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징 없이 살 수 없는 심볼리즘들인가?
한동안 나주 막걸리가 유명했다. 그것은 지리적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서양 우월주의, 혁명 과학주의를 치달을 무렵, 나주는 국밥과 막걸리가 유명하였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내가 소설을 써볼라고 했기 때문에, 심볼리즘? 아는 것이다. 그러나 막걸리 먹고, 국밥 먹고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가 되겠나 싶어서 그만 두었다. 친구들끼리 볼 일이 있는 게 좋다. 그것은 국가가 만들어주는, 전주 대사습 놀이여도 좋고, 횡성 한우배 천하장사 씨름대회여도 좋다. 고속으로 질주하다 보면, 해는 저물고, 사람들은 미등으로 예쁘게 내비치는 속도계와 알피엠계를 보는데, 그것의 안과밖, 야훼적인 씨에프 사진이 씨비천삼백이 아닌가 한다. 나는 대학교 때 친구들과 금식 기도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적이 있다. 그것은 만우관 로고스 비오는 익산의 풍경과 비슷하다. 그 앞에는 독도처럼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나는 금식을 하루에 세 번 한다.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 저녁, 저녁과 아침 사이. 기도는 늘 한결 같이 한다. 눈 감고, 뭐 특별하게 잡히지도 않는 아저씨 장로 문장 따라하는 것보다, 건물을 보고, 하늘을 보고, 책을 읽기 전에 보고, 휴게실에서 돌아와서 보고 한다. 뭘 먹으면서 그런다면, 커피를 들고 다니면서, 요즘처럼, 쏘세지라도 먹는다면, 그것의 고소한 임팩트 때문에, 금식 기도가 아니겠으나, 대부분은 배가 조금 고프고, 고파오기 시작한다. 암하레츠에서 부대찌게에 감자 샐러드를 먹고온 사람, 단골식당에서 이상하게 내 여자친구인 것 같은 주인집 딸의 순간적인 서빙으로 순대국밥을 먹고온 사람, 운동선수 같은 활동력과 홀의 크기가, 기숙사 식당에서 해는 뉘엇뉘엇, 내일 죽으러 갈 지도 모르는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서의 소찬휘들이 마지막 르네상스를 누리는 시각의 저녁 식사가 있었다. 얼마나 남자들은, 시골 출신의 프린스 같고, 산체스의 아이들 같으며, 둘이 정장을 차려 입고 전도 여행을 다니는 몰몬교 사람들 같았는지 모른다. 여자들은 아오자이를 입은 것 같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쌀알 같고, 밀알 같고, 씨알 사상 같고, 민알 사진 동아리 회원 같았다. 그들이 시위에 함께 하면, 이승환의 콘서트처럼 변한다. 모습이란, 저물 모에, 추위와 배고픔이 엄습한다 해서 습이다. 얼마나 죽순식으로 표현하면, 우후, 화성의 한신대학교는 초고층 빌딩 같았는가? 모나드는 솔직하고, 공부는 나만 잘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공부를 했겠지만, 신학과생들은 노는 사람들이? 설치미술 되어 있었다. 선배도 그렇고, 가장 기가 막히는 것이, 신학과인줄 모르는 사람과 수업 쉬는 시간에 담배 피우면서 만날 때였다. 그는 외국의 사신들 같았다. 지금의 내 붓으로 어쩔 수 없이 묘사하자면. 말씨도 좋고, 재치도 있고, 도서관에서 본 것 같지는 않은데, 문장은 대충 들어도 담금질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웃다가, 수업에 들어갔다. 사와디캅. 혹은 인샬라. 관념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면, 우리는 팬티를 바깥으로 입고 있는 슈퍼맨 슈퍼우먼들 같았다.
나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과를 대륙이나 국가의 단위로 묘사한다면, 이웃학과에 차고 넘쳤다. 그게 밀집되어 있으면, 그게 나를 향한 시니피앙인 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도리어 외롭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니피앙들의 연쇄가 나를 좋아하는 것들의 일레트릭 쇼크였는지, 실험을 할 수가 없다. 주자는 땅을 사랑하는 질주이지, 주자가 망가지는 실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십겹 수만겹의 옷과 같았다. 조금도 벗지 않고, 모습 속에 불이 들어오고 있는 기숙사로 밥을 먹으러 갔다. 사람들이 벌써부터 조이상스들을 내던지고 있었다. 배드민턴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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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과에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그것은 셀리와 같고, 코울리지와 같다. 나는 늘 키가 컸고, 목은 흰 와이셔츠가 특별한 칼라처럼 클래식을 자극하였다. 더군다나 몸매에 맞는 마이, 콤비, 재킷을 입고 있었다. 내가 푸른 마이, 콤비, 재킷을 입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좋아라 했다. 한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나의 관심은 하늘에 있었고, 사람들을 유혹하였기 때문이다. 보다 인간적인 씨줄과 날줄, 그것의 조짚? 같은 마이, 콤비, 재킷을 엘지 이코노미 샾에서 구입해서 입었는데, 그게 그렇게도 서강대 영문학과 대학원에만 한학기 다니는 영문학생 같았는지 모른다. 내게 자동차만 있었던들, 작고, 귀여운, 중국학과 그 키 크고 나중에 슈튜어디스가 되었다는 수원 사는 여학생과 보다 사귀었을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이다. 욕망은 무의식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모퉁이는 성경에 나오는 유일한 인간적인 헤테로인지. 한번 보자고 사정을 할 때는 언제고, 만남이 별로 흥이 없고, 내가 너무 바쁘고, 여자 쪽에서의 자발성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연락을 끊었고, 졸업식날인가? 나는 내려가는 심볼리즘의 계단에, 그녀는 모퉁이 같은 심볼리즘에서 마주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예쁜 아이였기 때문에, 키도 모델과 화보 출판적으로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너무 오랜 만에 본 터라, 같은 여자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사성 하면 한신대 총장급이었던 내가, 머뭇머뭇하면서 지나쳤다. 영문학과 여학생은 내가 기숙사를 가는 시간에, 왠일인지 바람도 불고, 저녁 강의도 다 끝나가는 시간에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만나 이야기 한 적도 없는데, 수업 시간에 나의 흘러나오는 마음을 변태처럼 반대로나 혹은 담연처럼 무정으로도 간주하기가 싫어서 두마디도 하고, 보다 웃고, 언제 커피나 한잔 하자고, 그것은 상대성이론으로는 둘이 결혼하자, 사랑 여행을 떠나자, 그와 같은 폭발력을 가졌는데, 그런 중국 상태에서, 시간은 흐르고, 가난은 인격과 비인격의 존재 사이에서 시달리고,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영문학적 질서를 갖고 있었고, 내 마음에는, 내 호주머니에는 영문학과 학회 회원증이 꼽혀 있었다. 내 학생인 것도 같았고? 실지..... 학생은 선생님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죠? 복화술로 했고, 오늘도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학교에 무슨 일로 가시는고? 복화술로 답하고 있었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우주와 존재의 관점에서, 남자가 신학생이고, 영문학도 잘하면, 다만 직업이 없다고 해도 인의 그 작은 세계 안에서는....... 둘다 모두, 더이상 마주치지 못했다. 시간표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것을 채우고, 돈도 벌고 해야하는. 가끔은 어학연수다, 마지막 낭만의 폭발이 있겠지만. 그것의 사각형 만화 도형은 더이상 소년과 소녀의 행복의 그림들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금식기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 말고는, 술도 담배도 안하고, 사람들의 극단적인 기도의 순간에 뭘 따로 할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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