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에서, 이런 일이 있기는 있었다.........
만일 그대가 노론과 소론의 격쟁제에 빠져, 내일과 후학 다음 세대를 약속받지 못하는 왕국의 황태자라고 치자. 그렇다고 한다면, 나이가 들 수 없는 얼굴 반반한 여자에게 관심이 가겠는가? 묘하게 아버지가 장군상이라서, 장군이고, 공부까지도 아버지의 무의식적 영향 아래서 할 수 있었던 부키쉬한 여학생에게 관심이 가겠는가? 나는 그 시절의 순자였고, 순자라고 한다면 하은주의 중국 고대 국가에서, 기록되지 않은 하나라와 은나라가 아니라, 주나라, 한자를 쓰면 그것의 느낌이 대번 오는데, 周나라의 시계를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옥구슬의 마지막 순열을 치닫고 있었다. 만일 그것이 히말라야라고 한다면, 같은 국가의 체적이긴 하나, 얼마나 중국땅을 가로질러서 있는 것인가? 하나라 은나라 다음에 주나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주나라는 주나라일 뿐, 처음부터 주나라였고, 중간에도 주나라인 것이다. 하나라는 나라라고 하기에는 아름다운 여름 풍경 같은 것이고, 은나라는 나라꼴은 있으나, 헛되이 상주고 상받는 끊임없는 유혹의 구릉이요 대지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적인 주가 있다. 순자는 그것에 질식하고, 동시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것으로 있다. 종장으로 갈수록 빛이 떨어진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그것이 죽음의 이유는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은이 있고, 주가 있다는 말은 밀과 보리가 자란다는 말처럼 누구든지 하는 것이다. 그것의 기억, 그것의 카드, 그것의 옴니포턴스 다시 말해 기억력은 때로는 귀하고 때로는 헛된 것이다. 하은을 챙기지 못하고, 주가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하은주 하은주 하는 것이다. 위진남북조든지, 당송팔대가라든지, 남송시대라든지, 죽림칠현과 같은 시대구분은 어쩌면 우리가 하은도 해결하지 못한 데에서는 무의미하다 할 수 있다. 주나라는 하은과는 소품 자체가 차이가 있다. 우리가 갈색 질긴 종이봉투를 머리에도 쓰게 된다면, 그것이 그렇게도 주나라의 관모의 한자 周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지필묵을 명필로써 붓가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영화로운 것인지, 또한 하은을 알고 난 뒤에는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영어로 recruit라는 말이 무엇이겠는가? 만년필에 잉크를 다시금 빨아들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아무런 지방질이 없는, 오직 소울로써만 주자를 쓸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것의 이마는 어려서도 빛나기만 하다. 고전을 인용한다는 것. 그것은 반드시 온고지신. 새 것으로 해본다는 기백이 있는 것이다. 옛말이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는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 시쓰고 움직이고. 시쓰고 움직이고. 순자와 같은 시만 중국의 인재들이 쓰고 달렸다면, 얼마나 지금의 중국은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의 목조의 빌딩들로 둘러 싸여 있겠는가? 때로는 높이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이다 반대 급부의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언덕 능으로서의 콜렉티브 인텔렉트가 도시에 탑 하나씩만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도 다만 전망대일 때가 많다. 심지어는 두보가 오르고, 이백이 다 오르고 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종합대학이 발생하였고, 문학과가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모두가 이백과 두보의 알 수 없는 고지전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동두철액들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의 모습은 대학가요제처럼, 대학을 가자는 선전문구처럼 아름답기가 그지 없었다. 나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대학원을 수소문하였고, 입학을 하지 못해서, 서강대학교에 당연히 장학금으로다가 다닐 수 있을 것으로 여겨서 대학원을 입학하였다. 돈도 없는데, 장학금도 안주면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그만두었다. 사람들은 그럴 만두 하다 하겠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대부분의 서울 소재 인문학생들은 무슨 필그리미스트들인 것처럼, 없는 살림에, 여자들은 오프로드 육탄전으로다가 졸업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장학금을 받고자 하였고, 입학하면 이년 내에 졸업할 것을 예약했던 것이다. 그러니 관점에 따라서는 내 편도 있을 게고, 맞은 편도 있을 것이다. 무슨 소리. 공부를 제법 잘하고, 그만 두지를 못해서 대학원까지 다니는 영문학과 학생들이 있지 않겠는가? 할 것이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의 간극. 그것의 캐즘. 글을 잘쓰기 위해서 난봉황까지 하는 대지에서 벗어나 있는 인구수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많을 수는 없는 것이다. 육탄전과 난봉황은 바닷가가 비슷하지만, 또한 다르기도 하다. 남자들은 육탄전을 모른다. 오직, 난봉황에 이르러서야, 이것이 무엇인지, 그것의 스트라이킹 디스턴스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처음부터 주나라의 관모를 쓰고 있었고, 관타나모, 한 학기 다니다가 나오면서도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적처럼, 내가 다녔다는 서강대 영문학과 대학원 수업 시간이 있었지 않았겠는가? 두세 여자가 나의 눈에 들어왔고,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은 어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중간의 중국 여자가 있었으며, 폭력적인 비평들로서는 국민학생들이 많았었다. 남자들은 대게의 경우, 게스트 하우스에 놀러온, 도시로 놀러온 남의 나라 하급 직원들 같았다. 그것의 경계는 다만 K이기도 하고, 슈퍼스타 K이기도 하다. 나는 더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학교의 수업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우리는 케익을 사기도 했었다. 서강대에 있다가, 이화여대 근처로 갈 때, 여학생들은 행복해 했다. 서강대는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강.대. 그래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수업 시간에 일찍 와서, 누구를 향해 가는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는 그와 같은 라틴 영화 중앙역에서, 어느 날은 맞은 편의 중간의 중국 여자가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에게 소설을 요약해주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대놓고 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다는 식의 테이크어 글랜스가 있기는 했었다. 얼굴을 돌리고 있으면 예쁘지만, 나를 보면 예쁘지 않는 여학생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보았다. 내가 보고 있다는 시냅스 때문에, 문장이 생기가 돌았고, 요약은 대신에 되지 않았다. 거의 전부 다시 말하고 있는 듯 했다. 그 순간에, 나이젤 케네디의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오아리가 졌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이호선 전철이 지나는, 전철역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도 키는 큰게 가수 박지윤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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