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화에나 가두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뭐가 비슷하면서도 오래가며, 지금까지도 통찰의 깨방석이 되겠는가?
그것은 '그림자'와 '대리석'의 결혼이다. 자식은 갑자기 필름이 끊기곤 하는데, 아버지는 대게 그 위에서 노래하고 지랄일 때가 많다.
구름은 무엇이고, 프리메이슨은 무엇인가? 둘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일 것이고, 철학자 헤겔의 무관심 학생들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티루스가 차라리 좋고 그리워지는 것이 걸리벌스 트레블스의 결론이었을까?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방송국은 체적이 질서인가 무질서인가? (0) | 2014.07.22 |
|---|---|
| 과거 헐리우드와 지금의 필사적인 일본 드라마는 주소지가 어디인가? (1) | 2014.07.22 |
| 헤겔의 피독성(彼讀性): 신씨로마제국과 결별하는 하이델부르크의 풍경........ (0) | 2014.07.16 |
| 김윤식류의 이광수 연구의 역사적 필연성과 가난한 한국 학생들의 영양소 결핍........ (0) | 2014.07.13 |
| 아픈 것들의 계보학: 젊은 날의 초상(1981)을 조금 떠들어보다가...... (0) | 201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