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지금 세상은 숨가쁘다.

by 마음대로다 2018. 6. 12.

지금 세상은 숨가쁘다. 






나는 방송과 관계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관계한 사람처럼 구는 사람으로서, 구니스, 오늘 멋진 나이 많은 친구의 기자 회견을 보자니까, 몇 자 한석봉 혹은 김정희의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도시와 같다. 아무리 이렇게 시작하더라도, 우리가 미국 대통령을 무시할 수 없듯이, 구어체이면서도, 별다른 날카로운 점은 없는, 나와의 차이점, 구어체이면서도, 현란하고, 아카데미를 짓밟고, 전 세계 등단 작가들을 무등산으로 만드는, 나의 지구 종말에 가까운 당연지사의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편안하게 말을 하고, 적당하게 말을 한다해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니, 그렇게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다. 어서와 한국이 처음이지를 가끔 보는데, 그것의 가능성과, 화면들이, 그렇게 우리가 서울에서 외국 사람들을 보는 것과 매치가 되는 것이다. 남자들은 경우가 없고, 예의가 없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고, 그게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여자들은, 잘 삐지고, 김밥, 그리고 천국, 다만 그와 같은 씨츄에서도, 같은 사람이면서 한 사람이 외국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 같다. 우리가 도날드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가 말만 못할 뿐 일을 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분서갱유도 그렇다. 옛날에는 일이 별로 많지 않아서, 다만 말만 잘 못하게 되어도, 땅에 묻고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말을 잘 못하는 경우를 알아서, 그것이 곧 지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영원히 감춰주고 싶은, 그러니까 내 존재의 반은 여자와 같다는 것에 대한 고백도 있는 것이다. 


