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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클래식과 미리암은 같은 말인가? 주희와 헤겔은 같은 사람인가?

by 마음대로다 2012. 11. 12.

클래식과 미리암은 같은 말인가? 주희와 헤겔은 같은 사람인가?

 

 

 

 

 

 

 

 

 

예를 들어 주희와 육상산은 같은 인물인가 하는 주륙동상 같은 주장이 아니다. 클래식은 우리들이 고전 문학과 음악 등을 가리키는 예술의 어떤 대상과 수준을 뜻한다. 대개의 경우, 그리스 고전과 더불어 우리들이 상고시대의 문헌을 말하며, 근대와 현대의 특히 서양 고전 음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특화될 수 있다. 미리암은 인터넷의 도움으로 기억을 선명하게 하자면, 그 이전의 것은 다만 동호회나 동창회의 것으로서, 모세의 누이로서, 나중에 예언자의 능력도 인정받았으나, 모세가 구스 여인을 얻자, 아론과 함께 비판하다가 정신으로부터 몰각한 여자라고 하였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우리는 영문학 알 수가 없다. 서울대 백낙청. 아무튼 두 사람이 그것을 비판했다고 하고, 그것은 얼추 들어맞는 케이스가 우리들의 문화 현상 속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미술가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를 두었던 것도, 미술 하면 다 일본인 아내를 구하는 것이냐는 비난을 살 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할은, 그렇지 않았고, 나만해도 그런 생각은 할리데이비슨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클래식과 미리암이 같은 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이라는 개별자를, 어찌어찌하여, 히치하이킹하는 것일 것이다.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글 쓸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면, 우리는 숱한 쪽지의 하도낙서들을 상상할 수 있는데, 그것 중에는 가장 크고, 하도낙서 중에 제일인 것들을 국정원에서 걷어다가, 남몰래 도니체트 상을 준다고 한다면, 내 이런 말은 대상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미는, 꼬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리키고, 리는 태극은 리라는 중국의 주자학적 주장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한다면, 미리암은 그것을, 지금의 것이 아니라, 헤겔의 미학적 분수령을, 송나라 때의 주자학을 미리 알았다는 말인가?

 

우리는 앞이 어둡다. 교수는 학생들을 보통 이상의 인으로서, 지가 아니라, 끌고 가는 사람이며, 성공하면 자랑하고, 실패하면 감추는 사람이다. 사람이 수학여행을 통해 성숙하는 것과, 대학교 한 학기를 다니면서 머리에 형이상학이 생기는 것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그것이 후쿠시마의 역사의 종언 같은 말일 것인가? 대개의 사람들은 후자의, 그러니까 리, 것이 확립되고 난 뒤에 여행의 아름다운 기가 덧붙여지고 보충되며 창발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상식은 때로는 저변에서조차 기염을 토할 때가 있다. 나는 뜻하지 않게 그것의 주장도, 그것의 안주장도 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헤겔 말고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외국어를 우리가 잘 못하는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본질이 같은 동시성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각과 구분이 극명해지면, 헤겔과 비슷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가 잘 못하는 것으로서 잘리는 것일까? 주희는 바로 그와 같은 楚漢상동의 내면적 대륙이기도 하다. 우리가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고, 아파도 학교 나가고, 집에 와서 씻고, 티비도 잠깐 보지만, 미학적 결단, 더이상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책상에 앉는 행위라는 것은 어떠한 문자의 연속들일 것인가? 문자는 다만 한국어의 기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면, 헤겔과 같은 개념이 늘 쉽고, 평이하며, 백제의 그림자와 입장이 분명하다면 다만 의지가 어려운, 계급의식이 투철하면 헤겔철학이 가장 공부하고 싶은 북경대 철학과, 조금 훗날의 빛나는 중국 청년 공산당원 같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고, 부지불식중에, 오성적 개념을 추론하는 것 뿐 아니라 이성적인 사상 속에서조차 필연성만을 추구하는 것에 비해, 그나마 미학은 정신의 그와 같은 목적이 벗어나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이고 우연적인 가능성에 개방되어 있다는 헤겔의 지적은, 책장을 넘기는 우연처럼 늘 감각적이고, 헤겔 그의 말로써만 아름다운데, 문제는 그와 같은 우연이 필연으로 수렴될 때가 있지 않겠는가? 태극은 숱한 형상의 계단을 갖고 있고, 사마천이 어린 시절에 지방관의 아들로서, 소학에 준하는 지와 의의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을 학자들이 보고, 장로들이 토론하여, 사기를 쓰고, 왕이 되게끔 하는 길을 걷게 한 것도 태극의 지극한 한 상상이다 할 것이다. 리는 당연히 태극이지만, 학교 친구도 그렇고, 고구려도 아니고 서울 여자친구는 음양으로서의 기인 셈이다. 기는 분명 유사 리와 같아서, 오직 태극에만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반대의 경우, 민중들은 표정만은 태극에 있다가, 음양의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주희는 헤겔과 같은 사람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소설에, 희와 겔은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이야기로서 표명된 바가 있다. 그리고 광주에서 가까운 장성은 홍길동의 고장이라고도 한다.

 

 

 

 

 

어느 사진이 좋은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 예쁘다 할 것입니다. 역사는 아내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노총각이 장가를 간다는 소식만큼 황소가 헤설피 웃는 완전한 어거스턴 피리어드가 없습니다. 사진들이 모두 훌륭한 이성을 갖고 있습니다. 해석이 이성인지, 이성이 아내인지, 무조건적인 미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소는 호남신학대학교 커피하우스. 맨 먼저의 사진은 미발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돕는군요.^^ 큰 사진으로 가장 잘 나온 것은 두번째 사진입니다. 뭔가 긴박합니다. 상은, 하나뿐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