, 자웅동체, 그것이 아니라, 영겁회귀, 그것이 아니라, 영원한 에너지를 쓰는, 초전도체 비슷한, 그런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비행기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가 추락하는 것인가? 당연히 인간은 추락하고, 흑인이 있는 아프리카, 그 위에 있는 유럽의 사상가들, 그들의 사상들, 이런저런, 신학과 예술, 그리고 문학들은 추락하는 것 같지가 않다. 최인호 원작의 겨울 나그네 드라마는, 영화가 아닌 것은, 그것을 우리에게 문제로 남겨주고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순수한 사람들이, 피실험자와 실험자가, 영원한 지식의 진보를, 아날로그하게, 그러다 사람들이 죽는 것의 어떤 것들의 배경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보편적인 것이다. 모든 범죄는 그것의 직접성만 제외하면, 금세, 보편적인 것이 된다. 아편과 코카인, 그것을 줄여서 코인이라고 하지 않겠지만, 헤로인, 히로뽕, 그 두 가지가 연극이나 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겠지만, 멍청하게끔, 그것으로부터 직접성을 벗어나면, 들어맞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범죄는 심각한 것이고, 보편적인 것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것의 일 편이, 이 편이나 삼 편으로 넘어가면서, 일본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추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인호는 이름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슨 잡지 최신호 같기도 하고, 그것의 별책부록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 신현균도, 최근에는 신형 자동차 디자인이 나오면, 신형 모델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 이전에는 최인호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대학 영화인 줄 알았더니, 금세 히로인은 헤로인이 된다. 남자가 되어서, 수염을 기르고, 그쪽 텔레토비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그것의 평행사변형이 끝까지 간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진정한 철학자는 누구일까? 계량한복을 입은 사람일까?

 

서양의 철학자들도 추락한다.

 

그들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비결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사라진 다음에는, 철학은 인기를 끌겠는가?

 

헤겔 철학을 예를 들면,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을 배우는 사람이 필요하다. 헤겔이 헤겔 철학을 가르쳤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대학이, 예나, 그것은 꼭 한국말 같다. 그래서 예나 시대. 그런 말도 대단히 멋지고 그렇다. 그런데 헤겔이 헤겔 철학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정신현상학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반드시 중심이 이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겔의 철학적 저작들도, 다들,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수사학과 꾸밈음, 그리고 베티나, 그리고 농담들을 가지고 있다. 군인처럼 달리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냥 구르고, 대충 구르며, 달리기를 포기하면서 달리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언급할 수 있는, 존재의 권위를 가질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미궁으로 남는다. 그래서, 헤겔을 가르치는 이가 있고, 그것을 배워서 누군가 헤겔을 가르친다면, 반드시 힘이 떨어지고, 중심이 희미해지며, 색상이 바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속절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에세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버려지는 것인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버려졌다가, 버려지지 않았다가, 버려졌다가, 버려지지 않았다가 하는가? 누가 오대양 사람들을 죽게 하였는가? 내가 어떤 사연을 말한 적이 있지만, 그것에 대한 뚜렷한 물증은 없다. 그리고 심증도 점점 희미해진다. 헤겔이 스피노자를 그렇게 칭찬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시대정신인 것이다. 모두가 칸트의 물자체가 될 수밖에 없는데, 스피노자는 내가 보기에는, 그의 저작은, 명나라로 모여든 전 세계의 은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테두리와 범주가 따로 없는 일원론적 신학은, 문학적 호흡과 매우 비슷한 것이다. 그것을 계속 읽다가 보면, 얼굴이 은색으로 바뀌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레지던트 이블에서, 친구의 다급한 전화를 받기 전에, 먼저 화장실에서 발견한 자기 모습에 놀라는 게임의 첫 장면이 있는데, 매우 다양한 옷차림이 가능하고, 섹시하고, 옷이 하나도 없고, 체격도 다르고, 아무튼 그런 것이 있다. 그렇다면 헤겔을 계속 읽으면 어떻게 되는가? 헤겔을 계속 읽으면, 그레고리안 성가와 함께, 헤겔을 계속 읽으면, 반드시 천은사의 스피노자를 발견하고, 적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원전을 읽는다는 것은, 세기말의 사랑과 같다.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 드라마 일 편에서 보면, 그것의 대학적 호흡이 유일하게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선배가, 다해와 손창민을 연결시켜주는데, 그는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그림자 같은, 약간은 사탄 같은 역할이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최신식이다. 어쩌면, 강력한, 쉐도우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당시 대학에는 너무 많았다. 학생 운동을 하면, 공부는 담벼락을 쌓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은 그레고리안 성가가 되어갔다. 우리는 모두 철학적 직관으로만 살았다. 그래서, 철학적 직관, 문학적 직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우리는, 방법론적 사탄으로, 매우 숨이 가빠졌고, 떨렸고 그랬다. 대신에 영화에서는, 안성기가 그와 같은 사탄적 순기능을 압도하였다. 그것은 씨유 편의점, 압도 도시락이나 김밥, 그리고 샌드위치에서 잘 드러나 있다. 드라마가 대학을 흉내 낸다는 것 자체가, 학점이 없는 대학생 같은 것이다. 그래서 손창민이 다해와 부딪힌 것이, 도리어 유일한 학교의 추억인 것이고, 유일한 그레고리안 성가이며, 다해가 쓰러져 있다가, 존재는 서 있는 것이지만, 그래서 그것의 정의를 위해서, 다친 몸으로, 다시 서서,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너울대는 시간이 아름답고, 나중에,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손창민이 같은 교실에 가서, 혼자 있던 그녀를 만나고, 둘이 서로 키스하는 것이, 그냥 그렇게 금오신화의 이생규장전만 같은 것이다.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이다. 진실한 선비는, 자의식은, 다만, 여행자일 뿐이며, 여자는 천주실의, 혹은 혼천의, 혹은 천으로 주로 이뤄져 있는, 천주학인 것이다. 손창민은, 처음으로 학문적 여래장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 범죄인이 된 것은, 다만 논리적인 위치 변경인 것이며, 변증법적 압박 아래서, 그와 같은 창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를 옷 입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빛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찾아, 교실을 오가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남의 수업을 들여다보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말로 표현하면 다만 노조키위원장인 것이다.

