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민중문화이야기

동서양은 어째서 나뉘게 되었는가?

by 마음대로다 2018. 7. 15.

동서양은 어째서 나뉘게 되었는가?





신대륙의 발견은 아마도 서양의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처럼 거대한 대륙의 존재를 알고서도, 사람들에게 동서 대립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만년 이내의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째서 동서양은 이처럼 대립하고 있고, 서양의 거의 모든 범주에서의 우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특히, 과테말라 화산의 폭발과, 일본 서부 지역의 폭우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이 정도의 천연적인 재해를 가지고도 꿈쩍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어느 정도 문명의 백제신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문명이 좋은 것이다. 문명이 좋은 것이다. 병만족이 찾아간 멕시코 마야 부족 마을의, 호수의, 거대한 흰 벽의 벽화가 가리키는 것은 그것인 것이다. 이 정도의 프로그램이 있고, 이 정도의 적극성이 있다. 너무 아무렇게나 프로그램을 세상에 뿌리는 것이 아니고, 아주 어렸을 때 딱지 따먹기를 하는데, 작은 원형의 종이, 칼라의 그림들이 있고, 거기에는 별의 갯수나 숫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을 잃기도 하고, 얻기도 했는데, 어느 한 날에 친구들의 것을 모두 딴 사람인 경우에는, 가끔 미친 듯이 강구려 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풍요와 복지의 메시지. 어른들은 쳐 먹는데도, 아이들은 못 먹는 것에 대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눈이 좋아서, 그것을 흉내내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조금 갖고 싶어하는 눈 빛이 그렇게, 슬프고, 친구들을 위하는 마음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막 싸우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각형 넓은 메리야쓰 종이상자에 가득했던 딱지들을 모두 잃은 경우에는 실성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것이 두 상자쯤 가지게 되면 강구려 했던 것이다. 눈이 딱지처럼, 딱지가 눈처럼, 갑자기 인공 강우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것을 주워 자기 것으로 삼았다. 우리들은 그와 같은 조그만 원형들로, 프로그램들로, 그것의 원통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 티비 프로그램은 우리가 거의 공짜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오래된 동서냉전이 스며들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중국이 관우 사당을 많이 지은 것도, 순전히 한국적 발상인 것이지, 관우의 수염이, 그리고 그의 청룡검이 거대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광주사태도 관우 사당 같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진정한 공무원인가? 두 개의 거대한 공룡이 서로를 보면서 으르렁거리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누군가 먼저 그것을 표현해 놓고 있었다. 사람의 관념이 훌륭하고, 타원형으로 죽으면, 그렇게 다음 사람들이 들어가 살기가 좋은 것이다. 관념이 일도 없고, 자기 지구 같은 것으로나 동그랗게 되고 나면, 우리가 아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사람은 타원형으로, 관념도 아주 화려하고, 그렇게 죽어야 하는가? 정말 잘 모르겠다. 문명은 좋은 것이다. 문명은 아주 좋은 것이다. 과학과 문명은 조금 차이가 있다. 과학에는 문화가 없다. 문명에는 문화가 있다. 보통 과학 문명이라고 말하지, 과학 문화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문명 문화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동어 반복 같기 때문이다. 뭔가 문학과는 나오지 않았는데, 문학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 멋진 신사숙녀들이 문명을 이루는 것 같다. 우리가 과학하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도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자신의 사고가 문명적이기 때문인 것이다. 과학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이,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쓸 것 같지만, 안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필사적으로 집을 짓고, 복덕방을 하고, 공인중계사를 하고, 아다리를 치고, 그렇게 거리를 나오면, 그렇게 내가 되 본 적도 없는 인격이지만, 머리가 띵하고, 서글프고 그럴 것이다. 테오티후아칸이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라는 설도 있다. 설은 설일 뿐, 적극적으로 관심할 만한 대상은 되지 못한다. 수만 개, 수천만 개, 수억 개, 그렇게 바둑돌처럼 된 것들로 피라미드를 만들고, 그렇다 하더라도, 큰 대 자 하나 쓰기가 어려운 것이 인간의 세포이다. 인간은 세포를 이루고, 문명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세포로 침윤해들어가는 시간이자, 홀몬, 그런 몰몬 타버나클 합창단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동서양이 뿌리 깊게 대립할 때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은, 선한 마음, 그리고 필로소피, 그러니까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 뿐이었을 것이다. 서양은 그렇지 않아서, 모든 높이에의 괴물적인 현상, 누미노제 같은 것을 강요하였다. 그렇게 귀족주의 망상 같은 것을 좋아했고, 그것을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발전과 지속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아서, 선한 마음을 만나면, 나의 것에 비추어서 좋아했고,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만나면, 나의 것에 비추어서 반가워했고, 친구처럼 좋아하였었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 고래적인 상호 침략은 있었어도, 서양의 침략과, 그들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것은, 물론 대마불사의 물리학이 있기도 했지만, 그 때문인 것이다. 밤낮 샤미센이나 뜯다가, 클래식 기타라든지, 듣기 좋은 오페라를 만났을 때, 일본 사람들은 얼마나 좋아했겠는가? 남자라고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조선은 열등하였다. 조선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렇게 기독교가 좋은데, 기독교와 끊임없는 상보적인 관계를 맺는 서양 문명이 따라서 좋지 않았겠는가? 중국은 서양의 식민지가 되기에는 너무 컸다. 그리고 모퉁이마다, 야만이 아직까지 살아있다. 그래서 단순한 초일자의 상태로 만들기에는, 개인이든지, 집단이든지, 민족이든지, 그것의 라디오가 겹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내내 탄압 받고, 잡아 먹히고 했는데, 그 사람이 찾아와,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고, 잠잘 곳을 주고, 도시에서 일할 곳을 주면, 식민지 인간들은 옛날 일을 모두 잊지 않겠는가? 그래서 장비나 유비보다도, 원소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원소만 놓고 보더라도, 나는 삼국지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원소가 된다. 


