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어깨가 뜨겁고, 피곤한데도 시인이 될 수 있는가?
우리들의 모든 시방삼세 어깨결림과 가슴답답증, 이승훈 교수의 귀여운 졸시의 불안과 우울증은 모두, 시간차 공격 같은 것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차 공격을 하면, 적들의 난황이 보이지 않는다. 생활세계의 필연성이란, 세계 각국의 게스트 하우스처럼, 적들의 어린이들을 보다 이코노믹하게 보다 저렴하게 보다 융숭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지상명령 같은 것이다. 독일은 철학과 음악이 전쟁으로 파산하고, 경제로만 유지되다가, 그것의 데드싸인 같은 것이 세계 사람들에게 전파한 게스트 하우스가 아닐까 한다. 도미토리. 그것은 인도에서, 네팔에서, 남미 볼리비아에서, 서울의 한옥마을에서 빛을 발하지만, 개인의 취향일지라도 일본의 것에서 더블 라이트를 발한다 하겠다. 내가 약간 히도이 하게 말한 것처럼, 일본은 전체가 게스트 하우스 같다. 그들의 한글 간판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며온다. 우리도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시방삼세 살기 좋은 세상인가? 그리고 옵티컬 일루젼처럼, 한국에 있는 일본 간판은 내가 읽지 못해서 눈에 덜 보이는 것이다 할 수 있다. 나카가이치가, 서정주의 동천처럼, 백어택을 하고, 점수을 따서, 다 이긴 경기를 막판에 우리로 따지면 역전을 당해 지게 되면, 그것이 그렇게도 어이가 없고, 그럴 것도 같고 한 것이 없었다. 백어택은 시간차 공격과 더불어 이뤄진다. 속공도 그러하고. 그렇다고 보면 우리는 배구의 거의 모든 헌법을 알았다고 해도 좋다. 법은 알아도, 순자적 의미에서 지킬 수 없는. 키가 작고, 해본 적이 없으니. 다만 스파이크만 해도, 미국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 정도로, 만족감을 사진찍고 과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 누군가 시간차 공격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영원히 불안에서 해방된 사람일 것이다. 시간차 공격이란, 인종과 계급, 재산과 국가의 문제에서 해방된 것을 말하며, 엊그제 말한 초한상동의 대륙을 질주하는 야마하 알원과 같기 때문이다. 눈을 조금씩 떠서, 사도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시간차 공격처럼, 집에 오면, 가족들이 조금 더 자라있고, 아이들은 성격이 온화하며, 아내는 공부하는 시간까지 있고, 아무런 핑계나 머리 아픔 같은 것이 없다. 집에 오면, 독립하여 없는 사람들이 생기고, 아내는 조금 더 늙어 있고, 다시 집에 오면, 거의 완전히 늙어 있는 아내만 눈에 띠고 저 멀리에서 아들 내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면 백어택이란 무엇인가? 스파이크만 해도, 불안에서 벗어나며, 시간차 공격만 해도 멋진 알원의 늙어서도 빛이 나는 기사도 정신이 된다면, 백어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의 형태주의적 시퀀스는, 어떠한 부산영화제의 특징을 갖고 있고, 우리 사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나는 가수다는 우리에게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스파이크였고, 우리의 지각 없는 삶에 대해 갑작스러운 프로그램으로써 얼굴에 붉은 손바닥 그림자들을 갖게 한 것이었다. 한 대 정도는 마음이 언제나 태양 같은 청소년들은 도리어 혈액 순환이 되고, 잠이 달아나며, 왠지 모르게 힐러리어스해져서는 마지막 수업이 기술 수업인데도 자지 않고, 노트 정리를 반장처럼 하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시간차 공격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스파이크 조차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노래로써 배구 코트 바닥에 스파이크를 찍을 수 있다는 가상. 팔. 적인. 동일시. 느낌. 같은 것. 어려서부터 용돈이나 선물이 없는데도, 집에 찾아오는 것이 늘 반가운 삼촌이 카메라 가게를 열어서는, 스파이크를 주장으로서 잘하는 조카의 경기에서, 다섯 명의 사진 기자를 동원해서 사진 찍는 열정 같은 것. 그것은 클래식한 것인가? 아니면 민중의 민무늬 야상 같은, 오래된 연병장에 늘 숨어 있는, 후임병 사랑 같은 것인가? 사진을 찍어서 함께 보고, 인간이 그와 같은 비커밍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높은 가치의 사건이기 때문에, 그 옛날의 은주와 금주 주인공 이름들의 드라마 보고 또 보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은주는 중국 공산당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금주는 내가 매우 싫어하는 종류의 국문학적 맹아이다. 노동은 쉽게 관념이 되고, 중국 공산주의가 독일 관념주의가 되는 바닷가와 같은 현상학적 이미지즘일 수 있다. 금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극중에서도 결혼을 했다. 은주는 은주이고, 금주는 관념이다. 결국에는 은주가 예쁜 옷 입고, 귀에 먹이 차도록 혼자 지내는 자본주의 잉여의 타임머신에 탑승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현상주의적인 것. 은주가 일을 하다가, 노동의 서정주의 화사집 같은 금목걸이를 선물 받는데, 어찌된 거야? 물으니 남편이, 갑자기 현직 수사관이 되어서, 응, 수배범을 잡아서 보너스 탄 거야. 현상금 같은 것. 그런 현상추수주의..... 은주는 급격한 한양대 이승훈 교수처럼 불안에 휩싸이는데, 남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라지고, 그런저런 설명의 내용은 이삿짐 센터 사람들이 다 날라주는 것인 듯, 음악을 깊이 들으면서, 마냥, 조금씩 금주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상수배범은 누구인가? 결국에는 관념주의자가 아닌가? 아이디얼리즈머?........ 은주는 그 남자, 관념주의자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쇠사슬을 금목걸이 삼아 걸고 있는 게 아닌가? 쇠컵을 계단에서 떨어뜨리고, 거기서도 우리들의 클리쉐가 된, 리베라 소년합창단의 음악이 흐른다.......
하나님은 그 모든 운명을 예시하신 것처럼, 나는 나다 한다. 영화와 공명의 깊은 계단 속에서.......
나가수는 높은 은주이다.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소망교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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