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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주자학과 양명학의 난형난제적인 길항관계

by 마음대로다 2017. 11. 6.


주자학과 양명학의 난형난제적인 길항관계


















우리 코수모폴리탄들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일찌감치 코스모폴리탄들이 되었겠는가? 생각해본다. 독일인들은 성채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빠져나온다. 그들의 인생은, 독일인의 사랑은 하루살이 같다. 아무리 실측하는 것을 피하려고 해도, 단지 복잡하고, 고결하며, 추상적인 말들만 모아놓으면, 그것들끼리 맞물려서 회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의 삶은 독일인들 같다. 그것은 패전 직후나, 지금이나, 패전하기 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헤겔이 있을 때도, 헤겔이 단 하나의 그럴 듯한 문학 전기를 만들지 못한 것이 그렇게 이상하고, 필연성 같고, 박쥐성 같고 그렇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사실 영화를 규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옛날 영화들을, 하나 같이 앨범 같고, 사진 같고, 사진 속 인물들이 귀해 보이고 그렇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고대 철학자 제논의 철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우리는 실제로 아무런 인접성의 오류가 없다. 고대의 마의태자가, 신라가 망한 후, 산골 깊은 곳에 들어가서, 단풍잎들을 보면서, 마태복음을 읽었대도, 그렇게까지, 막 외계인이 내려오고, 외계인들이 한국말 하고, 외계인들이 굶어죽고, 외계인들이 향수병에 걸리고, 외계인들이 화성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붉은 별 증후군을 사람들에게 남기고 했다는, 그런 중간적인 스토리를 만들거나, 애써 지어내거나, 사람들에게 김일성 강요하지 않아도 통용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충무김밥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대충 해먹어도, 맛이 있었다. 그것의 환한 풍경을, 어떻게 다 그림 그릴 수가 없다. 우리는 도토리 묵을 먹을 때, 그것의 달콤하고, 쓰고, 사각형의 재미난 동산 같아서 좋아하다가, 그래도 쓰고, 밥맛만 좋게 올리는 것을 보고는, 제 방에 돌아가서 공부하곤 했었다. 내 친구에게, 함께 먹은 도토리 묵이, 양념을 잘해서인지, 땅콩가루를 집어넣는 등, 쓰지 않고, 귀여운 다람쥐들이 마구 내려올 것 같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세상에 이렇게 흔한 비교문학자가 없고, 예술비교철학자, 문화비교탐구가가 없다. 그냥 가면 끝이고, 이민가면, 이민정, 끝이고, 다만 유민이 일본에 살면서, 유민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들 쉬쉬하고, 정말 다들 쉬쉬하고 그렇다. 어째서 역사이겠는가? 히스토리래서 역사가 아니겠는가? 다들 쉬쉬하고, 그렇게 쉬쉬하면, 도대체 피라미드에서 무엇이 나오겠는가? 솔직히 피라미드는 좋은 인상이 아니다. 그래도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이집트 현실 국가 국민들만이라도 노력하면, 좋은 것들의 인상을, 세상 모든,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의태자가 산골에 들어가서, 마태복음을 읽었다고 한다면, 드디어 이순신 장군이 환상 중에, 거북선을 만든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거북했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고대 교부 중에도 거북하다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서점에서, 다만 책이 어디에 있는지만 아는 여교사가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처음에는 몇 문장 정도는 알다가, 그것은 남자 같은, 이번 판듀에서의 지누션 같은, 아주 근사한, 반짝이는, 소소한 히스토리가 분명한, 사람들이 알아주는, 그런 거룩한 계보의 사람 같다가, 나중에는 그것의 희미해지고, 민족과 역사가 사라지고, 사하라지고, 삶이 자차카타파하해지고, 그러면 드디어 우리들의 의식과 태도가 그 때의 삶으로 앙드레 가뇽해지지 않겠는가? 터튤리안이, 그리고 다른 교부철학자들이, 삼위일체의 논쟁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사람이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을 사귀고, 기적처럼, 제네시스, 정말이지 스크리밍, 하늘에서 기적처럼, 썬더벌드, 여자를 사귄다고 한다면, 사람의 몸에서, 달콤한 빵냄새, 밥냄새, 점입가경처럼 술냄새가 난다고 한다면, 고독한 커피냄새, 그러다가 사람들이 모두 엄지 손가락을 내보이는 델리만쥬의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면, 그렇게 삼위일체의 논쟁을 가르치는, 제대로, 신학대학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이생규장전, 이생에서는 못간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는 주자학자들이 양명학을 규탄한 것들을 때로는 과하다고 여기다가, 때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예수의 십자가가, 주자학자들이 거울보기, 흉내내기, 따라하기, 사탄의 무한수와 같은 인연생기의 종말론적 양명학을 죽기까지 비난하고, 삶의 아름다운 의지를 꺾지 아니하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의 표현처럼, 마침내 들어올려진 거대한 그림일 수 있겠는 것이다. 그러니 로마시대의 십자가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때로는 로마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지중해의 수백만 수천만 사람의 몰살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에 관심이 생기다가, 이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의 양명학자들은, 주자의 심볼들을 차용하여서, 매우 교육적인 시간들을 짓고, 쌓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렇다. 그리고 애국하는 나라가 여러군데이기 때문에, 피라미드의 보고처럼, 저마다의 고위 장교가 되어서, 싸움을 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스핑크스의 배치는 정말이지 영원한 숙제요,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코와 같다고 하겠다. 어떻게, 그리고 도대체 언제쯤, 우리는 저질 주자학과, 아편전쟁 같은 양명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또다시 순천드라마 세트장에 오르고, 저마다의 집과, 저마다의 친구와, 그러다가 빈집 같은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름이 좋다. 여름에는 모기만 있을 뿐, 저녁에 춥지 않다. 그러나 겨울은, 그와 같은 저질 추상 같은 주자학과 좀더 심도가 깊어지는 생아편적인 양명학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피라미드들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학문제는, 늘 영 일 그리고 오 하는 것이 주관식 답에 있다. 그렇게 두 문제나 맞히는 반 친구를 보고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가현설과 같은, 현실에서의 나의 수학 선생이었을 것이다. 도토리 묵만, 어떻게 얻어서, 밥도 없는 채로, 입맛만 가득 쓰게 먹고는, 문제 풀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무역회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국 유학도 갈 수 있고, 해빙이 되면, 중국 여행도 갈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드디어 가뇽의 neiges 소품 속에도 있는, 피날레의 주제 같은. 그런데 친구가 찾아와, 구체적인 의도는 놀자고 마루에 앉아 자꾸 말을 건네는 것이다. 어머니가 전기세를 아끼라고 했던 것도, 넓은 관점에서는 친구와 놀러나가라고 했던 말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엄밀히, 대게의 어머니는 공부의, 주자학의, 사각형들이, 산해경처럼, 어디쯤에 서로 붙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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