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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우리는 어떻게 남이 되는가? MERS論

by 마음대로다 2015. 6. 19.

우리는 어떻게 남이 되는가? MERS論

 

 

 

 

 

 

 

 

우리는 본래 남이다. 우리는 한국말을 쓰는 이리이고, 일리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왕십리 안에 단 한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다. 나는 서울에서 가장 서울다웠다. 그러나, 단 한 방도 갖고 있는 것이 없다. 저 쓰잘데기 없는. 개쓰잘데기 없는. 풍.경.들. 인문학자들이 목이 잘릴 것을 예상하고 내밀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째서 그들이 내미는가? 가장 극단적인 범주 비극이, 어려서부터 동문수학에다가, 지기지우였던 사람이, 한 사람은 남한군 총사령관이, 한 사람은 북한군 김정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드라마로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은 화성인이 되고, 한 사람은 지구인으로서 승승장구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루씨엥 골드만, 숨은 신의 치하에 있었다. 그것을 인문학자들은, 학생들은, 덜덜 떨면서 구입했다. 이름이 왠지 모르게 보이지 않는 신 같았기 때문이다. 막상 읽으면, 비극론에 관한 것이고, 어째서 인간은 비극적인가 하는 것에 관한 소고이다. 신이 나타나면 희극이고, 인간에게는 끝까지 신은 숨겨지니까 비극이라는 것이다. 알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어도, 아는 과정이 신비롭고, 그 이전에는 더더욱 잘 안만나주는 여신처럼 보이는 일종의 오로라 현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얇고, 책값도 그래서 싸다. 그래도 싸다는 것이 아니다. 싸다구. 그것도 아니다. 얇은 만큼 읽기가 좋고, 내용이 어찌 보면 익숙한 만큼 독서에 장애가 없다.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책 한 권 나의 장서 목록에 올린다는 기쁨도 있다. 그러나 김하늘이, 내 사랑하는 김하늘이, 늘 여자들과 샤넬 루이비통 이야기하다가, 구입을 망설였다. 그것은 빌딩 같고, 전선 같다. 구입을 마침내 하지 않은 기간?이 일년이 훌쩍, 브라운아이즈, 벌써 일년, 그것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고 노래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노래방 가는 것은 쉬워도, 듣기는 얼마나 더더욱 쉬운가? 책 읽고 음악 듣기는 어려워도, 하나님의 은총 같아도, 책을 읽을 것처럼 하다가 음악 듣기는 얼마나 구로구 디지털 단지, 쉬운가? 신경숙을 보라. 그 기간을 보라. 한번 적을 올리니, 사진 속의 모델의 눈을 파는 것처럼 특별한 노력이 아닌 이상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소도 같다. 사람들에게는 절대의 피난 공간이 있어야 하고, 모든 재판은 멈추어야 한다. 멈춰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사인가? 우리나라 사극은 대게가 멈춰라! 에서 절정을 이룬 것 같다. 그것의 처음은 이리 오너라였다. 우리는 한국말을 하는 이리이며, 남이기 때문이다. 남으로 대문을 내겠소. 그것도 시에 적을 올리니, 시처럼 솟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을 배우고, 익히고, 얼굴에 보기 좋은 흰화장을 한다. 여자들은 금방 앵두를 그리고, 내일 당장이라도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처럼 되는 것이다. 하지만, 멈춰라! 그것은 그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소질도 있어 보인다. 우리가 춘향이, 그처럼 처음 한계를 넘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람처럼 사라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춘향전은 어쩌면, 우리가 처음으로 태양을 보았던 순간을 만끽하는 것인지 모른다. 가족 중에 술집을 경영하거나, 거기서 일하거나, 사랑하는 남자가 글을 쓰거나 하면, 당장에 그 모든 춘향전이 자기의, 가문의 영광처럼도 은근히, 은밀하게 여겨질 것이다. 형장의 이슬람처럼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먼저의 것도 중요하고, 나중의 것도 중요한 것이다. 먼저의 것을 위해 나중의 것이 노예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옛날의 아름다움이 어둠의 노리개가 되는 것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리 오너라와 멈춰라 이 두 개의 사극 대사는 우리를 잡아 끄는 힘이 있었다.

 

 

 

숨은 신을 읽고자 했었다. 그러나 김하늘은,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포르트 다 놀이에 빠져, 이리 오너라, 그리고 멈춰라 그대로 멈춰라, 그것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서울이다. 어쩌면 서울은 나의 번개들이 일종의 주조 반지 제작을 위한 왁스 작업에 사용하는 톱날처럼, 수십만개 수백만개가 꼽혀있는 언더월드가 아닌가 한다. 나는 검열관과 같았다. 검열관은 거의 모든 여자와 잘 수 있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같은 하늘 아래, 어둠을 맞이한다는 것이지, 진딧물의 섹스 같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사실을 고백하는 것 같아, 조금은 낭만의 뻥이 필요한 시점에, 아무도 모르는 포인트 블랙을 구축해야 누군가에게 성능이 될 것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매우 고통스럽다. 남자 여자 성기는 뭐에 쓰는 물건인고? 남자는 오줌이라도 누지....... 아무튼, 검열관은 한신대를 나왔고, 소문은 삽시간에 삽살개처럼 돌았다. 그것의 귀는 개인의 쓸쓸한 죽음에 모두 드리워졌다. 거의 모든 사람은 아이가 있고, 아들이 있고, 연인이 있고, 남자 목소리를 갖고 있는 레즈비언이 있다. 그는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으나, 먹을 것을 사오고, 보고 온 영화 이야기를 한다. 혼자 놀러 가고, 놀고 왔다고, 때로는 자랑하고, 때로는 간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글을 쓴다. 이것이 치명적인 유혹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문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문단을 뒤집어 엎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 말을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배운다는 느낌은 단 한 순간도 가지질 못했다. 그것은 화랑기쁨,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 예수. 인류의 소망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교회에 가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그는 호른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질주하는 롹 발라드 싱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외투 너머로까지 내비치는 알 수 없는 여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단한 실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이 하면 로맨스, 내가 하면 그저 그런 실험이요 그것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남자를 만나, 안으면, 마치 재즈까페처럼, 연극처럼, 금세 인피니티가 되었다. 그러나 인피니트는 해체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초절정의 감각이 아닐 수 없는데, 아무래도 누나 같은 에스터데이는 싫기 때문이다. 늘 그것은 우리를 괴롭힌다. 여자의 성기가 절구라면, 분명 그것의 감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절구의 응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남절구의 응시 상태라는 것은, 일종의 비파형 청동검 같은 것이고, 남의 나라 고고학을 공부하고 온 사람의 정신상태 비슷한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조선상고사의 신채호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다른 신채호는 읽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에 꽂힌 일종의 이념서적처럼, 루씨엥 골드만의 신의 손은 있었다. 벌써 이년 되는 날에, 사면되지? 읽으면 되지? 그또한 삽시간에 읽는다 해도, (이런 사람은 매우 고급스럽다), 본질은 늘 경쟁하고, 경쟁자는 늘 언제나 나였다.........

 

 

 

 

 

 

 

 

 

 

 

 

 

 

 

 

                           

                      *얼루어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