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시라를 앞세운 심상치 않은 대우를 해주는 드라마 다섯손가락을 수사하면서......
번뇌에 가득찬 최고급의 여자가 있는데, 수많은 무시와 몰인정의 대기 사이로, 다만 태초부터 아는 사이였던듯, 다가가 말을 주고 받는 이 무슨 씨츄에이션?을 달성하는 남정네가 있다면, 그는 그 순간 그와 같은 문예국가에서는 왕이 되는 것이다. 황제가 되는 것이다. 탐정은 비급인가? 에이급인가? 당연, 비급이다. 그것은 동방불패에서, 무슨 비급을 취득하면 남자가 여자가 된다면서 어떤 남자가 깔깔깔 웃었던, 바로 그 비급. B. 급. 탐정은 그와 같은 기억이 고통스럽다. 그는 수제자를 두고 있는데, 채시라처럼 아주 예쁘다. 만일 일인이역을 하는 독특한 작품적 시공계의 흔한 하나의 기법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음악성이 넘치는데, 모리꼬네의 자스민의 함정 오에스티처럼, 더욱 수상하고 신비스러운 겹침과 누빔의 음악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남자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지만, 여자들에게는, 특히 공주들에게는, 남자들의 비싼 오토바이와 같은 스릴과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는, 무척이나 떨리는 장신구들인 것이다. 영화 코난에서도, 아놀드 슈바제네거가 거대한 뱀을 죽이고는 얻은 아주 거대한 붉은 보석을 우연히 만난 한 여자에게 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정말, 지나치게 정확한 것이고, 너무 정확해서 문학성으로 상찬되지 못하는 다소 모바일한 미장센인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구름들이, 손오공의 군두운처럼 생겨서, 내려와서 내가 원하는 오토바이를, 여자들도 작은 스쿠터를, 타지 않아도 집의 한 구석에 놓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것의 습기. 그것의 촉촉한 달팽이. 캔디. 팬시. 퍼플. 삐삐. 해적. 헬로 키티. 쿠폰. 탕수육에 관한 여러 생각들. 친구가 이기심을 먼저 버리고, 한번 자기가 사준 적이 있다면서, 탕수육을 먹고 싶다고 하니까 시켜서 함께 먹은 날. 그것은 사실, 결혼 이전의 대동세상으로서, 너무 소라를 구워서 빙빙 돌려 꺼내먹는 재미의 시퀀스보다 산뜻하고, 화랑같고, 그것은 없지 않아 남자다움, 서로 싸우지 않는 불국사의 원화 같을 수 있는 것이다.
채시라는 가나 초코렛을 하나 먹으면서, 탐정이 일을 하기 앞서 생기는 여러 생각들을 잘 챙겨들었다.
탐정은 분명 비급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의 여신 아테나와 도망자 플랜비의 아름다운 청소년의 현대식 국제관계적 미니 시리즈를 접하고 난 뒤에 보면,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물심양면에서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도망자 플랜비를, 그 아름답고 상큼한 파인애플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학교 다녀와서, 학교갈 때와, 독서실 갈 때 사이에 다가오는 부산 앞바다의 라운지 같은 시간 속에서, 라운지 맞는지 모르겠는데, 아니면 라운드 티셔츠, 도망자 플랜비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소년이건 소녀건 간에 박혔겠는가? 두번 보는 것은 사실, 존재의 등급이 떨어지는 행위이다. 두번 보는 시간에 공부하고, 두번 보는 시간에 책 읽고, 두번 보는 시간에 고전이라도 한편 분석하는 것이 낫다. 두번 본다는 것은,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액션 스쿨이 없다는 것. 그것이 아니라, 무슨 단어가 있는데. 삶의 본보기 비슷한 영단어. 그것이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인 것이다. 어차피 질풍이요, 어차피 노도인데, 정신이나마 잠깐 돌아오는 의식의 고갱이를 잡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 교회 가라 다그치지 말라. 교회는 이미 가는 것이고, 너무 단정하게 입으라 잔소리하지 말라. 단정하지 그럼, 비싼 옷을 입겠는가? 아주 심급의 화려함. 투사 중의 프로젝션 투사. 젊은 시절에 최영미의 잔치 서른은 끝났다, 말할 수 있는 이미 스스로의 작품적 완결성. 플랜비를 두번 본다는 것은, 우리의 예술적 본보기가 없다는 시대상황적인 반영인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비보이다. 비보이는 아니고. 조용히 들려오는 슬픔의 소식. 도망자 플랜비가? 처음에 알원을 타고, 윌리를 하고, 그 상태로 총을 쏘는 것은 정말이지 총.쏘.년.인 것이다. 교회에 다니고, 웅장하고 클래시컬한 모임에만 투어다니고, 대학 나오고, 결혼도 맘모쓰 비슷한 계획으로 치루는 사람들은 평생 모를, 하늘의 흰 구름을 보면서 스쿠터가 한 대 내 집에 내려오기를 바라는 개별자들 속에 숨겨진 소망교회는 그것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미션이란 바로,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그것은 종교적이기도 하고, 기독교, 산업적이기도 하다. 국가 산업.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청년들이 저녁에 잠깐 춤을 추는 것을 전부로 연결해서, 전문적인 춤쟁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머지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때 자기도 그것의 반만이라도 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서의 불시착. 그것은 반영적 실체로서도 그러하고, 해석학적 의미로서도 그러하다. 결국에는 뭔가 열심히 했는데, 존재의 근처에서, 자기는 쭉정이가 되어 있을 것이 아닌가? 실제로는 도망자 플랜비는 청소년들에게, 그것의, 총.쏘.년 영화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플랜비라는 것은 엉겹결에 등급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탐정은 채시라를 닮은 조수에게, 자기가 채시라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태공조나 알 것이다 한다. 슬픔은 거대한 바다와 같다. 조개껍질들은 따개비처럼 바위에 달라 붙어 있다. 그는 저 어딘가에 수술실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 꺼즈를 찾는 소리에 숨이 멎는 듯 하다. 초콜렛을 다 먹고, 초콜렛 향이 나는 입술을 가진 조수에게, 그래서 그는 오천원을 그냥 꿔줬다......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자아에 올라타려는 것들은 (0) | 2012.08.29 |
---|---|
모든 이름들과 위기시의 것을 염려한 것으로서의 오토바이에 관한 전설의 그룹 아바적인 명상 (0) | 2012.08.29 |
일본에 굿뉴스가 있고, 뱃뉴스가 있다. (0) | 2012.08.24 |
영문학의 변칙적인 회전중심으로서의 나 아닌 다른 사람일지라도 한국...... (0) | 2012.08.23 |
오늘은, 역사는 그나마 온전한 얼굴로부터 시작한다는 상상력 (0) | 2012.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