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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나를 보면 너무 뒤늦은 돈의 걱정

by 마음대로다 2018. 4. 27.

나를 보면 너무 뒤늦은 돈의 걱정






사람이 최면 상태에 있으면, 모두 다 왕이 된다. 최인훈. 최명길. 최윤영. 나는 최윤영도 좋아했었다.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으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것도 중국의 어느 마방에 묶여 있는 말처럼 연상이 되고, 별다른 주제와 소재가 없대도, 한 번 달려보고 싶은 소설의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좋아하는 여자가 많은 대도, 그것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면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서울의 버스 안에서, 그래서 소울, 창 밖에 보이는, 때로는 내가 지쳐 그들도 지쳐 보이는 저녁 거리를 바라보면서, 때로는 조형을 잘한 것이 사람들에게 먹히고 사랑도 받는 것을 확인하면서, 예를 들면 불이 꺼진 주식거래소를 돌고, 마포 대교를 가다 보면, 그렇게 질리지 않는 나의 운명의 의식이 연장하는 것 같았다. 서울은 진정 그런 데가 있다. 가뇽의 이터널 리턴 같은. 사람들은 모두 신학교를 다닌다. 왜냐하면, 뭐에 하나 신이 나면, 반드시 신학교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연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래서, 어중간한 것이 없는 것이다. 지나치게 문학적이고, 지나치게 신학적인 것은, 사람들이 신이 날 때, 어쩌면 죽을 것처럼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해서 그랬을 것이다. 신이 나면, 금세 꺼지고, 사라지고, 사물은 금세 사라지진 않지만, 사람은 금세 사라지고, 그래서 사물로써 신이 나는 것이 오래가는 것 같아도, 그것은 어쩌면 죽은 것처럼 연상이 되기 때문이다. 신이 나면, 신아영, 사람들이 너무 신아영을 미는 것 같아서, 사람들을 부르고 싶은 이유도, 이유영, 유인영, 다 부르고 싶은 것이 그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제과 경영과를 간다. 그것을 중심으로 한 일반학과, 문학과, 심지어는 신학과도 간다. 경제과를 가면, 상당 수준 철학적이 된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학생들도, 자기들이 애초에 의도했던 리얼리즘에서 상당히 관념적으로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어느 때는 불만스러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늘 언제나, 예수님이 비유로만 말씀하시는 것 같은 씽크홀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경제학과 보다는 경영학과를 가는 것이 좋은데, 거기서부터는 약간 유치원 냄새가 풍겨난다. 그것에 긴장하지 않으면 참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너무 긴장해서, 그것이 전부인 줄 알면, 마켓팅, 인간으로부터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평생을 서울을 돌아다니고, 돌이켜 보면 그들은 전부 신학생 같았다. 나는 늘 불만스러웠는데, 정작 내게는 돌아오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에서 늘 불량배 오야 수준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 서양의 고급 술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동양의 고급 술이라면 도리어 곤란하고, 상다리가 부러져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려움이 있고, 어려움으로 평생 족쇄 지고 사는 것인 것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하나는 육체, 그러니까 경제의 어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 정신의 어려움이다. 그것은 상보 관계에 있고, 신학은 그것들 간에 긴밀한 밀항 관계가 있다고 가르치나, 정작 진실한 경제학적 논리는 전파하고, 훌륭한 케리그마로써 설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물론 몰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느낌으로는 알겠는데,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 다른 목사들보다도 기도를 잘하고, 설교도 오랫동안 잘하는데, 막상 한국말로는, 평생 한국말만 해왔으면서도 못하겠는 것이다. 그것에는 죄가 없다. 그와 같은 정당이 여의도에 있을 수 있고, 그것에는 죄가 있다. 그와 같은 생각의 무리가 서울에는 있을 수가 있다. 얼마나 세포가 죽어가면 슬프고, 눈물이 나는지. 내가 젊었을 때는 당연히 세포가 죽지 않았었다. 