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피독성(彼讀性): 신씨로마제국과 결별하는 하이델부르크의 풍경........
나는 이태리에서는 안토니오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이태리 사람들은 대게 토니오에서 패션을 배우고, 평안함을 얻고, 민족성을 획득하고, 형이상학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태리에 가면 백인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안토니오. 나는 맑은 눈의 토니오가 나를 그렇게 부르고는, 나의 논리학적이며, 피상적이고, 회피적이며, 반민족적이며, 비인간적인 속성을 우담바라 하나 얻어보려고 애를 쓰는 것을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 보아야 했다. 내가 주는 커피를 마시고, 내가 주는 빵을 먹으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내가 우스개 소리를 하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통사론과 의미론이 완벽한데 어째서 토니오가 된 것일까? 도전과 응전의 쓰나미를 늘 단체로 당하고, 스스로 당하고, 뒤늦게 당하는 것으로 하는 것일까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지진을 일으키는 스위치가 있는 것을 늘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늘 발견해야 했다. 내가 시를 쓰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성을 숱한 토니오들에게서 보아야 했다. 그것은 재미였다. 친구가 있다는, 친구 천사가 있다는, 자랑 같은 것이기도 했거니와, 다시금 인간 핵을 자극하면 죽음의 천국을 앞당겨서 보려고도 하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가 앞당겨서 되려고 하자, 이 정도 유러피안적인 센티멘탈이면 차라리 영국으로 가자고 말고삐를 돌렸다. 영국 사람들은 둔했고, 그러나 나는 별로 게의치 않았다. 한국에서도 둔한 시골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얼굴이 왜 이리도 감자만 같은지 한결 같은 모습에 때로는 내가 먼저 갈라파고스 군도의 종의 기원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헤겔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성과, 그것은 캐쓸, 아름다운 리터러리 캐쓸, 대책 없이 낳고 보는 클래식의 화성의 영감, 그랜파덜 인 마스에 비견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그라마톨로지이다. 내가 유럽, 그것도 작은 프랑스, 뿌띠 프랑스의 철학들을 모두 항복시킨 것의 방식은 별 것 아니다. 헤겔의 개념을 요소요소에 잘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헤겔의 개념은 탈유럽적이다. 그것은 분명 지리산의 유명한 암자만 같다. 무등산이라고 하기에는, 사람들 자신들의 거리가 있어서 말하고 싶진 않다. 해겔의 개념은 가장 많이 청동기 시대 때의 화랑들 같다. 영국의 아서왕의 신화는 단 하나의 칼을 두고 뽑느나 못뽑느냐 했으나, 청동기의 한국은 비파형 청동검이 남아 돌았다. 성경은 인정사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중요하다. 그는 밥도 먹을 줄 알고, 쌀 줄도 알고, 사람들과 씻을 줄도 알고, 지리도 알고, 영화 볼 줄도 알고, 불평을 표할 줄도 알고, 무엇보다도 개념의 운동, 개념의 탄생, 개념의 이전과 이후의 갈등, 나의 불만, 나의 투쟁, 단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호명하는 것, 미가의 권력자가 양날의 칼로 남과 자기를 헤아려고 하고, 서비스로 종과 가족들을 비인격으로 만들려고 할 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라도 땅에서, 흰 옷을 입고, 데이스타를 타고, 버려진 그것은 영어적인 발음인지, 안버려진 벌판을 가로지를 때에 섬광처럼 지나는 것이다. 내장산을 왼쪽으로 내려오면서 보이는 마루의 풍경이기도 하다. 나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평안함인 것이다. 그것의 모습은 장엄하고, 잔잔하고, 경이롭기만 하고, 포레의 숱한 음악들 같다. 다른 철학들은, 가장 접근하였던 칸트마저도, 헤겔의 개념의 왕국에 실질적으로 이르지 못한다. 오성(verstand)가 있으면, 개념은 체계를 바라볼 수가 있다. 그것은 정말이지 화성이다. 인문학은 오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죽는 수가 많다. 그러나 헤겔에게서는 오성은 유일한 인문학이다. 그리고 이성이건, 개념이건, 의식이건 일찌감치 다 있는 것이다. 나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 토니오마저도 눈물을 흘리면서 좋아하는 사랑의 인문시가, 한국 사람들, 어려서는 도모다치였던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을 수가 없다. 마태복음이 논픽션이었던 것이,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품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지츠인 셈이다. 그리고 픽션인 것은, 다들 그 한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헤겔의 개념은 그것의 막힌 담을 허무는 낭만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속삭임 속삭임인데 반해, 누군가에게는 네가 치겠는가 내가 치겠는가 벽돌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하이젠부르크 성에서 가벼워도 무겁기 짝이 없는 장식 갑옷을 입고 내려올 때, 사람들은 다들 좋아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다가오기도 하고, 꼼짝도 못하기도 하고, 뭔가를 묻고자 하면 독일어 통역사가 옆에서 나섰다. 개념들이 어떻게 겹치는지, 결별하는지, 그것이 어디에서 라인강으로 흘러가는지 아는 독일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게의 경우, 친캐톨릭이던지, 관념의 체계가, 쉘링류의 관념의 통념 같은 인상을 추종하는 무리들이다. 칼 바르트가 대표적이다 할 것이다. 말을 틀리지 않게 많이 하면, 우리는 가운데로 설복당하게 되는데,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줄 아는 인지심리학자가 없다. 헤겔만이 유일하게, 관념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치는 편지함 같은 것이 되고, 편지가 되고, 때로는 그 가벼운 종이비행기에도 올라탈 수 있는 프로일라인이 되기도 한다. 전무후무하며, 확실한 후무의 증거이다. 안셀무스 한 사람만이 헤겔을 전조하였다 할 수 있다. 다른 철학자들은 실패한 것이, 안셀무스는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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