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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정말 많이 산 것 같다. 더러운 종로에 오니, 그런 아줌탱이 트럼프가 생각을 돋군다.

by 마음대로다 2017. 7. 18.

정말 많이 산 것 같다. 더러운 종로에 오니, 그런 아줌탱이 트럼프가 생각을 돋군다.

 

 

 

 

 

 

 

 

 

 

 

 

정말 관동별곡의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원래 예술이 안팎으로 지져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정철 같은 새끼만 봐도, 남을 지지고 지는 시를 쓰고 했지 않은가? 그래서 미국에서? 문학 그 자체, 그런 식의 주장을 한 것도, 시라는 것이 여자가 잘 빚은 항아리 같이 생겨서 그럴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정의롭다고 여길 때, 맛도 있고, 옷도 좋고, 배고픈 것이 즐겁고, 남과 함께 있는 것이 영예롭고 하는 것이다. 미국이 옛날과는 다르게, 옛날에는 영웅적인, 여성적인, 영웅적인, 홈언론 같은, 그런 친구 같이 지내다가, 요즘 들어서 한국에 돼지를 많이 푸는 이유는, 일단 자기들에게 솔직하고, 자기들이 내면적으로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기억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그렇게 나아가고,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성립시키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프라임들에게는, 호라, 한국에도 돼지들이 많고, 젊은이들이 처음부터 돼지 출생들이 많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편히 죽는 약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종로에 와서, 기분도 별로 좋지 않고, 그래도 솔로몬처럼 평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 대통령이 한국에서 노래하고, 개그 풀고, 연기하고, 대통령하는 것이 알차지, 미국에서 대통령하고, 돼지들과 어려운 영어하고, 걔가 한다는 말이 아니라. 씨엔엔을 보고 있노라면, 간이 배 바깥으로 나온 것이던지, 집에 따로 있던지, 아니면 영문학은 처음부터 아이비리그 사람 잡아먹는 오래된 정원 괴물들에 의해서 조율되는 것이지, 한번도 민중들에게, 조금 착한 찰스에게, 데이빗에게, 카퍼필드에게, 낸시에게, 랭리에게, 접합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나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죽는 약을 생각하는 것도 없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없어서 팔리지도 않게 만들 미국 민중들이, 오늘 옥수수를 먹고, 내일 텍사스 콘필드를 가고, 모레 멀더와 스컬리와 함께 외계인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사실 식생활 때문이지, 무슨 실제로 외계인들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는 생각은, 지금은 절대로 들지 않는 것이다. 어려서, 혼자만의 방에서, 아직 수많은 희망들이 터지기 전에, 학교까지 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하고, 이웃에 사는 필과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걔는 늘 외계인 테이프를 봐서, 어쩔 수 없이 인간 중의 인간, 영문학의 소황제처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터미네이터2처럼 얼마나 아놀드 같은 사람이 죽기까지 보호하고 싶겠는가? 그런데, 걔는 커서, 자지를 자르고, 한국에서 여배우가 되고,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인과관계, 삶의 선행지수, 주식 투자 같은 것으로서, 미국에서 대통령까지 되는 것이다. 우리도, 물론, 남자였다가, 아이씨비엠, 미사일이 발사되고, 여자가 되고, 여자였다가, 아이씨비엠이 다시 장착이 되고, 그렇다고 한다면 미국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붙을 때는 모르겠지만, 뗄 때는 조금 아플 것인데, 문학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고독과 같고, 알아보지 못하는 무수한 군중들과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다시 나를 대학생으로 만들고, 그래도 죽음의 계단에서 누군가 어깨로 감싸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죽는 약을 종로에서 바라는 기분에, 그런 소식이나,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면, 다시금 세포는 그 옛날 독립적인 우리 항구의 파이프를 보는 것 같고, 문희도 이제는 별다른 스토리가 없는 곳에서 편안히 보는 것 같고 그러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암 것도 없는 미국이, 계속해서 돼지나 푸는, 이 미칠 것 같은 세계 정세 속에서는, 사람들은 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고, 실제로 아프지 않게 죽는 약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손에 그것을 들었다가 마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문학이란 메로나 같은 것이다.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고, 지옥에서 사람들이 드디어 지상으로 나오게 된 과정을, 비문학적으로 직관하고, 주변 괴물들과 싸우고, 문학과 영혼을 서로 확인하고, 약도 없는 것들이 이미 죽어 있는 수학적인 결론을, 어떻게든지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더러운 것들이, 집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늙은, 혹은 가망 없는 세포들끼리 주고받고 하겠는가? 티비나 제이에스에이, 그러니까 디엠제트, 공동경비구역 같은 것은, 우리가 그나마 사는 이유가, 저것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보고야 말 것이다 하는 것으로 밖에 더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지옥에 가지도 않고, 내게 편안히 죽는 약도 없이, 늙어서까지 그런 제이에스에이나 쳐다본다는 것은, 저녁의 대지에 내려 앉는 태양처럼, 참으로 공주한 느낌에 불과한 것이다. 어째서 이 수많은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철학과생들이란 것은, 처음부터 존만한 은전 같은 유다들인 것인가? 국문학생들은 아직도 공주와 피냄새로나 비로소 전진하고 공부를 한다. 어째서 이것들은 괴물들이, 자기들끼리 더러워 임마 인과나 만드는 것을, 존만한 청양고추, 더러운 아줌탱이들보다 좋아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