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W의 안타까운 조바꿈을 보면서
우리 옛날에, 가난했던 시절에, 어째서 내 다리 내놔 하는 전설의 고향이 재밌었던가? 그것이 사실 닭백숙의 다리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날에, 가난했고, 백숙을 어떻게 가족끼리 해먹었다고 하면, 그렇게 마을에 자랑거리가 되곤 했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달력은, 적당한 공권력, 그리고 생일 날 같은 데에 동그라미가 쳐있고, 개학 날짜에 쳐있고, 그리고 우리가 못해본 것들을 한번씩 해보는 것으로다가, 살았던 것이다. 여름 날에 닭백숙, 삼계탕을 해먹으면, 경쟁에서 뒤진 것 같지 않았고, 늘 그렇게, 어떻게 보면 바닷가 마을의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마냥, 적당한 머리 없는 무등산 수박 같은 부자들이 좀더 잘먹고 잘 사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을 직관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누나나 형들이 잘생긴 편이었다. 그리고 학교 공부도 잘했고, 말들도, 그림도, 글씨들도 그렇게 잘쓰고 잘 그리고 했었다. 그러나 나는 가난했고, 남들이 다섯번이나 열번 정도 닭백숙을 먹는 중에, 한번 먹을 기회가 오면, 과연 인간에게는 그런 컴퓨터가 있는지, 그렇게 맛있게, 양적인 정신성일지언정, 그것이 있는 사람들도 이런 복지를 누린다는 사실에 유토피아적인 행복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너무 그렇게 세상을 기독교적으로 양분해서는 안되는데, 부자고 공부도 잘하는 사람들은 늘 언제나, 신앙이 없고, 책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클래식이나, 그림 그리기 같은 것을 할 줄 몰랐었다. 처음에는 그와 같은 차이와 차별이 별로 많지 않았다. 많았다고 해도, 그렇게 가치를 두지 않았다. 내가 먼저 불편했고, 얼른 다른 관심이 생기면, 그와 같은 성차별은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교회에서 가르친 말이었으나, 그것이 소통이 되고, 소리가 나고, 내가 보이지 않는 그리로 걷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뭐라도 맛있게 먹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공부도 좀더 잘되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은 한약방의 서랍이었던 것이다. 향기로운. 그리고 내 작은 누나는 더욱 흥이나서, 돈이 들지 않는 재료로도 음식 맛을 기가 막히게 내었다. 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와, 종수는 한 서너 번, 대련이나 도균이는 한두 번, 누나가 맛있게 복음밥을 해주면, 별로 인종차별주의라든지, 영암서킷 같은 것은 없었으나, 종수집에 살 것처럼, 내가 종수집에, 종수가 없어도 가서 잠도 자고, 티비도 보고 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백번을 갔다고 해도, 뭘 맛있게 먹었다는 기억은 하나도 없고, 의리를 먹고, 친구와 함께 사는 세상을 그리고, 종수 형과 누나들의 책들을 좋아하고 했던 것으로 그쳤던 것 같다. 쌀이 정부미니 맛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다른 것들도 다들 오르지 않는 언덕길에서, 무슨 바쁜 일때문에 천천히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종수 누나가 다른 면에서 보면 예뻐 보일 수 있었는데, 한번도 내가 다른 친구 누나에게 가졌던 마음을 가지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을날이 되어, 또 나는 종수집에를 갔다. 늦게까지 놀다가, 또 밥을 먹고 가라고 해서, 대부분 그 전에 집에 오곤 했지만, 이야기가 그날따라 재밌는 날에는 밥을 종수와 먼저 먹기도 하고, 나중에 먹기도 하고, 어른들과 함께 먹기도 했었다. 맛이 없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 마쓰이가 미국에서 활약할 때, 그것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간해서, 미국 프로야구가 재밌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종수가 불쌍했고, 그와 같은 결심으로써, 종수와 헤어지는 일이 없이, 청년기를 지낼 수 있었다.
종수가 언젠가는 여름에 우리집에 놀러왔다. 누나가 가끔 떡볶이도 해줬고, 비빔국수 같은 것을 해줬다. 전자는 그랬을 것이라는 수학적 계산이고, 후자는 대충 기억이 난다. 나는 그와 같은 강단 비평, 혹은 강단 철학 같은 것을 가질 수 없었다. 늘 누나가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종수의 눈은 아주 초롱초롱했졌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말로 하는 칭찬은 듣기 좋은 음악과 같고, 마음으로 하는 칭찬은 침공을 당한 것처럼 오래가는 법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내게서는 듣기 좋은 음악이 나왔을 것이고, 왜냐하면 나는 표현주의자이기에, 같은 맥락에서 친구를 보자면, 낭떠러지에 떨어진 어린양처럼, 예수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어렵게 그와 그의 처지를 구원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만회는 되었다. 몇 년이 지나, 고등학교 졸업식에 내가 갔고, 종수 누나와 겨울날 충장로까지 나와 맛있는 돈까스도 먹고, 친구 옷도 사고 했기 때문이다.
전설의 고향에서 내 다리 내놔 했던 것은, 그와 같은 우리 민족의 선험적 종합판단과 같은 미학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도시를 갖고 있었고, 그것은 우리 안의 정신에 깊이 감추인 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처럼 외국의 멋진 건물과 훌륭한 자동차를 좋아하는 민족이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 W가 몇 회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종합판단의 거미줄 위의 이슬 같은, 미학적인 피사체는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와 그제의 것에서는, 분명 조바꿈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고, 내가 천 개의 고원을 넘고, 만개의 평원을 지난다 해도, 따라올 것 같은 문예지로서의 브레히트 낯설기 하기가 너무나 히도이데쓰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종수의 집에서도 벗어나서, 우리는 음식이 맛있다 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절이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분다. 어느 딸은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를 것이고, 큰 아들은 집에 별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막내는 늘 학대를 받고, 그래도 부모님과, 어머니와, 또는 집순이 누나와 잘 지내볼 유토피아적인 소망으로써, 그럴 요량으로, 음식 이야기 같은 것을 계속해서 할 것이다. 노력하면 통하게 되고, 그것은 어쩌면 방송국 같은 지혜이기도 하다. 뭐라도 노력하여 알려고 하면, 그만큼 분쟁과 다툼, 미움과 학대의 모나드는, 그와 같은 양적 질서 위에서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비만율이 높아지게 된다. 책을 읽으면 싸우게 된다. 그것은 유리왕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가 꾀꼬리 정도면, 싸우지 않을 수 있다. 펄펄 날 수도 있고, 암소쏘리, 정다울 수도 있다. 민중의 뇌는 순간순간 꾀꼬리만 해지기도 하고, 책을 읽는 사람처럼 되기도 한다.
가을 밝은 날에, 다만 아무 생각 없는 열정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훼이드 아웃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원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닭다리를 백 개 먹으면, 처음에는 장난일지라도, 그와 같은 시공간 안에서, 우리의 뇌는 분명 닭다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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