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식
우리 인간에게 염상섭 삼대의 욕망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칸트가 그것을 의도하는 굉장히 복잡한 말들을 했던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거의 전부가, 거의 모든 인문학과 철학이, 그것을 목적으로, 스스로 세간의 진부한 것들과 자기를 구분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섹스 뿐인 집을 근대와 현대 모두를 가로질러 갖게 되었다. 공부를 해도 모두 식빵, 누군가의 재치처럼, 그냥 그렇게 탄수화물 같은 것이지, 인간의 함수에 손님으로 들어가 손님으로 나오고, 환송을 받는 모습으로는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와 페르세폴리스를 두고 가장 저급한 것이 인신공양의 장소라는 것이다. 해석 중에 그런 해석이 없다. 왜냐하면 굉장히 웃기기 때문이다. 하나는 대놓고 웃기고 다른 하나는 절묘하게 웃기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가서 아마도 남미의 풍속처럼 인신공양을 했을 터인데 얼마나 올라가면서 세상 파노라마를 보았을 것인가? 돼지 같은 제사장은 심장마비로 죽었을 것이다. 그러면 피라미드의 애초의 기획처럼 그가 인신공양이 되는 것인 것이다. 함께 올라갔던 소년소녀들은 다음 번을 기약하면서, 생명을 연장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페르세폴리스의 계단인데, 원래 지붕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습이 지금과 같이 제단처럼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우연과, 피라미드와 같은 가파른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드디어 인신공양을 할 만한 장소가 되었다고 학자들은 떠들어 댈 수가 있다. 그런데 인신공양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의 원래의 전통과 강력한 권력이 도대체 어떠한 조형물들 사이에서 이뤄졌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인형들로 가득한 방에서도, 인신공양을 하고자 하면, 그것이 그렇게 어울린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 멀쩡하게 사는 원룸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그럴 것이고, 경찰서, 혹은 식당, 사람들이 그것의 키아로스큐로, 혹은 카메라옵스큐라를 몰라서 그렇지, 우리 사는 세상에 기둥만 있다면, 사람들이 남 모르게 섹스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인신공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강도살인을 저지르고, 때로는 집단구타를, 시민들 앞에서 해도, 경찰이 와도 해도, 주자의 어떤 뇌속 기어를 작동시키기 위한 방편불교였고, 인신공양이었다고 말하면,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두방분,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섹스만 해서, 공부도 잘하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사회에 헌신하고, 나이가 들면 지혜도 생기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자는 능히 그럴 수 있으나, 대게의 사람들은 섹스만 해서, 멍청해지고, 모국어도 못하게 되고, 프랑스 상표나 갖게 되고, 그렇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되지 않고, 섹스만 해서, 더욱 가열차게 해서, 때로는 괴물이 되는 상상에 주화입마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지식이 따로 없어서, 섹스만 어떻게 보이지 않는, 그래서 우리에게 유적이 남아 있지 않는, 길로 몇 명 없던 전 인구의 숫자가 매진하였던 것일 것이다. 바로 가뭄이 들고, 사람들이 배고파 죽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점차로 키가 작아지고, 키가 작아지기는 했으나, 때로는 말처럼 생긴 사람들이 동시에 돌아다녔고, 그렇다고 보면 지금의 자본주의 섹스문화에 충분히 접근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인구수가 많지 않으면, 경작을 하다가, 가뭄이 들면, 수렵이 풍부한 지역으로 나아가고, 그러다가 가뭄이 멈추면, 돌아오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명절 때마다 해외에 가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대신에 인구수가 많아지고, 국가간의 경계가 생기게 되자, 그것이 가뭄의 원인이 되어,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수탈이 생기고, 더욱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졌을 것이다. 대신에 인구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결코 섹스에서만 보다는, 나름의 자연재해의 대처 방법이 늘어나서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인신공양은 충분히 섹스만 해서 인구수를 늘리고,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자연재해의 대처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떠한 거대한 도덕적 본능처럼 자리하였는지 모른다. 어려서 좋은 사람과 충분히 섹스를 하지 못하면, 늙어서, 장년이 되어서 인신공양이나 끊임없이 만지려는 스콜라가 얼마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다름 아닌 그와 같은 스콜라의 번민을 치유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사자가 사슴 같은 짐승의 엉덩이를 깨무는 것은, 대단히 성욕적이다. 웃음이 터져나오고, 사자 같은 권력자는 내가 언제 저와 같았는가 사람들 앞에서 너털 웃음을 웃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근엄하고, 인신공양을 찬양하는 것 같아도, 스스로 무기가 있고, 그래서 바빌론의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무슨 군인들이 그렇게 수염을 허리까지 기르고, 전장에 나가겠는가? 사람들과 교우할 줄도 알며, 어린 사람을 먹지 않아도, 스스로 주변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충분히 생활을 끌어 갈 수 있었을 것 같은 것이다. 그 모습은 전 세계 섹스의 전도사, 그리고 심판의 의식으로나, 끊임없이 메트로놈 흔들리는 것 같지 않다. 한 발은 섹스, 아래에 있고, 다른 한 발은 전진하는 윤리 공부, 그리고 그들의 머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인신공양이 인간의 전통에서,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바빌론의 저 조각상들은 그것의 전통에서 굉장히 멀리 벗어나 있는 것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사자처럼 사람을 잡아먹고, 인신공양을 하러, 아브라함처럼, 아들들이나, 딸들, 어린아이들을 끌고 올라가는 모습으로 보는 것은, 내가 먼저 다른 어린아이들과의 경쟁에서 힘이 들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백 번 말해도, 김구, 우리는 별로 그렇지 않지 않은가? 그러니 인신공양의 모습으로 보는 것은 자유이지만, 사실적이거나 별로 과학적인 판단은 아닌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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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도시에서, 서점에서, 인간이 아무런 지식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5월호를 만날 수 있다. 삼국사기 연구가 신현균의 내용이 압권인데, 중국의 왕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국의 어떤 왕에게 미인들을 그만 보내라는 내용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수많은 해석을 시도한다. 어쩔 수 없이 존재와 무의 시기에는, 동양의 인구수가 서양에서 소멸되는 때가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서둘러 서점에 달려가, 사서 읽던지, 서서 읽던지, 하면서 그 내용이 무엇인가? 안경을 밀어올리면서 들여다 본다. 사람들은 결코 작은 존재, 그러니까 주자의 편에 설 수가 없으니, 섹스를 하늘의 별처럼 많이 하고, 종말론의 영화까지 잘 찍는 나라에 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집을 섹스만 있는 무덤이라고 할 수 있듯이, 나머지 말들은 다만 그것이 아닌 다정함 같은 것, 사회라는 것은 섹스 심판의 에이전트들이 노려보고 존재를 과시하는 장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현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드디어 주자의 문장이 고전에 다다르면, 섹스도 아닌, 심판도 아닌, 그 험난한, 피라미드이던지, 아니면 페르세폴리스이던지, 앞에서 난 척 깝죽대는 것 뒤로, 오래된 지옥의 해치커버가 열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읽다가, 뒤로 나자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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