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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해가 지지 않는, 해석, 석가, 해석의 가문? 그런 것이 지지 않는.....

by 마음대로다 2017. 8. 2.

해가 지지 않는, 해석, 석가, 해석의 가문? 그런 것이 지지 않는.....






사람들은 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지면 진 것이고, 이기면 이긴 것이지, 끝내 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좋은 근대적 지식의 교류가 단절되고, 일본으로부터 식민지적인 관계만 있어서, 영국이 식민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때, 기분이 묘했었다. 우리도 강력한 군사국이 되면, 식민지를 가지지 않겠는가 하는 원죄의식이, 그와 같은 강력한 교양국가를 만나서 묘하게 남의 꽃이 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꽃부리 영이라고 하고, 길리엄이라고 하고, 영건이라고 하며, 영식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당한 기억만 많이 있어서, 조금만 소유해도 우리는 극심한 죄의식에 휩싸였었다. 일본은 클래식의 관점에서 보면, 가진 것도 한심해 보였고, 가지지 못한다고 하면, 이를 테면 고급한 문화 같은 것, 더욱 한심해 보였으며, 음식이 달고, 짜고, 오직 그렇게 달고 짜고, 음식이 달고나도 아니고, 그래도 한심해 보였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 같았다. 미얀마에 그런 불교가 있다고 한다. 해석하지 않는 영원한 석가의 나라. 석가가 한자어로, 외국어를 해석 잘하고, 뜻을 해석 잘하고, 그래서 사전을 뒤져볼 필요 없이, 작은 집의 거실에서 가족들끼리 모든 것을 해결 보는 집이라고 한다면, 미얀마의 그 이상한 고대 불교는 그와 같은 불교적 의미만을 차용하여, 사람들의 번뇌 의식을 더욱 차갑게 단련시킨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또한 가치의 각축장이 다 된 지금의 티비에서, 사대강 사업 같은, 아무렇지도 않게, 미얀마를 사랑하지도 않게, 방영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이상한 미얀마 불교의 한 장면 밖에 더 되지 않겠는가? 


