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축구로 안보이는 이유
좋은 건축은 무의식에까지 안정과 평화의 감각을 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다. 사탄에 아첨하는 것도 안정과 평화의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이명희 보도 사건의 건축만 보더라도 그렇다. 얼마나 김수행기사는 갈 곳이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이명희는 딱 그 정도로만 욕지거리를 펼쳤던 것일까? 얼마나 전국에 어쩔 수 없이 욕을 하고, 하루의 파이트를 견디는 사람들은, 느닷없는 봉변을 당하는 기분일까? 이 알 수 없는 가치 없는 보도를 보면서, 얼마나 문명의 본질은 이런 후줄근한 것들의 시체꽃과 같은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갈 곳 없는 김수행기사와 같다. 그렇게 동일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축구팀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약간 스웨덴을 과도하게 생각하는, 파이트가 별로 없는, 김수행기사들을 본 것도 같다. 얼른 상추시루떡, 그런 것이 있는 것을 어제 처음 알았는데, 그것으로 덮이긴 했으나.....
피라미드는 그것의 공포스러운 원인을 옆에 두고, 또한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안정과 평화의 감각을 선사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훌륭한 건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집트는 러시아에게 지고 말고, 한국은 스웨덴 그리고 심판과 싸워 져야만 했던 것일까? 애초에 김수행기사들로 이뤄진 축구 대표팀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좋고, 경기장이 좋고, 외국 나가는 것이 좋고, 신문에 보도 되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결국에는 경선에 오른 일반인들처럼, 이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영광스럽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 심리. 그것의 죽음. 뉴스 기자들과 김수행기사의, 그리고 비디오, 매우 서글픈 연대. 옛날에 그런 영화가 있었다. 일본이 콜럼비아 커피를 이긴 것은 매우 기쁜 일인 것이다. 국회의사당이 우리들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평화와 안정의 감각을 선물하였는데, 드디어 그것의 결실을 본 것 같아,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이상하고, 때로는 이 무슨 축구 경기인가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객관적이고, 분별하고, 고래는 고래로, 소래는 소래로 하고 싶고, 하여야 할 것이나, 기가 막히게,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탄학도 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러나 전 세계에 사탄학을 할 줄 아는 저널리스트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속성이 파이트 넘치게 달라야, 파이트가 이뤄질 수 있고, 옛날 소련과 미국처럼, 일본과 한국처럼, 경기 보는 재미가 있으나, 속성이 별 차이가 없고, 서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같게 되면, 갑자기 공을 갖고 뛰지 못하는 한국 선수처럼, 싸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스포츠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섹스 스포츠 스피드 삼에스 정책이라고 분명 교육 받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와 같은 보기 좋은, 바람이 드나드는 다보탑이 생기지 못하는 것이다.
사탄은 웃긴게, 전 세계가 사탄의 관심을 요구하는 프라임 매터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속성이 일치하고,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온 몸에 상처가 없고, 얼굴이 어린아이의 거울처럼 깨끗하며, 때로는 일을 어려운 기후 조건이나, 오랜 시간에 걸쳐서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사탄과 언어관이 거의 일치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숨막히는 사탄의 시간을 살고 있겠는가? 누가 주자 앞에서 사탄의 통로인 것으로나 증명되고 싶겠는가? 어려서는 부모가 있었고, 공부할 때는, 희생까지도 클래시컬 뮤직했었는데, 일할 때는 사람들의 선망도 받았었는데, 좋은 차와 여자, 그것의 찰떡궁합, 높은 산성, 내 앞에서는 고작해야 사탄의 고지, 사탄의 사절, 아침에 누군가 뱀에게 물을 먹이는, 사탄의 통로나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지금 굉장히 안정적이다. 사탄도 때로는 깨끗하게 씻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있을 때나, 갑자기 더러워져, 누군가를 아로마 파티할 수가 있는 것이지, 혼자 있을 때는, 가끔 충성서약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숨가쁜 눈의 회전, 부분 부분을 씻고, 과연 그랬을까 싶은, 때로는 완전한 시간 안에서 전체를 씻고, 캐스케이드, 좋아하는 것이다. 그 느낌. 사탄에게 임하는, 좋은 느낌. 순면 느낌. 