날마다 쪽지 시험을 봐서, 뇌세포가 늘 긴장상태로나마 활성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늘 빠져 있어서, 지금의 나를 보면, 많은 사람을 좋아했고, 많은 사람을 정말로 좋아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헤엄치고, 빠져 죽고, 좋아 죽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다만 셰익스피어를 나보다 여자가 많은 사람으로 여겨서, 대결을 펼칠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이 무엇을 절대로 아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안다는 것은 만물의 척도인 것처럼, 무엇을 기준으로 아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어느 때는 좋았다가, 어느 때는 싫었다가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많은 사람을 좋아했지만, 절대적으로는, 나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 어깨 너머로 보면, 여자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말과 행동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상도덕을 가진 가게의 주인처럼 행동했었을 수 있다. 가게가 잘 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으면, 어느 날은 세일 행사도 하고, 윈윈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극단적인 상도덕을 말하면, 적어도 잘 웃고, 알바들이 있는 곳에 사장이 가면, 알바들에게도 괜히 잘한 척 하고, 손님들에게도 특별히 서비스를 많이 해주지 않겠는가? 세일 행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하나님의 섭리처럼, 우리들이 잃어버린 자본주의 광고 영화처럼, 그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느 때는 평생의 기억에 남는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만 노림수였던 것일지라도, 손님이 좋은 기억을 사장에게 나중에라도 보고하게 되면, 정말 멋진 할인행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윈윈이 되겠지만, 사람들이 오늘 어느 멋진 티비 드라마처럼,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반드시 더 먹게 되어 있고, 반드시 돈을 쓰게 되어 있다. 나는 한 번 여자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내 돈 쓰기 바빠서, 그리고 내가 공부를 좀더 많이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조차 하고 있었다. 그런 식의 스테레오 타입이 예술가들에게는 제법 있는 것이다. 그러나 늘 내 경우에는 좀더 본격적이었다. 내 여자 친구가 그때 어느 백화점에서 알바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관심의 독재에서, 여자건 나건, 자유로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은 다중사랑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다, 걔가 있는 곳에 놀러가자는 친구의 말에 은은하게 반응을 할 수 있었다. 적극 찬성, 혹은 내심 부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아르바이트를 해? 나는 한 번 줄임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급할 때는 전대 전대, 돈 주머니 부르듯 나도 똑같이 불렀지만, 내 마음이 편할 때는 전남대학교 그렇게 풀 네임을 불렀다. 내가 육체적으로 소유한 여자였다면, 마치 그럴 가능성이나 능력이 있었던 것처럼, 그것이 늘 삶의 미스테리이다, 때로는 바쁘다는 핑계도 댔을 것이다. 그런데 머리 속에는, 내 누나 생각도 났고, 고생스럽다는 느낌이 있었다. 딱 그 정도였는지, 해석학적으로 더 들어가는 판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누나도 하루 종일 서 있는 것이 피곤하고, 다리 아프고, 퉁퉁 붓고, 그랬다. 아무래도 기독교 신학과나, 자연적이고 천연적인, 동물들이 잘 보호되어 있는 디엠제트의 문학과에서 나와,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경험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얼마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가? 내 작은 집은 방이 하나 뿐이어서, 아르바이트를 다녀와서는 내 앞에서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 댔었다. 이런 말이 늘 이상한 것이다. 나도 아플 때는 아프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내 누나가 내게, 티비에서 무슨 아픈 것 이야기 하면, 늘 너도 아프다고 하더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각과 추측도 진실한 것이다. 하지만 다리가 아픈 것은 슬프고, 축복적인 것이며,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오죽 오래 서 있었으면 그랬을꼬 속으로 그런 생각까지 계단 올랐던 것이 기억난다. 내 친구가 내 여자 친구가 알바하고 있는 곳에 가자고 했다. 나의 마음은 은은하였고, 예술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이, 내 친구가 불러 내어 백화점 복도에서, 나는 여자의 무릎 나온 치마 차림을 처음 보았던 것 같다. 나를 죽을 것처럼 사랑하는 것 같았다. 바로 내 옆에 표독스러운 부잣집 여동생이 있어서, 장만할 혼수용품을 산더미처럼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진정으로, 아무런 돈의 걱정이 없었다. 내 자신이 존재에의 용기가 풍부하였고, 집이 우람하지는 않아도, 학교에서 그 우람함의 기쁨을 모두 소진시킬 수 있는 지혜가 벌써부터 탁월했었다. 