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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연장이란 무엇인가?

by 마음대로다 2017. 8. 5.

연장이란 무엇인가?






이상하게 피곤할 일이 있어서, 잠이 깊이 들었고, 그래서 다만 그것이 물리적 현상이거나, 평생 경쟁에서 뒤쳐지는 손권이나 원소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 사람이 직접 여기까지 와서, 큰 배를 타고, 별다른 계획은 하나도 없이, 내게 잠보라고, 안녕이라고 말하고 간 것 같았다. 급하게 전화를 받을 일이 있어서, 전화 받으면서 혀가 꼬일 것 같은 느낌은 평생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어나 잘하면. 적어도 어느 외국어라도 잘하면. 기독교 신학은 유학과 같아서, 외국어를 조금이라도 잘하면, 마음껏 사요나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것은 카드와 같아서, 실제가 아닐지라도 꺼내볼 수 있는 좋은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방언이라도 잘하면. 자기 한국어가 꼬이고, 그렇게 문의 경첩날에 개구리가 뛰쳐나오게 되면, 얼마나 우리는 전진하지 못하였나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새로 이사한 곳의 티비가 화질이 비상하여서, 나처럼 예민한 사람이 재미를 챙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그 아름다운 기술 사이로, 걸어서 세계속으로 러시아 편과, 손기정에 관한 프로그램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러시아 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루 말할 수가 없이 아름다웠다. 내가 최근에 포토샾을 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 같고, 야드 트레일러 트럭에 컨테이너가 쿵쾅 하고 내려오는 것처럼. 선적과 하역. 그것을 두루 가리켜셔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묘하게 나의 업적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였다. 그러다가 그곳 어딘가에서 나를 좇아오던 생명을 따돌리면 되지 않겠는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아름답고, 세상도 아름답고, 그림도, 르누아르도, 릴케도, 한국어적 삶의, 밥과 맛있는 콩나물 국, 먹고 정신차리던 내 친구들, 그들의 용맹정진들, 그들과의 약속들, 러시아 음악들, 빈대 같던 꼼레드들, 아무런 이념이 없었어도, 가족 이기주의, 자기 아들과 딸들을 키우면서 다시 만난 세계를 경험하는 숱한 한국인들. 일본인과 중국인 친구들이 모두 아름답고, 숭고하고, 참으로 동방 정교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동양화 같았고, 붓을 들 수 없는, 그런 영화적인 의지 같은 것도 있었다. 어떻게 건축이, 미술이, 시편에 이르지 못하는가? 못한 사람을 많이 만나면, 사람을 혐오하게 되는데, 못한 글들을 많이 만나면, 시와 음악, 그림들을 많이 만나면, 그것을 하루키 상실하지 않겠는가? 그 모든 것의 아프리오리, 그 모든 것의 인테그러티, 우리가 합성이네 하면서 좋아했던 것의 근원, 그것이 분명 있는 것이다. 손기정이 그렇다. 그리고 그것의 마라톤 코스가 그렇다. 어떻게 저렇게 나무 그늘 아래로 뛸 수 있을까? 김동리의 등신불도 생각나고 그랬다. 어떻게 해야 학문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그 모든 것의 무의식을 뚫고, 태양처럼 빛날 수 있을까? 그것을 무리한 요구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 그것이 바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그러니까 세포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해의 세포로 감싸여 있다. 가진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어도,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는 모두 해의 세포로 이뤄져 있고, 그들은 모두 직접적이고, 유물론적으로, 하늘나라로부터 내려온 천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면, 영원히 추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로도 있었지만, 장면이, 지리산으로 내려오던 태양이 운무에 휩싸여 유난히 거대해 보이는 것처럼, 나는 어떻게 더 살아야 할 지를 알지 못하겠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 드디어 주체가 뛰쳐나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코드가 잘 맞아야 한다. 다른 작가의 글에는 구역질이 나고, 어느 한 작가의 글만 겨우 나의 체질에 맞는 경우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아도 오직 그와 같은 이유에서 세삼 읽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태양의 세포를 입고 싶지만, 우리는 마침내 낙원추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무엇인가? 