불쌍한 동남아시아가 서양의 침략을 받았고, 식민지가 되었었다. 왜냐하면 존재가 쌀국수처럼 얇게 되면, 좋은 것을 보아도, 선한 것을 만나도, 마침내는 신경질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지막 싸인 같은 것이다. 


조선이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은, 전쟁으로 경제를 낭비할 이유가 없어서인 것으로 보인다. 과학으로 문화를 만들지 못하고, 겨우 문명을 유지하다가, 무장을 하고는 동양으로 침략해 들어오면, 오다가 많이 죽고, 지리상의 발견 같은 것, 그렇게 꿈에 그리던 요동반도나 산동성까지 한번 붙어봐라 도착한다고 해도, 문화가 없다보니, 나관중 같은, 최소한 주변 장수들과라도 중얼중얼거리는 아가멤논 장군 같은, 싸우지 않을 때는 자살했을 것으로 보인다. 날씨와 풍경이라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높이에의 전경이기 때문이다. 개미처럼 앞만 보고, 싸우고 승리하면, 일리아드처럼 고기를 먹는, 앞만 보고 싸우고, 적이든 아군이든 그가 죽으면 그의 옷을 취하는, 그런 늘 항상 싸워야 하는 일자들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바이너리 코드, 이진법들이 있었는지, 우리로서는 참으로 알 수가 없다. 탱크 같은 것이 왔을 수도 있다. 엔진이 없었다 한다면, 사람이나 동물이 끌지 않았겠는가? 처음에는 화살을 막을 수 있고, 전진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사람이나 동물이 죽으면,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겠는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에도 그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너무 화살의 효용이 높고, 화살의 정확도가 싸울 때마나 늘어서, 나중에는 조총 같은 것이 있었대도 그것을 놔두고 화살을 쏘았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조총을 쓸 일이 있으면, 우리 옛날 핸드폰처럼, 당연히 연발이 가능한 총을 누군가 대주고 있었지 않았겠는가? 영국이 아편 전쟁에서 승리하고, 뭘 했는지 모르겠다. 중국 관료들이 그랬다는데, 그래서 뇌의 전이 현상이 발생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러시아는 일본과 전쟁을 하러 갔다가, 타협을 하고, 조선의 식민 통치에 동참하는 이득을 챙기고자 했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