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전쟁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철학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우리가 보통 프리 소크라테스 시대라고 부르는 때가 그것이다. 그것의 흔적은 매우 다양한 그리스 고전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록에서. 소피스테스를 대학 다닐 때, 최신한 교수와 함께, 존재론인지, 형이상학인지, 하는 수업에서 함께 읽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 그런 때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좀비들 빼고, 평생을 부유하게 살고, 남다른 음식향을 자랑하는, 남도의 명가, 엘에프 식당가를 다닌다고 해도, 잘 모르는 말로 순두부 찌게를 한번 먹어보는 것이 아니라, 양념장이 기가 막힌 순두부 요리를 먹어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어떤 처녀와 함께 일본으로 가는 거북이 등에 올라탈 수 있는가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들어가는 것이 생명이니 나오는 것도 생명인 빛의 함수로 살면서, 거기에 덧붙여 그와 같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검정색을 만지고, 메구로가조엔, 덧붙이고, 사랑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못해, 정말이지 독소불가침의 영역인 것인 것이다.
하이데거가 그것의 청년 정신을 연장해주기는 하나, 또다시 헤겔로 돌아가야 하고, 헤겔에서는 그다지 완전하지 못하고, 쉘링처럼 기교적이어서도 곤란한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고통스럽고, 갈수록 하이데거는 미국 영화 하이렌더 같아지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를 읽을 때, 대체 이 단단함과 자연스러움은 누구의 것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학생은 할 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다. 배운 것이 없는 그 옛날의 농촌새끼들처럼 순박하고 착하나, 할 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여자들이 우연히 남자들과 논쟁할 때가, 세상 어느 아름다운 무희보다, 가장 현대 마이티 3.5t처럼 놀랍고 즐거울 것이다. 보통 프리 소크라테스의 시대라고 함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가리킨다. 그러니 둘을 가지고 있다면, 소크라테스를 몰라도 되고, 플라톤의 전시작전권 같은 것은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최신한 교수가 많은 것을 가르쳤다. 존재론은 변증법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억지로 짜내는 기억으로는, 주된 논제였었다. 하이데거가 그의 유명한 말로써, 그것을 가리켜 존재의 변증법이라고 했었다. 사람들은 변증법을, 얼른 변유니, 사유니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쉽게 말해, 물질과 역사와 나의 사유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보면 필연적인 음탕성 같은 것일 것이다. 해서 존재의 변증법을 하이데거가 추구하고, 후대의 해석학자들이 존재의 해석학으로 그것을 차용하고, 성경 해석학과도, 막무가내로, 죽음에 이르는 도정에서조차 소개팅을 시도했었는지 모른다. 존재는 비존재이다. 그것이 처음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인 것이다. 우리는 순서가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라고 여기곤 하나, 실은 헤라가 먼저이고, 파르가 나중인 것이다. 그것은 삼국사기의 고려사본기에서도 나오는 내용이다. 헤라가 그렇게 말하니, 파르가 존재는 존재이고, 무는 무이다 하는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을 갖고, 우리는 거의 모든 영화를 다 찍고, 드라마도, 시도 짓고, 청년들은 천년의 사랑 같은 보지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그 말을 갖고, 실은 플라톤이 거의 전부의 저작을 지은 것일 수 있다. 무에 포섭되면, 그것은 다만 방편불교인 것 같으나, 금방 신라토용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회복할 수가 없게 된다. 주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그의 신경질을 들을 때에나, 비로소 웃고, 옛 기분을 회복하고, 좋아하고 하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거의 전부의 병법인 것 같으나, 백만 대군이라고 하면, 그의 실제의 군사는 그것의 절반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생각이 비존재가 되면, 처음에는 적을 무참하게 무찌를 수 있으나, 결국에는 아무런 아군이 없는, 다만 생명의 필름이 끊기기까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유입된 경로인 것이다. 생각이 비존재가 되면, 세상에는 재밌는 일이 참 많이 일어나게 된다. 생각이 무슨 생각으로 비존재가 되겠는가? 처음에는 그것이 생각인 줄 알았다가 그리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가? 함수가? 함대가? 처음에는 그것이 생각인 줄 알았기, 동복, 때문인 것이다. 다만 재산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는 철학, 상상할 수 없는 목적, 생각을 다시 얻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심장을, 누군가는 집을, 누군가는 생각을. 꼭 오즈의 마법사처럼. 헤라클레이토스는 여신 헤라 정도는 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세상이 본래 그런 줄 알고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옛날에 그렇지 않았던 것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는 훌륭한 사람이다. 헤라는 그런 면에서, 여신 정도는 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영원한 철학이고, 헤라는 보살 정도는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옥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지옥을 갈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절은 옳고, 반절은 그른 것이다. 그냥 처음부터 음탕한 변증법 아래서, 마땅한 사료나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착하고, 순결하고, 지식이 많고, 직업이 있고, 돈도 있고,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지미집도 있고 할 것으로나 산더미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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