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를 日本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전제들
우리나라는 위에서 보면 아름다운 눈동자처럼 생겼고, 또한 자세히 보면 일본 한자가 한 자로 겹치는 것처럼 생겼다. 그것을 비오는 날의 도심 밤거리에서, 걸으면서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앙드레 가뇽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식인들 모두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도시의 밤거리를 사찰을 돌 듯이 돌 수가 있다. 우리는 죽을 때, 입석대, 다만 그곳에 도달하면 하늘이 데려가는 것을 소망한다. 누워서 죽는 것은, 너무 슬프고, 지난하며, 너무 많은 독립심을 방기하게 되어서, 서석대, 밝고 명랑하고, 아름다움의 빛과 소망, 상대방에게 기를 전하는 것으로다가 죽기를 소망한다.
이 영화를 볼 때를 나는 송두리째 기억한다. 나는 앞도 없었고, 뒤도 없었다. 범퍼카처럼 그나마 주변이 약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삶이 있는 줄을 그때까지 몰랐다. 나는 샘소나이트, 섬과 같았다. 대왕조개 같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음의 명제적 근거를 내가 과연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나 골몰하고 있었다. 나는 밝고 명랑하였으며, 소인 같았다. 배움이 거대하여서, 그때야 비로소 공자의 논어를 사볼 수 있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었드랬는데, 헤겔의 영어로 된 미학 책이 나의 깊은 상아에 도리어 괴롭히는 포미닛 거울아 거울아 되어 있어서, 이번 기회에 논어를 읽어보자 하는 마음이 그런 정신적인 습관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읽었다. 나는 처음으로 중국을 말을 타고 달려보았다. 맹자도 읽고, 순자까지 읽었던가? 아니면 논어를 읽고, 아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 있는가? 책을 덮는 것으로, 나의 임상실험 같은 죽음을 개인적으로 연출하였는지 모른다. 소인 같은 tv는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흐르고 있었고, 사람이 삶과 목적이 없으면 국가적 행사의 밸룬에도 떠오를 수 있다고, 이천이 한일월드컵을 기대하고도 있었다. 고시원에서, 비가 오면 비를 느꼈고,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광주에 파견된 자위대 정보원처럼 눈을 바라보았다.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여행이라면 백번도 갔을 것이다. 그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도 지내면서, 막상 움직임에는 처음부터 물었던 것도 많고 엄청나게 따진 사람처럼 행동하는 나를 발견하여야 했다. 인터넷으로 숱하게 중국에 갔고, 숱하게 일본을 갔다. 그때는 유튜브도, 블로그도 없었다. 저마다의 도메인을 갖고 있었고, 그것들을 설명해주는 사이트를 찾아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 가려면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신분상의 아무런 위신도 마련해주지 못한 채, 자연적인 친일파를 연출하려는 무리들의 학이시습지면 불역낙호아의 단계가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나라에서 교육도 잘 받았고, 애국의 몇 가지 요소를 국사 선생만큼 알고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무서워서 행동하지 못하는 닌자 거북이 같은 애국 한국인도 아니었다. 내가 만일 진중권 같은 지명도를 갖게 되어서, 개방적인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서 발언할 기회가 있었다면, 시종일관 나를 친일파라고 밝혔을 것이다. 모든 행동에는 아프리오리가 있고, 저마다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그것에는 양도 있고, 질도 있다. 양적인 원인을 갖고, 밝히기를 질적인 원인이 있는 것처럼 흥분한다든지, 질질 짜는 것은 좋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그러니까 질적인 원인을 갖고 있는 기억의 세포자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일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친일파 행세를 하는 것은 분명 이와이 슌지 보다 못한 짓인 것이다. 일본을 박재상처럼 생각한다는 것, 만일 그것으로부터도 나아간다면, 연오랑과 세오녀처럼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지금 보면 정말이지 공력이 이만저만 높은 것이 아닌 것이다. 태극기가 근두운에 올라탄 붉은 갑옷의 손오공처럼 보인다는 어린 학생이 있다면, 그의 공력은 분명 트렌젠덴탈한 것이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 나는 뜻하지 않는 공격을 받았다. 그 모든 것들이 들춰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나는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고 싶었는데, 여차하면 밀항자로나 가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데올로그들은 살아 있고, 국사 교육은 끊임없이 애국심의 젊은 피를 요청하는 듯 했다. 그것이 양이라는 것이다. 지금 보면, 완전히 무명 작가 신현균 애찬으로 가득차 있지만, 영화는 말이 없는 법,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 그 해괴한 법으로 인해, 내가 곤란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 열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없지 않아, 나는 그때 진정으로 혹은 진성으로 죽고자 하였었다. 비자발적인 죽음의 콘베이어 벨트에 놓여 있었다고나 할까? 그와 같은 나의 경험이 영화적인 쏘스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동시동작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지금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를 비슷하게 내세웠다. 나는 그녀를 흡수하였다. 나는 그런 식의 스토리를 좋아한다. 내게 독특한 장비애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와 죽기 좋아하는 박동 소리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그 당시에 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내가 안에 있고, 그들이 밖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헤겔의 미학 책의 대나무 숲에서도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한정 거리 A와 B에서 늘 나보다 먼저 이동하면서,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내 호주머니에는 여분의 기분 카드나 캡슐 같은 것들이 있지 않았다. 맹자의 호연지기를 구입한 책으로 정식으로 읽었을 때, 그것이 조금 나중이 되었던 간에, 나에게 버린 바 되었던 아들처럼 느껴졌었다. 고작해야 기분이라니. 나의 생명 같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앞의 문장은 드러난 의식이고, 뒤의 문장은 감추어진 제도였었다. 나는 늘 기분이 좋았었다. 한 번도 안 그런 적이 없었다. 나는 애국에도 자유로웠고, 친일에도 자유로웠으며, 북구 유럽에도 자유로웠고, 나스타샤 킨스키에도 자유로웠다. 내가 그때 무국적으로 살면서도,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거리에 뿌렸던 자유의 카드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훌륭한 학자가 되기 위해서 걸으면서도 생각을 했으나, 나중에는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생각을 하여야 했다. 채널이 맞았고, 그렇게 나는 자유의 카드를 빅스를 타고 다니면서 뭔가를 뿌리는 알바생처럼 뿌리면서 지나고 다녔던 것일 것이다. 독립이라는 쏘스코드는 그와 같은 민둥산에 드러난 육이오 때의 불발탄 같은 것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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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만일 영국이 자기들의 문명이 사라지는 것을 독일 나치즘으로 채우고자 하였다면, 미국 대륙에서 지금도 싸우고 있을 수 있다. 대륙의 반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 일본이 좀더 야비한 권력들로, 메이지 유신 이후로 채워진 것은, 영국과 미국의 학자들과 선교사들이, 결정적인 잠깐의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본질에 못미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나라 독립 운동이, 수준이 없는 것으로서의 다만 욥과 같은 슬픔으로만 가득찼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수학적 확률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일본의 지배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것의 리를 내비치게 되었고, 아침 기도와 아침 신문, 서울 우유가 서울을 장악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답보 상태가 된 것은, 이천구 로스트 메모리즈가 다시 봐도, 매 장면 매 구석 재미지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활동은,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그것은 학문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등급의 학문과 예술이 있지만, 한국 영화는 오직 민중적인 측면에서 그와 같은 보편적인 배타성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뜻을 알고 나면, 일본 어린이가 초밥만 좋아하고, 한국말을 잘하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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