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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신학교수는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일까?

by 마음대로다 2015. 12. 26.

신학교수는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일까?












신학대학을 나왔다고 신학교수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의 가장 매몰차지 않는, 따뜻한 비유가, 사랑을 했다고 당장에 그날 저녁으로 이불을 구비구비 펼 수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두음 법칙이 좋은가? 그러니까, 연역법이 좋은가? 귀납법이 좋은가? 하고 말이다. 당연히 연역법이 좋다. 김연아가 좋다. 남자는 자기 마음을 보여주고, 여자는 자기 팬티를 보여주고, 서로 마구 자상한 것이 좋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샤워를 하면, 금세 그 물질적 흔적은 사라지겠지만, 그것의 감각과 기억은 남을 것이다. 만일 그런 왕권 중심제에서, 신이 하나님과 동격이던 태고의 원시 시대에서, 왕자가 말을 조금 잘해서 신학교수까지 되고,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까지 하는 것을 그 모든 과정의 일환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현대이고, 그것마저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독일 철학백과사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이 아프리오리 들지 않는 것은 내가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원 도서관에서 들추어보는데, 대충 문장들이 이것저것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도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은 것이, 가보지 않은 테오티후아칸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어와 나의 지식, 산과 같은 아카데믹한 선이해였고, 그러니 문맥이 계단처럼도 보이고, 피크처럼도 보이는, 그리고 독일어 공부를 조금 해서 지히나 글라이히 싸멜른 그런 단어가 못지 않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니 영어 백과사전처럼 일사천리 읽을 수는 없어도, 그렇다고 수유리 저 바깥에서 지나는 소시민이 상상하는 도서관과 책만큼, 그것의 거리만큼 하나도 모르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느 아주머니가 답답한 나머지, 아들과 함께 내 있을 때 도서관에 와서 공부를 했다. 생각하면 아름답고, 생각하면 대단한 것인데, 나는 결혼도 못했고, 나는 아이도 없었다.


졸업할 때 나는 나의 마음 속의 도시에 졸업 논문을 내었고, 그 안에서 석사를 그냥 하이패스, 박사를 받고, 오토바이 여행을 많이 하면 신학교수에 임명해주는 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니 실질의 공간에서는, 상이 하나도 없었고, 장학금도 겨우 한번 받았으며, 졸업한 후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테오티후아칸의 풍경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서울까지 한번 걸어가보라고. 그것은 정말이지 평화에 대한 의지가 될 것이다. 누구도 멕시코와 남미의 피라미드에서 인신공양의 제사가 있었다는 말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백과사전이라고 읽어봤자, 다 그런 것들의 한통속이 될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서양철학을 대단히 잘 공부했으면서도, 서양철학을 하나도 공부한 것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인신공양을 하지 않고 어떻게 신학교수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는 세상의 참 하나의 신학교수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것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라는 것으로써, 나와 비슷한 훌륭한 속성의 식자들이 많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방법이 이런 포토샾 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은 국립무등산대학교, 담당교수는 불국사 대웅전 부처님과 석굴암 부처님이 될 것이다.....



대흥사 부처님이 그렇게 축하를 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