일종의 pause 같은 것인가? 소우주. 그렇게 처음 뛸 때나 재밌지, 고통스럽게, 사력을 다해 뛰는 것이 무슨 재미이겠는가? 자기의 의미를 위해, 글을 쓰는, 지금 나와 같은 자가 공명 지능이 재밌지, 어딘가에 속하고, 거기에 맞게 써야 하고, 때로는 그럴 듯함만 따라가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이 휘발유를 먹는 기계이지, 무슨 밥과 빵을 먹는 사람이겠는가? 우리에게 밥이 때로는 강요되는 것은, 빵을 좋아하는 시간을 아끼고 세이브하려고 그랬던 것이 아닐까? 아무도 지금은 세이브하고 있지 않지만. 손기정이 데카르트의 연장을 뛰었다고 한다면, 그렇게 보편적이고, 절대정신과 같으며, 슬픔의 한 가지로만 보이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아름답지 않다. 그것은 생각보다 그러하고, 어째서 그렇게 수면이라는 것이 있는지, 정말이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어 그것의 뜻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돈이 필요하고, 기술 같은, 단순할지라도 나와바리 같은 것이, 그 보이지 않는 숱한 매게 사이에 그와 같은 절대의 문제를 버리고, 사라지게 해야 오늘과 내일을 연명하는 것이다. 손기정이 학자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다. 식민지 시대 때의 걸출한 문장가도 아니다. 그렇게 해의 세포끼리 결합하면, 뛰어서 세계 속으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러시아 편이 나오는 것이다. 개인은 아름답지 않고, 그 연장된 삶은, 영원하지 않으며, 겨우 절대 정신과 같은 것이다. 너무 나이팅게일 같은 슬픈 이야기가, 부지깽이로 저녁을 짓는 소녀가, 그 시간에 읽기에 적합한 '고도리'인 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두 편의 드라마를 얻어냈다. 둘다 어떤 한국 사람을 몽고 지역까지 파견하여서, 어느 특별한 가문의 양의 젓을 짜오게 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억지스러운 것의 산물 같다. 드라마 더블유와 도깨비이다. 그렇게 다시 보는데, 울릉도의 울적함이 풀리고, 최인훈의 파란 크레파스 같은, 누군가 먼저 그것을 말해야지만 우리에게 재산이 생기는 법칙에 따라, 고통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해의 세포인 것이다. 그것은 걸작 같기도 하고, 인기 같기도 하고, 한국 같기도 하고 세계 같기도 하다. 더블유를 보면, 그때도 내가 포도주 잔에 깊이 빠지는 것 같더니, 한동안 잊었다가 다시 보니, 원래는 안빠져야 하는 것인데, 다리를 쭉 펴면서, 그렇게 안 빠지다가 일어서야 하는데, 다시금 빠지는 것이었다. 한효주를 닮은 땡중을 만나 마음도 상하고, 이제 좋을 일도 없다 싶었는데, 다시금 한효주가 말하는 말투나 문장이나 모습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우리에게 창작의 자유가 있다면, 그렇게 우리나라를 둘이 함께 돌아다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불가능한 것은, 우리에게 돈이 없는 것이고, 돈은 원수다, 김일성, 혹은 미제, 혹은 공관병, 인연이 없는 것이며, 엄청난 필름들의 묘지 위에서 겨우 솟아난 이데아가, 우리 사는 세상에서 평범하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게 고통의 도담상봉에서, 복잡한 중부 내륙을 가로질러, 서해안의 국도로 진입하던 길이 아름다웠다.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길이 시원하면 시원한 대로. 해의 세포는 해의 세포들끼리만 결합하며, 일상의 세포는 그런 서울대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은둔 실력 창작가들이 아름다운 음악이며 영화 드라마를 만들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작품마저도, 해의 세포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고 나면 아무런 해석도 없이, 서울대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학식을 먹었는데, 먹을 때마다 맛이 있었다. 나는 그때 이미 사람들은 짐승 같으며, 짐승의 세포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학식을 먹는데, 돈값을 해도 맛이 있었고, 그저 그래도 맛이 있었다. 유명론은 시작부터 우울하고, 어떻게 돌아다니다 보면 그 어리고 젊은 시절이 어둡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서강대에서 아침을 먹는데, 드디어 내가 쓰러지려고 했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지하철 이호선에서, 물의 세포들을 많이 옷과 가방, 씨줄과 날줄, 이탈리아의 씨실리에 담아 못지 않는 명문대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기는 것은 다시금 유명한 것들 뿐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