사탄은 자기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느 정도는 힘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피라미드가 무의식 깊은 곳까지 안정과 평화의 감각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높이에의 확고한 계단을 거의 모든 방향에 걸쳐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높이에 있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평론을 읽는 것은, 그것이 내용과 형식에 걸쳐, 피라미드의 육중한 사각형 입방체가 된다는 것이다. 여행을 경험하고, 그것을 일기로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축구 경기를 보고, 그것을 정리하는 것도 그렇다. 일본 축구를 부러워하고, 때로는 응원하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정말이지, 내 자신이 긴가민가 싶은, 밀물과 썰물과 같다. 그러나 영화만 보고, 여행만 하고, 먹기만 먹고, 하다 보면, 그것이 쌓이기는 하나, 구슬들처럼 매우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패스처럼, 구슬들끼리, 서로 점착하는 속성이 있다면, 도리어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여행 중에, 우리는 회전하는 전면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고, 내가 살기를 잘하고 있구나 감각하고, 때로는 자부하게 되는가? 우리가 축구를 볼 때, 환희를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그것이 우리의 골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가, 역사적인 한일전을 제외하면, 별다른 내면적인, 그러니까 스프가 없는 라면처럼 구는 것은, 차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다. 맹렬히 회전하던 구슬이 아무런 상자에도 담기지 못하고, 그것의 어설픈 저널리즘, 가치 중립적인 황색 언론, 갑자기 회사의 건물이 커지니까, 저녁에 소고기 먹으로나 싸돌아다녔던 기억들, 지난 여름에 한 일 같은 것들, 미국 영화 제작자들은 매우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산문 정신 같은 것들, 구슬이 빠지고, 영어로도 골이 없고, 한국어로도 골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화석은 있다. 영어로 파쓸. 나도 감지는 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고 싶지가 않다. 너무 멀고, 거의 화성의 이상한 흔적들 같기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베트남과 싸웠다. 신체가 변형되어서, 갑자기 폭력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하는 것은, 기승전결, 혹은 괴력난신처럼, 고래로부터의 모든 권력의 꿈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나름 굉장히 재래식 전쟁의 마지막을 경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정신이 허약해서, 도리어 지금 정도의 북한의 것이 수준 높은 것이었다면 어떠했겠는가? 결국에는 맹렬히 회전하는 구슬은, 그래도 한국어 종주국의 체면과 권력을 지켜내야만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가 스웨덴과 그처럼, 알 수 없는 러시아 땅에서, 신체 변형의 군인들이 맞붙어 싸웠을 수 있는 것이다. 원래의 신체 조건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 보스턴, 혹은 위화도, 아무튼 모든 고전주의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환향년이 될 수 없다보니까, 이기고 지는 것에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접고, 순수하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맨쉽이 스스로도 그립지 않겠는가? 그런데, 또 부딪히다 보면, 원래 그 자리까지 갔던 것도, 그와 같은 신체 변형의 미래 군인의 정신으로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마음 따로, 몸 따로가 되는 것이다. 공부를 거지 같이 했는데,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게 되었다고, 아름다운 음악, 공중 정원, 갑자기 순수한 스포츠맨쉽으로 변경이 가능하겠는가? 그 안에서 거지 같이 굴고, 김수행기사의 내면을, 그러니까 사회적 인간들에 대한 관심과 통찰이 아니라, 고작해야 그런 것들의 자기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알아서, 갈구고, 욕하고,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뱀의 허물처럼, 이 모든 것이 싫어서, 김수행기사에게서도 나오고, 이명희에게서도 나오고, 그나마 괜찮은 사각형 피라미드로의 진행을 꾀하는 매우 이상한 그림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파티까지 다녀온 사탄도 씻고 쉬는 것이 그렇게 좋다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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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도형들이, 일본이 서로 친구와도 같은, 콜럼비아 커피를 맛있게 먹은 다음 날, 너무나 슬프게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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