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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by 마음대로다 2015. 7. 2.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웃음의 포인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다닐 때도, 여자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어쩌면 시골의 농녀까지도 그 음악의 한없는 빗깔을 사랑하는 이유는, 물론 익산의 대품이 아니라, 충효동의 소품이 되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으로 얼굴이 정해지고, 옷이 정해지고, 걷는 힘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규호 말의 힘이 정해지면, 우리는 너도나도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신데렐라처럼. 12시가 넘으면 벗겨지니까. 유리구두. 어쩌면 잘 지은 매점매석의 고급 빌라촌에서 사는 농번기 젊은 청년들은 모두 그와 같은 데모닉 파워에 놀랄 것이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실재가 아니다. 분명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있고, 신경숙처럼, 문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신경숙 사태가 나를 그녀의 전기를 알게끔 했다. 그녀는 노동자였고, 일하면서 문학 수업을 하다가, 마침내 한국 문단의 경제력을 자위대 하는 여자가 되었다. 그녀가 풍기고 있는 것은, 찬기파랑가처럼, 물이 흐르는 풀빛이 아니라, 어느 샌가, 그루센카, 그러니까, 까라마조프, 무슨 말이냐면, 나니모레띠, 거대한 문단 권력의 대모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등단하지 않았으니, 무등산. 그러니까 그런 체적. 그런 우리끼리의 에이매치. 희한하지 않은가? 나는 신경숙을 제도권에 있는 나의 대리자 정도로 여겼고, 그녀의 글쓰기는 내가 처음 글을 쓸 때의 눈 내리는 풍경 같아서, 가타부타, 와스나리, 말을 붙이기도 뭐하고 안붙이기도 뭐했던 것이다. 그 처음의 계단. 무등산의 신비한 계단이 아니었다. 한신대 기숙사 오르는 세단. 세단 승용차 같은. 하나, 둘, 셋. 하면, 식당으로 가는 길과, 아기자기한 사무실이 있는 로비, 그리고 비좁은 통로로 학생들이 기숙하는 공간이 나오는. 바로 그 교차로. 벼룩시장. 우리는 거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금가루를 뿌리고, 은가루를 뿌리고 했었다. 인도에서 그런 축제가 있는 것은, 어쩌면, 금가루와 은가루가 비싸서 그럴 것이다. 그래도, 카레 가루로 우리가 친구 사귀고, 식당에서 카레가 나오는 단순 연장의 장면 전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은, 사무라이들은, 카레를 너무나 좋아한다. 사무라이는, 팻맨, 결코 한국 무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임진왜란은, 사무라이가 한국 무사가 되게끔 하기 위해서 벌인, 거대한 전쟁 놀이였을 수 있다. 그런 식의 착상은 뭐, 스텐카라친, 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것은, 포항에서, 울산에서, 어디지? 거대한 선박의 바닥을 만들다가, 문득 손으로 만져보는 감각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철학이란, 철선학? 철선박학? 좀더 나아가면, 잠수함학이 되는 것이다. 철학을 하면, 늘 언제나 인식론에 시달려야 하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인식론까지 가지 못한다. 에피스테몰로지. 여자들의 대화는 신기한 것이 있어서, 그런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숙사 식당에서,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가장 파릇파릇한 얼굴과 냄새를 갖고, 주고 받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때는, 그래도, 지적 긴장이라는 것이 있다. 여자들은 모르는 것을 감추고, 남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대부분 남자들의 이야기를 자기들도 해보는 것처럼 할 때가 많다. 남자는 옷을 아무리 후줄근하게 입어도, 걸어다니는 대학교 같다. 워킹 문예비평. 그러나 여자들은, 포인트를 잡을 수가 없다. 남자처럼 남색 옷을 입을 수 없고, 어린아이처럼 난색 계열을 입을 수도 없고, 도리어 덥고 갑갑하게 청바지를 입을 수도 없고, 레깅스, 누군가 레깅스를 퍼뜨렸는데, 엉덩이 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젓가슴만 흔들리는 것이 아닌데도, 그런 것을 입을 수도 없고, 바람만 불었다 하면, 공중을 나는 일본 전함 야마토처럼, 그런 사람 마음을 토마토처럼 가볍게 만드는, 짧은 치마를 입을 수도 없다. 여자는 오래지 않아서, 아이가 되거나, 잘 모르는 전도사가 되거나, 내 경우에는 그와 같은 극단적인 케이스가 그나마 보존되어 있는 것이리라,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거나,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젓가슴의 윤곽과 엉덩이를 드러내는 치마와 브라탑 치마를 입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지적인 페이소스가 없다. 다만 아마존과 같은 고고학만 있을 뿐이다. 전쟁에 나가는 듯 면하기 위해서, 젓가슴 하나씩을 국가에 헌납했던? 자발적 여자 화랑의 우주. 사람은 글라이더가 없이 살 순 없으나, 그것이 있다 없다의 경우의 수가 그렇게까지 난삽하지가 않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지 않다. 난삽하고, 때가 끼며, 초음파 세척기로도 도저히 볏겨지지가 않는다. 폴리탄들은 그래서, 여자를 잘 알아서, 가장 많이 증오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사랑하게 되어서, 그것의 신현균, 평균율을 획득하는 사람들이라 생각되어진다. 어떻게, 학교를 나오면, 뙤약볕에, 누군가 싸먹는다면서 쪄낸 호박잎처럼 되는가? 그렇다고 먹는 것도 아니다. 오직 먹는다고 해서, 결혼까지를 예상해서, 완전히 자기를 죽였건만, 결혼은 늘 언제나 클래식이 들어가지 않는 일본의 우주처럼, 게콘시키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놀려도, 기세키, 비판하여도,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은 게콘시키가 좋고, 기세키, 기적 같은 것을 좋아한다. 그것도 양가적일 것이다. 물론.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보면, 여자들의 대화는 그와 같은 다류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었다. 여자들의 대화는. 나처럼 성공적인 남자는, 학교 다닐 때의 문장의 회전이, 책과, 선생과, 공부 친구와 다를 바 없이 지금도, 우산처럼 쫙 펴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양산을 늘 선물하는 것처럼. 여자들에게는 데모닉. 결혼한 남자가 가끔 침을 뱉을 때나 자기를 만나는 듯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세계관이라는 것은 우산살의 감정 인식의 한계상황이라는 것을 뜻해서, 가끔 마시는 칵테일에 자기가 초현실주의처럼 빠지는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별다른 주자학도 없이, 태평양이나 동남아시아를 가기 좋아하는 것들은 대게가 투표권들이 희미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이 데모닉해지면, 햇빛을 보는 것이 좋고, 그나마 그와 같은 사람들이 구할 수 있는 약중에 가장 선약이다 싶다.  

 

 

 

 

 

 

 

 

 

 

 

 

 

발리나 라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