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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쳐블, 낫엡솔루틀리

by 마음대로다 2017. 1. 17.













언터쳐블, 낫앱솔루틀리





맑은 영혼의 계보는 한결 같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고 죽고 병들고 살고

하는 것은 원시 시절과 매한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는 나라의 지명이라든지, 세계인이 쓰는 한국어의 편린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그것의 뿌리가 나주를 조용히 흐르던 영산강에 있을 수가 있다.

말마따나 마한이니만큼, 말을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녔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그것에 헤겔이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늘 동양의 고전은 바로 신학을 뜻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 신학과 신학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2등급의 신학을 자기가

지금하고 있다고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늘 어린 시절 소년의

뜬금을 갖고 있고, 땅바닥에 그것의 근초고를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절대적 우위를 과시하곤 한다. 마땅한, 추가적 논문 발표라든지

선셋 회보에 기고한다든지 하는 것은 일절 없다. 


나중에는 하고 싶으나, 지금은 다른 옷소매에 나의 팔을

집어 넣고 있기 때문에, 안으로 굽질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헤겔로 따지면 이백 년이 흘렀고, 동양 고전으로 하면

수천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그들을 전공하고, 공부하고,

따지고 묻고, 이가탄 한 사람들이 분명 있고, 많을 것인데, 어째서 신학자가 없고

철학자도 없으며, 그것은 부유하고, 마치 사물놀이처럼, 북조선에서는

탈북자가 나오고, 그들을 적발하기도 하고, 그들이 남한에서 작은 직업도 갖고

연예인들을 좋아하고 하는지 말이다. 


*


내가 헤겔을 공부할 때였다. 나는 좌절하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설가처럼, 이야기를 꾸미고, 플롯을 꾸미고, 그것에 사람들을 자빠뜨리고

넘어뜨리고, 빠뜨리고 하는 것 밖에 없는 듯 했다. 왜냐하면, 여자 친구들을 상대로

약을 팔면, 백이면 백, 나의 즉흥적인 서정시적인 약을 사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산업적인 원인을 몰랐고, 다만 내가 인기인이 될 확률이 높구나

하는 것으로 밖에는 그것의 놀라운 사업적 추진을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다아아몬드가 없는지

나의 말에 상대에 대한 진심이 개념처럼, 헤겔의 개념주의처럼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들을 좋아한다.

대게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돈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 미시적으로만 보면

그들은 나를 서양의 철학자처럼, 고전 음악가처럼 좋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청포도처럼

해댔으니 말이다. 나는 헤겔리언이란 말이 좋았다.

바르트도 싫고, 틸리히도 싫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이육사의 청포도 같은 성경 본문을 좋아했고, 잘 모르는 자연 재해나

잔혹한 궁중 비극 같은 것은 멀리 하였다. 조금씩 접근하였지,

가버나움처럼, 너도밤나무처럼 싸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다가

택배 아저씨처럼 종말의 대지 위에서 만나는 것이 

그의 철학적 회전이었고, 그것들의 보이지 않는 영향들이었다.


하이데거는 이중 모음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신헌군이었을 것이다. 아주 담백하게 말하면, 지금처럼 용감하게 

매섭게 말하면, 그냥 공중을 나는 단도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고, 철학적 개념이란

의식의 양가적 형식에서 인식에로, 그 안에서 대상의

구상적 기초를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본능적으로

체득한 것이었을 것이다. 개념이란 순간 묵향에 사로잡히는 것이고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세부적인 대상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전경이 다가오듯이, 그러다가 독일철학적 개념이 우리 사는

대지에 기둥처럼 박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보이는 것에

그리고 감각적인 것에, 사람의 머리를 서로 맞대고 뇌물을 주고받고

하는 것으로 밖에 나의 깊은 두려움은 어쩌면 계산하였을 것이다. 


그것의 내 느낌은 강원도 정선에서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



그러니 지금은 그로부터 얼마나 많이 지나온 것일까? 



지금은 이런 것으로 밖에 회고가 되지 않는다.



음악을 잘하면, 얼마나 사랑이 기초적인 감각에서부터

기능적이고, 음악적으로 그것의 지식소가 잘 쌓여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철학도 그렇고, 철학적 개념도 그렇다. 


내가 대학 도서관에서 여러 지방자치제를 돌아보다가,

그러다가 막중하고, 그와 같은 독서를 계획하고, 정리할 것을 약속하고,

마치 그것들을 향한 원대한 계획 중에 하나라고 여겨서는 안되지만,

내가 삼성에 입사하기 위해서 삼성에 다니는 삼촌과 자주 연락을 하는 것 같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흐르는 물에 여러 번 발을 담그는 것처럼

신학과 친구들보다는 철학과 친구들과 만나고, 교유하고, 술 마시고

그랬던 것이다. 철학이란 소유인 것일까? 개념의 정리는 서양에 

많이 이뤄져 있었고, 일본 사람들이 암암리에 도깨비를 좋아하다가

폭설에 애를 먹은 것처럼, 그것의 고통스러운 교류를 많이 

고백하고 있었다. 윤동주는 그 눈밭을 외로운 시들로써

걷고 있었다. 


국가가 그렇게 개념이 있는, 프로이센 공화국 같아야 하는가?

그리고 개인이 늘, 수많은 철학과 판단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가?


나는 그때도 그와 같은 이상한 절대주의는 반대하였고,

비상한 미모의 철학과 학생은 만나고 싶은 생각만 간절하였던 것 같다.

내 사는 나라에 단순법 이상의 개념이 넘치고, 도서관에 가득하고,

동시에 수많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철학적 센스가

문학적 표현이 훌륭했으면 하는 꿈을 어쩔 수 없이 감추고서 말이다.......


기숙사의 계단 세 개를 자동차의 세단이라면서

좋아했던 것처럼, 








* andre gagnon, flash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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