모든 영화는 그것의 첫사랑이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과 같다 하겠다.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라. 그 한 사람이. 그 한 배우가. 다른 데에서 적당한 연장이 있었다고 한다면, 올리비아 핫세가 다른 데에서는 데스데모나로 나왔는데, 그것도 그렇게, 레이디 맥베쓰로 나왔는데, 그것이 더욱 호사가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우리의 인생은 올리비아 핫세와 같고, 그래서 공공연하게 내가 에스이에스의 유진을 핫세와 닮았다고 떠드는 것이다. 둘은 영원한 일반인과 같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그렇게 심도 깊은 슬픈 음악을 작곡할 것만 같았다. 악마든 천사든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천사는 생각이 더 깊기 때문에, 바하가 아무거나 작곡해도 상관 없다 했을 것이다. 바하의 음악은 거룩하지만, 슬프지가 않다. 슬픔을 끊는, 단장의 능선 전투 같다. 해석과 공부, 연습과 경험이 있어야만, 그것의 대수의 그래프가 풍경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막귀인 경우에는, 잘 보이지 않으며, 다만 슬픈 것 같은데 슬프지 않다는, 자기도 모르게 억지로 고급스러워지는 시간만이 허락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슬픈 것이다. 엘리트도 슬프다. 우리는 엘리트이다. 그것의 선도 주자가 일본에 있었는데,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만화로 부활을 했지만, 정말이지 만화처럼 끝이 나고 말았다. 일본은 경제력, 부자력, 군사력, 서양력, 정신력, 문학력, 영화력 같은 것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분명 생각했었다. 과도하게 자기들을 부풀려 갈 때, 후지산을 보면 그것이 오히려 반대로 꺼지기도 했었다. 후지산이 무엇인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해석이 없고, 인용도 없고, 그것을 잘 맞춰주는 가족도 없는, 그 평범한 막귀와 막눈들이 지나다가도 보면, 그렇게 아름답고, 촉촉하고, 하늘처럼 공부를 잘하고, 뭐든지 일등을 할 것 같고, 헤겔의 정신현상학 같은 것도 사람들에게 잘 가르칠 것 같고 하는 것이다. 하다가 말고, 대충 넘기고, 적당히 감추고, 때로는 반대로 행하고, 부끄럽고, 제따이 그렇지 않고, 억지로 연기하고, 그런 것으로는 학자고, 부자여도, 도무지 그것의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레퀴엠이 가장 슬프고, 웅장하고, 장엄하냐? 음악적으로는 그것이 한계이고, 그것보다 더욱 슬플 수가 없다. 지성을 포기하고, 전체에의 의지, 김현을 포기하면 슬픈 발라드의 초원을 우리가 만날 수 있다. 그것도 어렵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나, 아무튼 클래식적인 장엄함을 포기하면, 그만큼 쉽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가장 슬프고,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개인적이다. 모차르트가 모짜렐라 치즈, 그러니까 자기의 살과 피를, 그냥 그대로 악보에 쏟아부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차고 넘친다. 어떤 주부가 한경 광파 오븐 렌지를 사서 요리를 하는데, 남편이 치즈를 좋아해서 모짜렐라인지는 모르겠으나, 피자 치즈를 가득 부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일이다? 내게만 아무렇지 않게 유명한지 모르겠다. 나도 조금 많이 넣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그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개성이 없는 것 같다.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개인적인 사랑이지만, 고착되고, 사랑이 되면, 그러니까 은하철도 구구구의 첫번째 경유지인 화성의 경우처럼, 사람들이 다시 기차에 올라타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에, 먼지 바람이 전기와 함께 불어와 그 사람들을 화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화석이라는 단어를, 그리고 그와 같은 내용을 접할 때마다, 나는 늘 은하철도 구구구가 떠올랐다. 누구도 다시 올라탈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학생 제군들이 공장처럼, 적어도 작은 학원처럼 길러진다면 모르나, 길라임, 혹은 길영, 그 엄청난 클래식의 공간에서, 사적인 방을 하나 만들더니, 나머지 사람들은 그 모나리자 얼굴을 보려고, 루부르 박물관을 방문한다지 않은가? 내가 프랑스로, 그들의 박물관을 가지 않는 것은 이런 학자 혹은 작가적인 자존심 때문일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없어서 가느냐? 그렇지 않다. 자존심이 있지만, 사랑과 여행적인 낭만이 더 커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모차르트의 레퀴엠의 시간이 너무나 높고, 기적과 같고, 때로는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것 같은 해석학적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둘의 사랑은 다음 기회에. 그처럼 슬픈 농기구가 없는 것이다. 맨 손으로 농사 짓는 것보다, 타제 석기, 마제 석기, 청동기 비파형 청동검으로 농사 짓는 것이 더욱 결실을 많이 맺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 아닌가? 레퀴엠은 농사를 짓고 있지만, 그와 같은 전원의 풍경 위에서, 다음 기회에가 갖고 있는 비극적인 인간의 시간을 동시에, 그러면서도 풍성하게 내비치는 것이다. 슬픔은 숱한 기교에 의해서 사라지게 되고, 기독교적 전통과 습관, 그들의 문화로서 정말이지 암모나이트, 배트맨 다크나이트 할 때, 아름다운 화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 때만큼은, 형상도 짧게 머리를 치고, 해석도 명찰을 가슴에 달아, 꼭 포토샾에 내가 개콘 같은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아직 처음이었던, 그런 기차 여행을 떠날 때의 가족 소우주를 상기시킬 때가 있는 것이다. 내 막내 이모가 그런 일을 자청했는지 모르나, 때로는 레퀴엠 그것의 기차 바퀴 소리가, 성공을 한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정말이지 인간은 밑도 끝도 없이 작전만 같다. 얼마나 그것의 뜻이 슬픈가? 아카데믹은 심오하고, 반복적이고, 점점 식사량이 작아져서, 사람들에게는 참이슬만 먹고 산다고 뻥을 치는 세계만 같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정신과 육체가, 육체의 요구처럼 양적인, 그리고 오직 관계적 질서만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것의 잉여가 매일 같이 정신인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산법은 묘한 것이다. 그것도 뜻이 슬프기가 한이 없다. 육체로만, 오직 육체로만, 쏠라 치닷는 사람이나 가족이 있는가? 그것은 정말이지 고대 중국 불교의 오랜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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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 몽연 후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긴 떠올리는 사람조차 많이 있지 않다. 나는 너무 오래 혼자 살았다. 그리고 앨범 정리 같은 것이 성실치 않았다.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옷을 아주 예쁘게 입고 왔다. 나는 신학과생이었지만, 주말에는 거의 학교에서 놀았고? 신학적인 의무 같은, 그런 서클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하지 않았었다. 가장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 합창단이었는데, 그것도 힘들다고 마다 했었다. 몽연이라고, 몽당연필, 그것은 신학생들에게 아무런 뭣도 없었다. 그냥 일반 학과들의 모임에 있는, 그런 식의 호기심 천국 같은 곳이었다. 동아리실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새로 사람이 들어와도, 원래 비사교적인 억지 학교 학생들인 경우에는, 그런 소프트한 곳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내비치곤 한다. 어느 날은 예쁘게 옷을 입고 나왔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분명히 막 예쁘다고 했을 것이다. 멋진대? 그런. 우리는 비기독교도인이지만, 그런 고급한 문화와, 대리인에게, 그와 같은 주자어류 현상은 매순간 발생하는 것이다, 인정을 받는 것을 또한 좋아하기도 한다. 트렌치 코트를 입었었나 했을 것이다. 너무 좋아했었다. 나는 내 말에 조금 기분이 좋은가부다 했었다. 그리고 빈 동아리실에서, 과감하게, 여자가 자리를 뜨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랑의 달타냥을 무작위적으로 내비치곤 하는데, 나는 그런 식의 명랑함이 좋았었다. 그것은 내 전공이기도 하고, 레퀴엠 부전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예 상담을 했는지는, 기억의 장난 같은 것이다. 내가 지금 압박을 받아서, 너무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에피소드를 억지로 집어넣는 것인지 모른다. 그때 처음으로 남의 달타냥으로만 사는, 일반 학과의 여학생 같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