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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우리는 새로운 정리의 시대를 살고 있다. 헤겔과 동양철학

by 마음대로다 2025. 3. 13.

우리는 새로운 정리의 시대를 살고 있다. 헤겔과 동양철학

 

 

 

 

 

 

 

 

우리가 사탄과 앤젤 두 진영의 무소속, 무속, 그런 경험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결국 한나라당이나 그런 당, 민주당, 민주정의당, 아정당, 그런 것에 속할 것을 뻔히 아는 것일 것이다. 사탄과 앤젤, 두 진영 모두에게 무소속인 것들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선거할 때마다 만날 수 있지만, 그 어떤 반가움, 사람 얼굴, 아정당, 신아정이 없는, 박정아가 없는, 그런 자유로움이 다만 몇 평이라도 햇빛이, 그런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를 갈 때, 그가 다시 민주당에, 민주정의당에, 입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서현의 퍼스트 마이너에 잘 드러나 있다. 결국 정당에 속하게 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둘은 상관이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기독교인이 정신의 계단을 걷거나 오르지 않고, 다만 아직도 기사와 이적을 바란다면, 그와 같은 환호 속에서, 사탄은 누군가 자기를 아직도 좋아하는지, 그런 러브레터로 해석할 것이다. 미호. 누군가 죽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을 좋아하는 앤젤도, 그런 기사와 이적, 사람들이 몰려드는, 기초적인 모습을 보고, 따뜻함이나, 그런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펠레나 메시, 마라도나, 우리는 박정수를 보느라고, 김정수, 박정수를 보느라고 마라도나를 잊은 것일까? 사탄은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좋아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와 같은, 세상의 반을 깨닫지 못했고, 메시라는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아저씨와 이야기 나눈 것처럼, 우리는 그때,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이, 서양 유럽 열강의 한 축으로도 될 것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경기도 오산이었던 것이다. 까라면 까는, 제발 까라마조프, 그런 기층 연예인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악인이 너무 많다는 한국 영화의 제목적인 푸념도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외연이 넓다 싶다. 여고생 둘이 걷다가, 약간 섬을 타는 남학생이 지나가자, 여학생 한 명이 저기 니 남자 친구 지나간다 하니까, 약간 못생긴 그 남자가 초능력적인, 칸트의 트렌젠덴탈한 능력으로 그것을 듣고, 약간 쳐다보고, 여자 둘은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장면을, 통속적이지만 아름다운, 콩트에서 다시 보면 늘 즐거운, 백전백승의 에피소드가 원래는, 기사와 이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고, 사탄이 좋아하는 내용들이었다고 하면, 우리는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늘 기쁨의 연옥으로 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기독교의 만행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마야의 존마냐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 서양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지만, 어쩌면 그 이름이 존쓴보다 너무 지독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브라자. 존슨. 드디어 세상은 종말에 도달한 것 같다. 아포칼립스. 유칼립투스. 코알라. 그런 모든 말들이 지금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숱한 연애소설들을 읽고는, 사탄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매우 기뻐하는 지경이라는 것은, 처음 듣는 말이고, 인정할 수 없는 말이며, 그럴 것이다. 아무튼. 그러나 사탄에게도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고, 기회가 찾아오는 때가 있고, 기회를 잘 살릴 때가 있다고 한다면, 연애소설은 그 모든 코인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임마누엘은 실비아 크리스텔 김치처럼,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적 사랑이며, 아벨라르, 나빌레라, 그리고 검은 수녀들 같은 것이다. 수녀들도 사랑하고, 신부들은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고. 한국어를 공부하고는 진짜 신부가 되는. 이전까지는 가짜 신부였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구조라는 것이 과연 테오티후아칸, 실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칸트. 임마누엘 칸트. 그것은 문학을 했다가, 철학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탄에게는 형식이란, 늘 언제나 칸트, 치고박고, 터지고, 그런 것들밖에 없다. 대충 세우고는, 붕괴되는. 일종의 붕괴의 미학이기 때문에, 쾰른, 얼른 무너지는 모습으로, 그와 같은 사탄의 붕괴의 미학에 저항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헤겔은, 미학적 판단으로서의 판단력 비판에서 흐지부지 되는 것을, 헤겔은 저항했는지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 것이면, 그나마 금이빨이라도 사람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좋지 않는가 하는 주장은, 나치에게서 먼저 제시되었었다. 가치나, 다치는 없다. 라치도 없다. 사람들은 한국어가, 기초적인 형식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것일 수 있다.

 

누군가 갑자기 그것을 잘했는 모양인 것이다. 복잡하고 힘든, 그런 시기였는데, 누군가 그처럼 공부를 밀어주었던 모양이고, 끌어준 모양인 듯도 하다. 그렇게 맨 처음의 틀이 보이자, 전세계의 사탄 조직은 비상사태를, 모든 폭탄을 집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박열이라는 싸인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 한국에서 대박 사건을 보인 것으로도 얼마든지 여길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신문지상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무정 같은. 그것은 결국, 연애와 철학의 중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무정이나 읽고, 그렇게 다 읽고, 결국 조개종이나 함께 까는 일을 한 것으로, 국문학의 영혼이 소멸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바다. 다만 여수밤바다가 아니더라도. 람바다. 전람회바다. 람보르기니...

 

카니발의 아침에서, 우리에게 들리는

 

존 마냐......

 

헤겔은, 그것의 끝까지 가려고 엄청 노력하였다. 그래서 인류의 정신사에서, 조개종 까는 임무를 독일이 담당하게 된 것일 수 있다. 헤겔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소망의 헬멧이다.....

 

다들

 

존 마냐

 

칸트

 

존 마냐

 

칸트

 

존 마냐

 

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