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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코스모 폴리탄은 몇 살인가? 우리 영화 사도와 미국 영화 마션의 길항관계를 두고

by 마음대로다 2015. 10. 4.

코스모 폴리탄은 몇 살인가? 우리 영화 사도와 미국 영화 마션의 길항관계를 두고

 

 

 

 

 

 

 

 

 

 

 

이것들은 개들처럼 뛰어다닌다. 그래서 백년 안으로 사는 일반인들이 폴리탄들을 그냥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동일율, 동일시, 씨밀레러티, 아이덴터티,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폴리탄들을 좋아하면, 괴물이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괴물이 되지 않은 것이냐? 딱 그 정도로 문명이 동반상승이 된 것이다. 우리의 키는 공교육으로 인해서, 엄청 플루타쿠스의 침대 늘여져 있다. 그리고는, 결정적일 때 자기와 남들이 잘라 먹는다. 그것의 습관적인 형태를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두 가지 형식과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다들 그렇게 살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지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몽주,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다. 선죽교에 피가 흐르는 것을 관찰자 시점으로 보게 되면, 그러니까 정몽주도 자기가 죽은 것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고, 이방원도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국사란 국싸구려이다. 누가 미국 영화에 아첨하기 위해서 사도가 등장했다고 하겠는가? 사도는 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이준익이라는 새끼는 약간 게이새끼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학업적인 노력이, 평범한 아우라에서도 법정, 제법 많이,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스며나온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악설이다. 늘 항상 그 모양인지, 그래서 두쥐안인지. 대만 강타.

 

미국 영화는 지금 학생들을 상대할 수가 없다. 표본실의 영웅주의처럼 좋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캡틴 아메리카나 불고자빠지고 있다. 얼마나 물씬양면으로 한국 식민주의자들을 후원하는지 모른다.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애니웨이. 옛날에는 에일리, 예일대학교와 스탠퍼드, 하벌드 대학의 공부 벅스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의 길항관계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인피니티이다. 무엇보다 먼저, 생명의 인피니티, 그리고 자기 인식의 인피니티, 모른다는 것은 아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으면 모르는 것도 없다는 자기 인식의 형태주의, 그리고 관계적인 생활적인 인피니티이다. 드라마가 한정이 있다는 것은 매우 신경질적인, 탤런트와 한번 자본 적이 없는 남자 젊은 비평가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드라마도 한정이 없는데, 일상의 생활이 한정이 있다는 것은 생각 모순인 것이다. 때문에 그 모든 인피니티를 극복하는 것이 있다고 치자.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하벌드 대학의 공부 벅스들인 것이다. 얼마나 미국이 한국의 사도를 따먹는 마션 같은 영화를 찍어내고자 피똥 싸는지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세계 의식의 저절로 길인 것이다. 인피니티는 거기서도 작동한다. 현대 미국사가 크고 돈이 많고 진정으로 똑똑한 슈프리머씨를 갖는다는 것이 우리가 불만인가? 그렇지 않다. 하벌드 대학의 공부 벅스들을 최근에도 비슷하게, 조롱이 넘치는 프렌즈 이상으로, 이상하게 어린아이들과 더러운 것 같은 해리포터를 지나서, 찍어냈다면, 작은 공부방에서 전진하는 진정 공부 벌레들, 얄개들, 한국인 유학생들, 갑자기 유행을 끄는 미스터 초이, 그랬다면 사람들은 좋다고, 재밌다고, 미제 영화를 보는 북한 사람들도 자기들의 자기장 문제 때문에도 시청했을 것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겠는가? 미제 영화를 보겠는가? 어느 것이 더 해로운 것 같은가? 반에서 손을 들게 하면, 반반 치킨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인피니티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찍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인피니티 예술을 하기 위해서 고생을 하는가? 아니면 고생을 한 다음에 인피니티 예술이 비교적 원웨이티켓처럼 발급이 되는가? 원웨이티켓. 원웨이티켓. 한국 영화 티켓. 길소뜸...... 그것의 아무 설명 없던 때의 인피니티가 그립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을 닮아간다. 그리고 늙어간다. 사람들은 얼떨 결에 키가 하벌드 대학의 공부 벅스들을 좋아할 만큼 자랐다가, 미제 영화들에 의해서 늘 따먹기를 당해서, 키가 필드 위에 놓여진 골프공만 해진다. 그것의 스윙 소리는 해쳡, 수착, 피쳐 그런다. 먼저는 박지성이 그러드만, 이제는 숱한 이제니 말할 수 있다들이 그러고 있다. 스포츠의 인피니티는 부부 싸움이고, 별거이고, 불륜이고, 아들이 그나마 차분한 인격과 끈기를 갖고 또한 스포츠 웨어를 입는 것으로 끝이 난다.

 

 

클래식 음악은 명왕성과 같다. 무등산의 해 일과 월출산의 달 월이 하나가 되면, 명왕성이 그려진다. 사람들은 주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과학적 현상과 실생활의 힘을 갖고 살아간다. 도둑이 기장군에서 잡혔다는 것도 신기하고, 경찰이 휴대폰 위치추적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다. 금세 잡힌 것을 보면, 어찌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마산이나, 대포동, 후쿠오카에서 잡혔는데, 금세 잡혀서 세계 언론이 너무 신기하게 여길까 싶어서, 기장군이라고 부산 인접 경계에서 잡은 것으로 정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의 느낌은 딱 오백미터 달리기의 느낌이 있다. 경찰들의 과학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도둑들의 과학도 신기한 것이다. 원래는 마라톤 선수처럼 달려야 한다.

 

 

 

범죄는 갈수록 과학적이 된다.

 

 

저마다의 인피니티가 깨질 것 같을 때, 유치한 피니티가 갑자기 감각적으로 인지가 되어갈 때, 그것은 몇 살이겠는가? 열 살? 열 두살? 내가 조금 유치했다면, 유치환, 바위, 혹은 해에게서 소년에게, 철썩 철썩, 꽃등심 꽃등심 아우래비 접동, 남흐로 시적 허용 창을 내겠소 수준에서 계속해서 내게 금지된 것들을 하고 있었다면,

 

 

도리어 내 다른 시간은 세상이 넒다면서 좋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