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야차 불만과 일본 유도의 무금 사태가 갖는 감각적 진리 상태를 두고
일본의 미니시리즈가 재미가 없으면, 세상은 종말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애니 해슬램. 일본 천주교이다. 내가 일본어를 못하는 것은, 내가 하는 억양대로 일본 사람들이 사용할까 걱정해서일 것이다. 그것의 노골적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다보니 나는 아직도 일본어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배우들의 일본어는 옛날과 많이 다르다. 얼핏 들으면, 내 목소리 비슷하고, 한국어 비슷하다. 문학자는 어학자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아스카 문명은 어학자들의 갓파 나라이기 때문에, 어학자는 그것을 잘 갈피 잡고, 흐르는 예수님의 풍경 아래서 배신하는 베드로의 시간을 맞추기도 하고, 안맞추기도 하는, 귀엽고 가와이 예쁜 점쟁이처럼 지내는 것이다. 한참 한류가 유행일 때 어떤 일본 번역가가 그랬다. 번역하고 있으면 행복한데, 한국어는 차분하고, 문장이 무게가 있고, 음악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과분한 것으로서, 식민지의 거대 시계와 같다 하겠다. 일본인 친구 시게루가 그런 말을 했다. 한번 그것이 드러나면, 국가간에 언어를 바꿔 사용하지 않는 이상 무척이나 오래갈 것이라고. 시게루는 늘 감옥에 있다고 한다. 잔혹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러서 그렇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웃고 있는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한국어가 못생겨 보이는 때는 김수영과 자유 이념의 길항관계에서나 그러하다. 그의 역사적인 대립자, 안타고니스트? 대항마는 박정희였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박정희는 일본을 닮았고, 찢어지게 가난한 김수영은 그것의 반대급부로다가 점점 달아가는 탁구공처럼 우연히 손에 보이는 한국을 닮았다.
대체 유도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었을까? 역도산. 역도를 하겠다는 것이었을까?........
추성훈의 여러 기사들을 보면서 음악을 듣자는 것이 아니다. 그가 실밥 터질 것 같은 양복을 입고, 이런저런 외교적인 관념을 피력할 때는 유도 가꼬이 그런 외침과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만일 선비라면, 그것은 내 친구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나드이다. 누가 백제의 야쿠르트를 통과하겠는가? 스왈로우즈가 통과하겠는가? 어쩐지 광주에서 제비들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도저히 접근불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엇을 하자는 것이 없다. 거대한 다리를 놓고자 한다 했다. 나는 동의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때로는 대마도를 지나친다 해도, 다리가 있다면, 사람들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배처럼 세상에 떠 있고, 견뎌야 하며, 적어도 친구와 후배 학생들에게 보따리상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웅변처럼 보일 것이다. 다리가 놓일 수가 없다. 그리고 관념뿐이라면, 그것은 오직 나의 것이다. 한국의 최대 체급의 여자가 유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상대는 카자흐스탄인가 했을 것이다. 그것의 지독한, 히도이, 오래된 고려의 모습은, 현대화된 스포츠 교육에서의 유도 정신을 가볍게 무시하는 듯 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으로, 한국 코치는 시끄럽게 떠들었고, 선수는 그것을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유도가 체급을 올려, 한번 힘쓰고는 보다 몇 초 동안 헉헉대는 천천한 걸음이 대표 표상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의지하는 것이 있음이다. 의지하는 제법 괜찮은 잡지가 있는 것이고, 이름이 유명하지 공부를 잘하는 문과 친구 사다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젠가 모든 범주들을 만나, 유도의 종주국은 자기의 멋진 상자를 늘 있는 좋은 자리에 놔두고, 다른 공부를 하던, 회사에 들어가던, 결혼을 하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카시. 일본 말이 일본 사람들을 해하는 클래식의 형식적 극치에서처럼, 선생도 없고, 지도도 없고, 내 가장 좋은 관계적 이름으로서의 효과도 없으며, 일본 자부심으로서의 무한도전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몸집이 다소 과하거나 괴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연속적으로 생각하고, 높게 여기며, 한번의 도장 경험으로서 멋지게 여기는데 주저함이 없으나, 그 강렬한 우리 뇌의 비싼 장식의 만년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사라지는 것에는 열매가 있다. 거대한 창고에는 십분의 일로다 파는 옷가지들이 있다. 일본은 얼마나 클래식을 잘하고 싶었는지.......
그러나 잘 모르는 야쿠자처럼 오만하고, 허구한 날 빠가야로나 외치고, 돈이라는 고인돌이 조금 늘어났다고 해서, 외국인들을 헐뜯으면서 이미 자기 안의 외국인성이라는 갓파를 일찌감치 말려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유도가 자기의 옷감을 세상에 자랑할 때가 있었다.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의 땀냄새가 전통이 있다는 것? 그러다가 산뜻하게 양장으로 갈아입고, 선남선녀가 외출을 하면, 화성에서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에 하나로도 뽑혔었다.
*
자고 일어나서, 옷감을 자랑하는 것이다.
*
며칠 후
왜?
난데모나이......
창에 비친 자기 얼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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