 

헤겔만 계속 읽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칸트를 계속 읽게 되면, 사람의 존재가, 다만 물자체의 분재가 되는 것이 직관되지만, 스피노자는, 은빛의 마리아 로봇, 그렇다면 헤겔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헤겔은 사람이 된다. 헤겔로도 마찬가지, 물자체의 분재가 되고, 논문 분재, 요약 분재, 헤겔 용어적인 인정 투쟁 분재가 되고, 그것의 말의 능력은, 사람들과 천은사, 은어, 은어 밥 같은 것이 되지만, 헤겔을 계속 읽다가 보면, 항상 다해가 되어서, 학생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서, 그 시절의 대학으로, 강의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모는, 털을 뜻하고, 습은, 너무 비처럼, 음악처럼, 습하고, 물방울이 맺힌 것이 아니라, 학교 풀라톤의 습기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모습인 것이다. 습격한다는 것도 그렇다. 도강한다는 것도, 우리가 천장에 스파이더맨처럼 붙어있다가, 교수가 놀라서, 학생 뭔가? 물으면, 죄송합니다, 도강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서요, 그러면 교수는, 세상 바깥은 습하고, 어두운데, 형광등 켜져 있는 곳에서, 학생더러 내려오라고 하고, 학생만큼은 구석 빈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는 것이다. 학생. 혹시 학생 이름이 삭개오인가 물으니, 학생이 놀라서, 어떻게 제 이름이 오석개인줄 아셨나요 하는 것이다.

 

......

 

최인호의 드라마에서의 사탄의 설정은, 주인공 남녀보다 강력한 것이 있다. 그리고 실재로도 강력하다.

 

김희애는, 그와 결혼해서, 운동선수나, 누군가 개그 프로그램에서 말했던, 우리 사는 곳 어디에서 어떤 여자 친구와 싸우는 조직 깡패 같은 이를 낳을 수 있다.  운동선수도 착할 수 있고, 조직 깡패도 다시금 영화배우, 조연이 되고, 조연이 되었다가, 사람들과 친해지고, 연기도 늘어서, 주연을 꿰찰 수 있는 것이다. 구슬이 세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공부가 여자일 수 있는 것이고, 여자가 그와 같은 눈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가, 얼마든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 강철비 처음 장면처럼, 그와 같은 학교 풍경은, 계속되는 드라마 속에서, 논스톱으로다가, 부서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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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들도 그렇다.

 

오 타넨바움. 드라마 일 편의 기억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