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두 가지 방향: 화엄과 천은
김청강이라는 기교과 선배가 있었다. 탤런트 아무개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하고, 그리고 바다 해조류 중에 비슷한 것이 있기도 하고, 아무튼 푸석한 운명의 것을 직감한 여자는 내게도, 그렇게 마냥 푸석했었다. 백번을 성형수술을 하면, 이번 이시영처럼, 전지현이 될 것 같은, 그나마 얼굴 골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때는 그렇게 농담 삼아, 그런 말들을 하지만, 사람들이 이제 천은사로 내몰리는, 내몰리션 맨, 때에는 그런 말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대충, 때로는 직접적으로, 매우 큰 슬픔이다. 어쩌면 표현주의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영주를 지날 때마다, 내 예뻤던 영주를 생각하듯이, 현주는 아주 지금 작살났다, 영주를 타고, 데이스타를 타고, 영주 시내를 들어갈 때, 너무 웃음이 나와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을 눈치 챈 어떤 예쁜 소녀가, 아주 질색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다른 곳을 보았다. 그것은 반기문 사무총장이었던 것이다. 말들이 그런 데에나 쓰이는. 다른 데에는 쓰일 곳이 없는 반기문 사무총장. 구띠 에레츠도 그렇다. 다른 데에 쓰일 때가 없다. 김경재도. 경제 발전 말고는, 화엄과 천은 사이에서, 다른 데에 쓰일 때가 없다. 그들은 오직 인생이며, 시편의 내용처럼, 오직 인생 뿐임을 알게 되는 것들이다. 그들은 늘 화엄에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러나, 실은, 단말마, 반말마 같은 천은인 것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천은을 남긴다. 그것은 말만 해도 슬픈 것이다. 예쁜 여자가 말만 해도 예쁘고, 오토바이는 다만 운전만 해도 즐거운 것처럼......
천은은.....
청강을 할 때마다, 그래서 김청강이라는 일년 선배가 생각이 났다. 류숙이 찾는데, 학과 동기, 그러나 여자였기 때문에, 여자가 압도적이었던, 씨유 압도 도시락, 김밥, 샌드위치, 그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신학과 여학생들은 기교과와 거의 함께 살았다. 그런데 류숙이 조그맣고, 웃기 좋아하고, 내게 혁명적인 신학인이라는 책을 선물했었는데, 너무 체구가 아이 같고, 말의 내용이 없이 웃기만 하고, 어쩌면 한효주 같은, 너무 여성적인 매력이 없이, 그랬던 것이 아쉬움이 있었다. 류숙이 찾는데, 내가 대답도 없이, 오후를 그렇게 지냈던 모양이었다. 불과 같이 화를 내면서, 내 머릿속의 구조주의를 염탐하는 자객처럼, 어쩌면 넷플릭스에서 지옥이라는 드라마에, 이상하고 무서운 연기 괴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목소리로, 어째서, 어째서, 만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깜빡했다 하고, 김깜빡, 다행히 전화를 먼저 해서, 시간 약속을 잡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김청강은, 불쌍한 광주의 김금희처럼, 그러냐고 했다......
나는 모든 대학의 청강 과목을 그렇게 들었다.
나는 철학을 부술 것처럼, 국문학이나, 국사학은 멀찌감치에서, 대포와 캐논으로, 캐논인가? 캐논이 아닌가? 거의 기동이 불가능할 만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내게, 서로 무수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하철이 중요하지 않다. 지하철이 또다른 지하철과, 그리고 역세권과, 그런 비슷한 고향 교회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리고 다른 학교들과, 패션권, 그리고 무엇보다도 늦은 퇴근길의 젊은이들의 삶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한국의 제일급의 열목어와 같은 젊은이들이 미국 영화를 두고 전쟁할 때도, 일본 영화에 매료되어, 그들 드라마의 거리와 건물들, 자연들에, 한국 선박에 월선을 시도하는 왜구들처럼, 파고들었던 것은, 그것이 다만, 우리들의 정신에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얻는 것도 있고, 실망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의 끝은, 언제나 나였다. 책은 덮었다가, 말았다가, 덮었다가 말았다가 한다. 그것은 꼭 성기나, 성희롱 같다. 책을 많이 읽어도 성희롱이 되는 것이다. 여자들은 책이 자기들의 푸마푼쿠, 음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공부를 못해도 되는, 그런 월권을 가졌다. 우리는 마지막에, 야곱처럼, 야수처럼 심장과 씨름하면서, 이만기처럼 씨름하면서, 모래사장에서, 바지사장이 되느냐, 마느냐, 얼굴 변신자가 되어서, 한 입으로 두 혀가 나오는 참상을, 자기가 의식하고, 남들이 보느냐, 그런 기형적인 경찰권의 월권과 남용을 보면서, 서남용, 그런 데에서도 성희롱 같은 장편의 독서가 가능한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에게 말을 맞춰줄 필요가 없다. 너무 오래 광양에서 지내도, 그런 년들에게는 성희롱이 된다. 아주 현주년은 파탄이 나는 것이다. 영주년은 두려워서, 같은 베트남 처녀처럼, 다행히 베트콩은 아닌, 눈을 꿈뻑꿈뻑 뜨고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못생긴 김청강이 낫다는 말을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옛말에, 한말 보리쌀보다, 목소리에 힘이 있고, 다른 회사에도 전화가 가능한, 김청강이 낫다고 하는 것이다.
천은은 예술이 아니다.
다만 화엄이 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얼마나
책을 성희롱할 것도 없는 것들이
김정은처럼 자위를 많이 해야
천은사에 갈 수 있는 것일까?
여행객들은 그냥 한 번에 돌지만,
한번 지나면서 통행세를 낸 적 있지만
갈수록 괴물 같은 김천은의 지배는 희한해진다.
성희롱으로 고발해겠다던
존만 년도
공룡 존만 년 똘 년도.....
같은
한글날의
북한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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