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우리는 순천을 보고 죽지 않을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순천을 미쳐 보지 못하고
죽음을 당겨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상을 한낱 미물을
일종의 무한도전으로다가 여겨서
생의 에너지를 모두 다 지피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헛됨을 아주 몇 개의 문장을 골라
전도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노동자에게는 애초에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여기에도 있고
규슈에도 있고,
훗카이도에도 있고,
혼슈에도 있고
그렇다. 죽기 전에 이순신을 보거나
권율을 본다고 한다면
그나마 막부 드라마에서
전부 소진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우리는 일본을 알 수가 없다.
일본이 얼마나 수준이 높은 지도 알 수가 없다.
메이지유신이 순전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일 수 있다.
조선과 일본의 두 자발이 있었는데
조선이 허구한 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데 반해
일본은 일찌감치 단발령을 결단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확률적으로는 어렵지만
그렇게 무한하게 소재를 가져다 쓰고
스스로 창안하고, 내 친구 야마모토와
류노스케가 기계를 만들다가
그날 죽은 것일 수 있다.
왜나하면, 일본에는 정치철학이 불가능해도
한국에서는 가능할 것이라는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믿음의 부속이었는 것이다.
가뇽의 세컨드 무브먼트를 듣다보면
그날의 저녁을 볼 수 있다.
묘하게 구슬이 나오고,
그것들이 굴러굴러 어디를 가는 것인 것이다.
누가 유기체 철학을 하는가?
유기체가 철학인가?
그러면 수많은 문학자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바로 그와 같은 아이들의 소매에서
그것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보았던 철학 논문집
신학 논문집
영문학 논문집들은
숱한 일본인들의
어제의 절정과도 같았다.
이것들이 저마다의 가문의 과학을
쏟아내었던 것도
이광수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나자
그대로....
그들의 규슈는
너무 슬픈 것이었다.......
만일 지구가 동그랗지 않았다면
아마도 보이져호처럼
지금까지도 의식이 확장되고
확장되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