얼마나 싱가폴이나 멕시코는, 미국이 빛나는 선셋대로를 달릴 때, 문화의 수력발전소 거대한 댐에서, 이제는 그들에게 정신이 방류될 것이라고 믿음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홍콩이 그랬고, 엘에이가 그랬다. 뉴욕도 그랬다. 그리고 일본은 애증으로 인해서, 왁자지껄한 지금은 즐거운 소동이 넘치는, 고시엔에서부터 프로야구까지 저변이 넓고, 도심의 빛이 정확하고 화려한 것에까지, 매력적인 문화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상해가 뒤늦게 발전하지만, 선전도, 마카오도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번만 무역을 하다 보면, 거짐 다 게슈탈트 이론에 어느 정도는 입문을 거치게 된다. 트럼프를 보면, 세 번 네 번 거친 것처럼, 의도를 알고, 넥스트 할버를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니버시티에는 자기도, 아들도 딸들도 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을 버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 아니다. 다만 국제관계적인 넥스트 할버를 아는 것이 그것을 어느 정도는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미국도 그렇게 아름다운 팝송을 전 국토에 뿌릴 때는, 그것들이 아주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한국처럼 빛나는 주자의 정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싱가폴은, 그리고 필리핀조차, 태국도, 베트남은 친구, 그것의 일종의 그래프 같은 것이 북한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공부 잘하던 사람이, 마땅한 부유함까지 갖는 것을, 어느 누가 슈퍼내추럴한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부유하고, 할버드, 그리고 에일 유니버시티까지 갖고 있는 나라가, 엄청난 부유함으로, 국제 정세에 적당히 관여하는 것을 어느 누가 미라클러스한 일이라고 생각하겠는가? 한국이 육체를 갖게 되면, 그들은 정신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육체를 갖게 되고, 전국토가 고루, 너무나 훌륭한 당원들의 노력으로, 세계의 자랑거리인 고속 열차, 반드시 그와 같은 고속은 어느 역에서는 분명 정신이 될 것인데, 아니라면 그와 같이 몇 번이고 돌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정신을 갖는 것을 실패했고, 그렇게 연기를 하는 것인지, 정말 실패한 것인지,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 것처럼, 우리나라 식민지 시절의 투사들처럼 의리가 대단하다. 사람들은 뭘 먹을 때마다 떨어진다. 그래서 남자건 여자건 섹스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단순하고, 우리 옛날 향소부곡 같은 처방은, 실제 정승집 도련님들과 규수들에게도 하였던 것인데, 그것을 누군가 할 것도 없이,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왕자웨이, 혹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하는 것을 보아도, 뭔가 거기서 빛나는 지식의 별이 나올 것 같았다. 사람은 사물의 주인이지만, 사물이 사람을 어떻게 하는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현악곡 연주장에 어째서 가는가? 사물이, 그것의 공명이,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유재석이 런닝맨을 하는 것으로 가보았는데, 뭔가에 줄 서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산하고, 정신이 런닝맨에도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다가, 이미 영화는 사물에 질식해 있는 것이 두려웁기 시작한 것이다. 줄을 서는 것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아주 해맑은 시간낭비가 아니면, 매우 직접적인 하강의 고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툭하면 줄을 서고, 식당 앞에서 줄을 서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정말 우리 옛날 투사들처럼, 그것이 하강의 것인지, 상승의 것인지,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를 보면, 옛날 사진이 있다. 트럼프를 보면, 우리 구한말이나, 일제 시대, 그리고 박정희 정권 시대의, 한국에 대한 미국 관심 세력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었고, 우리가 그와 같이, 육이오 전쟁이라는 경이로운 고통 이후에, 참된 선린우호의 맹방이 되었던 것이, 눈 앞의 매력적인 실질로서의 매질이 우리를 분명 정신으로 자극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정체로서의 민주주의, 경제적인 자본주의, 그리고 종교적인 기독교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반미를 외쳤고, 독재를 타도하고자 하였으며, 일제로부터 거의 완전한 독립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식의 경제 자본주의를 향해서는, 끊임없는 문화자생적인 의지를 갖고, 자본이 순환하는 것을 지향하였었다. 그러니까 일본이 그들의 본질이 막혔던 부분이고, 미국도 기억에서 사라진 부분인데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드라마 미생만 보더라도, 사회초년생, 그리고 엘리트 그룹 신입 사원인 경우에는, 누구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는지 모르나, 공무원들, 그들의 하는 짓을, 자기 짓을, 부요함에도 있을 수 있는 예술 행위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것의 빛이, 일본에도 있었고, 카이주, 미국에도 있었드랬다. 그러나 새로운 국제 현균학에 따르면, 내가 하이엔 태풍을 그렇게 증오하고, 싫어했던 것처럼, 불가능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장시간의 경이로운 기자회견을 보자니까, 우리가 어째서 싱가폴을 믿어야할지 잘 모르겠는 것이다. 멕시코도, 미국도, 영국도, 바레인도, 타지크스탄도, 모르겠는 것이다. 지그들 꼬붕 앞에서라고, 그렇게 멋진 모랄리즘을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부유함에도 있을 수 있는 예술행위라는 것은, 그와 같은 사회 전반의 카테고리, 그곳에서의 초년생으로서의 다부진 정신 같은 것은, 거의 북한 핵과도 같다. 천년의 고고학이 거기에 있고, 트럼프가 길을 잘못 들어서, 사탄이 제 집 드나들 듯이 지나는 곳을, 위험하게, 어린아이들과 수학여행을 한국 영화의 장면처럼, 비가 오는 길 위에서 나란히 서 있는 것일 수 있다. 거의 천년 동안을, 여기서 천년은 하찮다는 가치 평가의 함의가 있다, 사람들은 부요함에나 있던지, 아니면 예술행위에나 있던지 하였다. 북한은 그렇다면 가난한 나라겠다, 예술의 국가인가? 한국영화는 서울의 어린아이들이 우산을 시골에서 수학여행 온 아이들에게 씌워주는 성경적인 진행으로 나아가지만,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내 거울처럼 뿌듯한, 여기에서 그만 그들은 우산을 씌워주고자 하여도, 땅이 갈라지는, 기가 막힌 자연재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저질 국가로의 행진은, 한국과 중국 외 나머지 국가의, 일본은 죽기까지 비밀로 하는, 그때부터 전 세계에 고지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도......


제주도......



마라도.....






오키나와......




미군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