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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베테랑(2015)에 대한 효율적인 평론적 형식이란 게 있는가? 베테랑?

by 마음대로다 2015. 8. 19.

베테랑(2015)에 대한 효율적인 평론적 형식이란 게 있는가? 베테랑?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가 생각난다. 우리는 지금 카페에 있고, 나는 둘이 서로 자유가 있다면,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모텔에서 아마존 끝까지 보트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줍잖게 그렇지 못하는 인민들이 엄청 많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탑을 한 층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순자 정신이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들이 착한 줄 안다. 지식인들은 인민들의 피를 빨면서, 순결의 변학도 잔치를 벌이고 자빠지는 것이다. 물론 수학이 필요하고, 그것의 접점을 찾기란 월남에서 돌아온 아직까지 살아 있는 젊은 김상사를 찾기처럼, 레메디오스, 어려운 것이다. 영화는 유아인을 내세우고는, 마치 나와 유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처럼 묘사하고 있다. 어째서 둘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최소한 나를 후원하는 사람으로까지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신경쓰지 않는다. 간께나이데쓰. 그것은 이념적으로, 계층적으로, 객층적으로, 맞지 않는 알프스 너머 알프스들이 진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들까지 두게 했는데, 나이 차는 심하게 난다 해도. 그러나 사유와 관념이 철학 강요되는 것이다. 영화는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일본주의자이고, 자기들은 순결한 애국주의자의 지배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하고, 수많은 말장난들, 고어, 태초어, 히브리어, 헬라어까지를 구사하고, 자기들은 성문 영어, 비지니스 영어, 힌두 영어, 영국식 미국식 영어만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신경숙을 잘 알지만, 그것의 욥기처럼 보이는 나는 출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직함도, 명함도 없이, 서울 거리를 어슬렁거린다는 것도, 강남 코엑스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고, 기적처럼 누군가 외제차를 선물한다고 해도, 아무리 일본주의자이기로서니 내가 붉은 색 마쯔다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돈이 있다고 해도, 내게 붙을 수 있는 사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말이라고 통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인 것이고, 그것은 수많은 두께의 사유 끝에 도달하는 신천지로 밖에 이름 붙여질 수 없는 것이란 것이다. 물론, 아키라와 같은 일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병위인풍첩 같은 일본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 이상과 현실. 그것의 배의 앵커와 같은 쇠사슬을 마침내 발견하고 나면, 모든 이데아는 어린아이들을 키우는데나 이소룡이 다하는 것인 줄을 또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마치 그렇다는 것이다. 건물 하나, 그것도 통째로, 그리고 천혜의 여자를 두 사람 정도, 매우 자극적인 이슈를 갖고 다녀야, 겨우, 내가 파계승처럼 갈, 그런 식의 만화적 기법과 시니피앙, 그것의 현실감이 띄엄띄엄 유지될 것이란 것이다. 물론, 이런 글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우리는, 그리고 나는 유지되고 있고,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좀더 많은 실재를 낳기까지는 어려움이 큰 것이 아니겠는가? 삼국사기가 고대 정신의 한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이 그것을 인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처럼. 영화는 빼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더하기만 조심스럽게 행하고 있는데, 그러니 베테랑을 대하는 우리는 매우 새로운 전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선한 노동자는 없는 것으로 치자는 치자나무. 너무 머니까. 내 남은 인생도 짧고. 그렇다면 적당히 퇴폐적이어야 하는데, 감각으로 나를 덮어서, 내가 적당히 망가지는 작전 같은 것. 이게 다 베테랑 덕분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 말이, 내 글이, 어느 때는 마리화나와 서로 싸우기도 한다고. 마리화나는 피우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다음 날에도 지장이 있는데, 나의 글은 처음에는 글이지만, 마리화나처럼 따라오고, 정신이 맑아지고, 혼몽하고, 책을 더 읽고 싶게 하고, 선한 남녀를 순자의 정신으로 때로는 무장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종의 이중 마리화나일 것이다. 내가 모텔의 디자인을 개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글은, 시니피앙은, 센슈얼 시니피에를 지닌다. 시니피앙이면 일수록에, 그것의 시니피에는 강력해진다. 그것을 저지할 만한 문명은 성격이 깔따구 같은 년들 말고, 형식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도저한 한강을 우리는 거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성은 사람을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위태로운 게츠비가, 금욕적이고, 동시에 정식 성문화가 만연해 있고, 그것의 필름, 그것의 산업, 동시에 데이지한 것들을 챙기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공상과학적 우주보다는 참으로 진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진주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여자 없이, 혹은 남자 없이. 공부만, 공무만 느립다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얼마나 시니피에는 착한 줄 모른다. 그리고 생기가 넘치는 줄 모른다. 자기가 자기의 성리학적 연결만 찾는다 해도, 사람들은 왜 이리 색이 우리 키를 한참 넘어까지 있는지, 있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시간이 많은 것이다. 베테랑은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가 러브레터 하나만 남기고, 순장이 된 것도 같은 구조일 것이다. 정말이지, 혼또니 베테랑은 계속해서 호흡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미국 영화, 치킨 게임의 오마쥬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유없는 반항이 오랜만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치킨 게임 너머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유 없는 반항은 지금 보면 너무 아무 내용 없는 청동기 투구처럼 보인다. 영화 베테랑은 수많은 대수의 점들로 이루어진,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풍경만 같다....

 

 

 

그 한 사람 너머로

 

높이가 있는 사람들 몇이 있는........

 

 

"하이케.

 

후지이 이츠키 사마......."

 

 

 

 

 

 

 

 

 

 

 

 

 

 

 

 

*사진 협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