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거대 십자가로서의 우리나라 슬픈 사찰
리우의 예수상이 아주 유명하다. 그것은 근대 건축이, 빌딩들로 압축이 되고, 그나마 공교육적인 미술 매거진으로서의 입간판이 필요했을 무렵, 차마 파리에서는 추상을 노정하고, 뉴욕이나 리우 정도에 그것을 놓는 것은 어쩌면 적확해보이는 일이었다. 오오사카나, 타지마할, 자금성이나 버킹엄에는 그런 것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미국에는 오빌리스크 하나와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앉아 있는 링컨상이 있다. 우리의 동의는 섬세한 것이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상을 찾고 싶어하는 욕심이 생긴다. 우리가 청수사에서, 다른 절인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사천왕상이 거대하게, 목조로 그렇게 있는 것을 납득하는 것은, 사람이 죽을 때 영화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은, 거대 보편적이고, 일본에만 가둬지는 것이 아니며, 생각보다 아름답고, 불교적이며, 또 생각해도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숙이 흉내냈다는 미시마 유키오, 겨우 몇 문장인 것 같은데도, 그런 선정적인 항목을 들어보자면, 그의 글쓰기는 그렇게 긴카쿠지만한 것이 아니다. 그의 욕심이요, 사랑이고, 자기 대통령이고, 글이 써지는 것이니까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인격은 파편적이고, 아무런 가게도 열 수 없고, 사람들은 외면적이나 실은 심리적이고, 감각적이나 여자들의 보편주의가 약간 지나치리만치 지워져 있다. 여자들의 보편주의에 질린 사람들이 읽으면, 와일드 세븐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도 모아놓고 보면 금방 흔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일본에서 뭘 했는지 모르는 것이다. 한국에서 김윤식이 건너가니, 티비에서 죽음의 퍼포먼스가 있다 하나, 내 생각에는 반강요적이었을 걸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기단도 없이 사는 사람들인데, 석탑도 없는 곳에서 석등을 짓고 있으니, 사람들은 거듭해서 얄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생존과 죽음이 너무 납득하기 힘든 사람에 대한 공통적인 대상성으로 스러져 갔던 것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 핍진함의 감각 때문에, 약간의 슬픔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도 먹은 것도 없이, 긴카쿠지 같은 것이나, 글이 써진다고 계속해서 쓰고 있다면, 대체 뭘 하겠다는 것이고, 그 나라의 대통령은 어느 아프리카의 것인지 도통 헷갈리는 것이다. 우리를 보면, 그만한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 여자들의 보편주의가 확진되어 있으나, 그와 같은 기단에서 도통 한 층도 올리지 못하고 옆으로 가는 것이다. 여자들은 알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여자가 남자가 된다는 것은 말도 없는 집안 사람이 말을 타고 하루 종일 제주도에서 노는 것과 같은 확률이라고. 남자는 썩은 듯이 누워만 있어도, 누군가 조금만 세워줘도 금방 피가 맑아진다고. 피는 말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기쁨도, 기분도 아니다. 그래도 피는 맑은 것이 좋은 것 같은 중지가 있다. 어쩌면 그것의 아주 오래된 주파수가 구약의 삼손이 아니었나 한다. 삼손은 괴력난신의 사나이였다. 그것은 여자가 보기에, 남자의 보폭을 가리킨다. 내 오래 사귀지 못한 귀여운 철학과 여학생이 자꾸 뒤로 숨었다. 어째서 자꾸 뒤로 숨는 것이냐고 했더니, 내가 자주 말한 것이지만, 내가 언제 숨었다고 그래요? 하고 당차게 반박을 했었다. 오래된 연인 같았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광주 교회 후배 같았고, 서울에도 이런 식의 문화적인 억양이 있는가 싶은 느낌이 혼또니 있었다. 삼손은 데릴라가 보기에, 장사였다. 그녀도 그처럼 자기를 단련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지리를 모른다는 소리일 것이다. 나도, 인애양과 사귀어서, 청담동 안팎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면, 눈이 멀 것이다. 때로는 사귀는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를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지리를 모르니, 처음으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걷게 될 것이다.
연자 맷돌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삼손이 눈이 뽑혀 돌렸다는데, 어쩌면 좋은 일을 했던 것이리라. 그것은 화살을 만드는 것일 수 있고, 마제석기, 고고학자가 유물을 탐사하면 늘 그런 것들이 수두룩 쏟아져나오니까, 철기를 소유할 수 없으니, 칼처럼 날카로운 석제 무기에 대한 욕심을 가졌을 수 있다. 그래도 그것은 화살에 가깝다. 어차피 둔기로 때리나, 칼로 찌르나, 적이 고꾸라지는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데릴라는 삼손에게 무술을 배우고, 영혼을 배우고, 다윗의 시를 배우고, 시크릿 가든 인아워티얼스,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일일이 죽일 수 없으니, 땅을 파고, 기둥을 무너뜨려 건물 전체가 붕괴되는 것을 도모했을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달라드는 것을 처치한 것일 수 있다. 우리가 교회를 영어로 처치라고 하지 않는가? 한 사람이 다 죽일 수도 없고, 힘도 부치고, 누군가 정히 안되니까 화살을 쏘았을 수 있다. 내가 죽으면, 숨을 쉬지 않는다고 누군가 사람들에게 알리면, 그것을 보고 이 심지에 불을 붙이거라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꼬마아이는 불을 붙이고, 죽은 삼손에게 뛰어갔었을 수 있다.
여자는 배신하지 않는다. 여자의 자궁은 생태계 바깥의 생명만을 토해내지 않는다.
경기장은 아무리 봐도, 자궁만 같고, 사람들은 정해진 운명을 즐겼다. 여자들은 단 한 사람도, 예수의 편에 서는 사람이 없었다. 경기장이 무너지고, 무너지는 클러스터가 다르니까, 여자들은 살았으나, 삼손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
그것이 바로 불국사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 사찰이 생겼다. 그것의 유적이자 전기들은 별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나도 지금, 자본만 있으면, 신라시대 절을 하나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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