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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김은숙은 작가인가? 다른 시나리오 작가와의 구별은 어떻게 되는가?

by 마음대로다 2018. 7. 30.

김은숙은 작가인가? 다른 시나리오 작가와의 구별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수사를 할 수 있다. 그것은 번뜩이는 나이프. 재치 같은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어째서 작가주의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가? 대충 만든 영화는 어째서 그와 같은 마음의 방에는 들어가지 못하는가? 대충 만든 영화라는 것이 있는가? 김은숙의 태양의 후예, 도깨비, 이전의 작품들은 있었는지도 몰랐다가, 그제서야 알았다면, 이전의 작품들은 대충 만든 것들인가? 우리가 도시를 살면서, 아침에 커피 한 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사람들과 혁명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의 세찬 물결, 양세찬, 어떤 무사와 영화를 보다가, 웃고, 즐기고, 쇼머스트고온, 무사가 떠나자, 남게된 어린아이는 극장에 취직하게 되고, 영사일도 돕고, 청소하는 것도 돕고, 티켓팅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면, 극장이라는 존재론이 들어오지, 영화가 무사의, 그러니까 문무왕의 관점에서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취직한다. 모든 직장은 영화관이고, 모든 직업은 그와 같은 영화관의 일이나 파생 사업 같은 것일 수 있다. 그것이 셰익스피어가 했던 말과 같은 것인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시나리오 작가가 있고, 그것을 겸하는 사람이 있으며, 어여쁜 여자 배우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존재론은 그와 같은 마니차들을 돌리면서 진행하는 티벳 불교 같은 것일 수 있다. 마니차를 돌릴 때, 어디서 많이 해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대학 때에, 여학생들과 포크 댄스를 추었다면, 정확하다는 느낌마저 받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작가주의 영화의 감독이자 작가는 그렇다면 아무개 정도면 되겠는가? 그렇게 마니차처럼 자주 돌리는 물건에서 벗어나면, 작가주의 영화나 소설의 작가가 되는 것일까? 내 언젠가 문정왕후배 단편소설 응모에다가, 닭볶음탕을 가족들끼리만 먹은 것을 두고 어린 주인공이 울고, 몇 개 남겨둔 것을 그제서야 누나가 웃으면서 꺼내주는 내용으로다가 제출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얼마나 사람은 총명한 줄 모른다. 숱한 사물들의 총명의 힘을 의지해서 서울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총명과 사물의 총명은 같은 것으로서, 그러니까 그것들이 서로 회전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을 부모들이 좋아하는 것, 공부를 못하는 것을 두고 싫어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다만 사회적 성공에 관해서만은 아닌 것이다. 유비도 없이, 관우도 없이, 장비만 아름다운 꽃비가 내리는 곳에서 홀로 도원결의를 하는 사람이 될까 걱정이 되어서인 것이다. 그것만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있지만, 단계가, 사물이 멍청해지는 때가 그것이기도 하다. 뭔가를 공부하고 내려오는 길에서, 공부의 내용이 화석이 되고, 그것의 관계적인 내용을 묻는 것을 틀릴 것 같은 두려움과, 다만 문제지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것의 관계적인 내용으로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할 것을 직감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 같은 것으로서, 가수 티파니나, 가요 칵테일 사랑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선함은, 본래적인 것으로서, 거의 모든 필요한 것들을 해낸다. 그러나 시험에는 곧잘 틀리면서, 육체만은 선할 것 같은 것은 실질논리적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조건에서는, 우리들의 선함이 살아있더라도, 순자와 맹자의 대결처럼, 우리들의 육체는 아무런 속도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생각과 결부될 때, 그것의 육체는 스피드를 갖게 되는 것이다. 생각에서부터 떨어지게 되면, 움직임이 활발한 마네킨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양 영화들을 지금껏 보면서, 헐리웃 영화를 내내 보다가, 이와 같은 단순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움직임이 활발한 마네킨의 내부적인 침입 같은 말을 지금까지 내가 해왔구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선함은 살아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한국어로 이뤄져 있고,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어로 답한다는 것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김은숙은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작가가 거의 없지만, 지금의 문단이라든지, 영화관 관계자,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기와 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을 하나씩 갖게 하는 것 같다. 참으로 총명하다 할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하나의 법칙처럼, 총명함을 잃어버린다. 선함을 잊어버린다. 오직 작가주의 작가만이, 그것을 보존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한없이 슬프나 바로 죽지는 않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