그리고 돈을 걱정하지 않으려면, 걱정의 시간이 많이 없어야 하는데,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풍경 좋은 곳에 여행을 하는 것도, 그렇기 좋아하는 것도, 돈의 걱정으로 머리가 꽉 차 있는데, 생존의 위협, 살아있는 존의 위협, 풍경 좋은 곳으로 가면 그것이 마취되고, 취소되고, 버무려지다가, 건강해져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나와 닮은 여자 친구가 일단 돈의 걱정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만스러웠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무엇으로 있었는가? 하나님은 신학생인 나를 벌하실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진정한 교양인으로서 진행하였다. 바로 그것인 것이다. 데쓰잇. 나는 내 친구가, 내 여자 친구가 아주 멋지다고, 내게는 몸매가 좋다고 해석해주기를 바라는 말을 하는 것이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젊어서 알바들도 많이 하고, 청춘을 좀더 꽉 차게, 앨범 사진 정리를 부끄럽지 않게, 자랑하면서, 그런데 내가 보통의 사람들이 반응하는 수준의 미소를 보이지 않았었나 하였을 것이다. 나는 국문학과 여학생이면, 바지를 입고, 활동적으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이 일절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치마를 입게 되면, 그 어쩔 수 없음이 드러나서 도리어 아름답다고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활동적이지 않는 옷을 입으면, 절대로 되지 않는다고, 아주 꽉 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의 국문학과는 그런 것이다. 나의 국문학과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하루하루 지워져 간다. 그것은 필연적이고, 유물론적인 것이다. 어려운 외국어 공부도, 손을 놓으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과, 겨우 그런 사람 앞에서나 잘난 척 하는 몇 개의 구슬을 갖게 되는 것처럼. 심지어는 나의 국문학과 여학생은 국문학과 자체도 가지 않았고, 체험 삶의 현장에 걱정이 많았으며, 나와 같은 에이급 학생의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발이 조금 아픈 것을 두고 투덜대는 것과 오버랩이 되었었다. 나는 친구의 말에 동의하였고, 너무 예쁘다고 웃고, 친구를 치고, 은근히 날씬하다고 비상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렇게 왠종일 말했었다. 사람들은 돈의 걱정을 많이 한다. 어쩌면 내가 불우한 식민지 시대의 그늘을 갖고 있는 학자나, 문필가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보고, 생활 세계 현상학의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원래 형용사가 많고, 그것의 실체가 사실과 구분되지 않는 사람일수록 그와 같은 사랑에 빠지곤 하는데, 먼저 선수를 치고 가계를 전담하는 포즈를 취했는지 모른다. 죽음은 생명이다. 그래서 내 친구가, 내 예전 여자 친구에게 데려다 주면서, 여기 네게 죽음처럼 충성스러운 한국어가 있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가상의 여동생은, 법전처럼 생긴 두께의 혼수용품 목록을 그녀에게 읽어주는 것 같았고, 헤어지기를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자를 죽일 수 없었다. 나는 그를 전후로, 평생을 부유한 속성을 가진 여자 친구가, 그것도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청년의, 거의 모든 속성을 실제의 퍼시픽 림처럼 갖고 살아온 것 같다. 내가 건물을 세우고자 하면 세웠고, 내가 공부하고자 하면 공부하였다. 나는 한 번 그와 같은 만남의 이벤트를 가져 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 지적인 기쁨과 이성적인 기쁨의 혼융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실험하고, 억지로나마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것에는 거대한 비밀이 있다.  


슬픔은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는다. 공부를 하고 위층에 올라가면, 한강이 흐르고 있다. 내 친구가 몸매가 아주 좋지? 했던 것이 내게는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그녀에게 모노폴리를 가져보고자 했던 것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바지를 입고, 아주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 어둠 속의 강령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부수적인 것으로는 몸매가 아주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와 헤어진 것도, 어쩌면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늦어서인 것일 수 있다. 그래도 그렇다. 나도 평생을 경제적인 전형성으로 사는데, 그것을 오히려 연출했다고 불만을 느낀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생각에는 자유가 없다고 말이다. 얼마나 가난하지만 그것이 아닌 것처럼, 카무플라쥬하게 살아왔는데, 오히려 리얼리즘 소설가가 되려고, 그와 같은 문학평론가가 되려고 해왔었는데, 아무런 여유가 없는 사람처럼 내가 될 수는, 그 완벽한 제로를 향해서는, 바늘 하나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서울의 야경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들이 무엇으로 리얼리즘을 말하고, 오늘 하루를 연장할까? 


백화점을 다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