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굿뉴스가 있고, 뱃뉴스가 있다.
그것은 클러치의 맛물림이다. 일본이 필요가 없다지만, 그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한국의 가장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 아니었는가? 조선통신사가 저 먼 필리핀에 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작가가 그래도 머나먼 쏭바강이라고, 쏭바강을 다녀온 뒤에 글을 남겼고, 하얀전쟁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너무 잘 알아서, 때로는 너무 구분이 되지 않아서, 태공조가 식민지 정책의 만행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구조는 피가 흐르면 역사가 된다. 일등 구조와 이등 구조 간의 만남이라면, 최고의 것이 아니겠는가? 설명으로서. 그리고 설명을 준비하는데, 이것이 일본을 가리키는 것인지 막상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카시, 그래놓고 보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될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혼에 관해서는 거의 이등 조선으로의 퇴행이 너무 빠르고 그리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다깡하고, 남자와 대충 싸우는 것을 삶의 전부로 안다. 물론, 그것은 한계상황이다. 극도의 심심함이, 히스테리의 습진으로 발현하고, 그것을 남자가 나타났을 때 긁어대는 것을 자가치료의 방식으로 삼는 것이다. 그것과 아카데미는 연결되지 않는다. 차라리 일본에 가서 근친상간 에이브이를 보고, 그것은 연기, 가장 그래서 이름이 재밌는 것이 그것일 터인데, 고막이 터질 때까지 조용히 지내다가, 순수하게 아이돌 공연을 응원하고, 돌아와서, 논문을 쓰는 알파파가 그렇게도 자연스럽고, 나그네 같고, 박근혜? 그 어떤 에이전트로 활동하던지, 쓰리고 아픈 개인주의에 깊은 동반자 의식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내와, 혹은 남편과 무식한 대화를 나누고, 과일을 먹은 뒤에, 못생기고, 안하무인인데다가, 돈만 있으면 뛰쳐나가는 아들 딸들을 지속적인 잔영으로 갖고서는, 행여 집에서 작업을 할 일이 있으면,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적이라는 것. 그것은 내가 다 갖고 있는 것 같고, 나나 민중이나 한없는 고향이며 학교라고 칭송하는 불국사에 가면, 그들은 불주사를 아프지 않게 맞게 해달라고 시니피에 그런 삶이나 떠오르는 것이다. 사람의 원터치 행보. 그것의 악보와 같은 영혼의 급성 질환을 그러나 맛보고 싶지 않겠는가? 반쯤 죽은 창가인인 경우에. 그것이 사실, 아스카 문명이고, 저녁 노을에 비행하는 작은 새, 그것은 일본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고, 나의 신민이 되지 않는 이상 거의 전부의 예술가들이 되게 되어 있는 관념의 국가인 것이다. 그것이 실체라고, 아루요, 아루요 주장할 수 있으며, 그것은 분명 없지 않아 우리에게도 아룬 것이다. 아른하임이라는 미학자가 있다.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일본인들의 철학책들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그것은 반영인가? 아니면 반영인가? 영원한 철학적인....... 아무런 아카데미나, 아름다운 예술과 문학, 철학의 거리는 약속되지 못하고, 습속이 방기되며, 생기는 보호되는 게토들 사이에서, 다만 태풍의 주리론적 발생 원리만이 제시된다.
주리를 틀면, 태풍이 발생하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는 방식이 양적인 면에서는, 고통은 질이 아니라 양이니까, 제법 괜찮은 것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굿뉴스도 아니었는데, 뱃뉴스가 될 것이다. 주리론이 한국에서 지배적이고, 일본이 그것의 난을 함께 갖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약정된 것이고, 지금 일왕 부부와 가족들의 모습에서도 아주 작게나마 증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규격은 엔에치케이나, 산케이, 후지 티비에서도 그림으로서 떠지는 것이다. 그들의 애니와 일드는, 그냥 드라마는, 그들이 총명하다는 것의 증거가 틀림 없다. 그러나 총명은 말을 꺼낼 수 있는 목 이상의 것에서나, 아주 짧은 동작에서 드러날 뿐, 나머지의 시간들이 어떻게 채워지는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총명을 연출하는 방식이 습진될 뿐, 갑자기 거의 모든 정신 문화 유산들이 근거 물음 되는 시간에 아무런 답도, 해답도 강구하지 않는다면, 배가 고파도, 콜라캔이나 마시는 화성인이나 되지 않겠는가? 얼굴은 콜라색이 되고, 머리색깔도 묘하게 노랗게 변하는. 몸에서 콜라 냄새가 나고, 담배를 피우면 친구들이 어? 콜라 향이 나는 담배가 나왔나? 아닌데 묻고 답하는...... 그것은 관념의 의지이며, 신체는 종합적인 토양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사받는다. 자기도 모르는 것을, 다시 말하면 답해야 할 때가 됐을 때, 관념의 의지가 변태적인 예술혼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것까지도 아스카이다. 콜라 냄새나는, 저녁 노을에 비행하는 작은 새...... 주리론과 주기론은, 무슨 이런저런 철학이 아니라, 주인공 의식으로 침입한, 주변 사람들의 감시와 처벌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조선의 선비와, 일본의 선비는, 그래도 자위를 해야하는가 하는 것으로 선험적 종합 판단에 돌입하는 확률이 높았다. 왜냐하면, 성행위가 자가적인 것일지라도, 주기를 따지면 안하는 날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관계나 구조 면에서도 그러하며, 그와 같은 의식의 침입은 여간해서는 발생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어허. 자위를 조금 해야하는 모양일세. 그렇게 작은 언덕을 넘는 시간들을 보내는 것은, 태생이 민중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특별하게 꾸중하는 사람이 있지 않는 이상 도덕적으로 나쁜 것도 아닌 것이다. 일본의 선비는, 자위대가 있지만서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 있다. 어떠한 선비가 조선 말고 다른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수학적으로도 그러하고, 생활적으로도 그러하다. 삼국지는 민중의 이야기일 뿐,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평소에 부끄러움이 별로 없는 성격일 것이다. 늘 따라오는 것이면 좋다. 이런 부분이 있었구나. 아니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 하는 것으로. 고전에 비추어 보면, 격이 한없이 떨어지며, 인격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개성들을 보여준다. 일본의 선비들도, 메이지유신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식민제국주의 팽창의 역사가 있었더라도, 독서의 의식의 조임틀 안에서는, 적어도 아른하임 정도로다가, 자위를 조금 하는 다음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고, 그것은 압착이 되고 있으며, 주기론이나 주리론이 여렸을 때부터 고문이나 절단 밖에 없었던, 서양에 접근해버리고 만 것이다.
반론은 가능하다. 일본은 섹스를 원래 많이 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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