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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샾

포토샾의 시대

by 마음대로다 2018. 7. 27.











포토샾의 시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네안데르탈. 그것은 인간 승리의 징표일 것이다. 우리 소년소녀들이, 늘 그렇게, 서로를 가리켜서, 네안데르탈인이라느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느니 하는 것은, 놀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험난한 식인문명 아래서, 생명을 보존하고, 그 옛날의 그들처럼, 승리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곳 사이에서 한스 짐머, 불쌍한 친한파 현대 음악가는 수많은 장비들을 동원하여 가슴 아픈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우리가 여자들을 가리켜서 버릴 것이 없다 말하는 것처럼, 주자의 단계에서는 모든 말이 사탄의 말들과 이중 모음이 되어서, 우리나라의 모든 문화는 버릴 것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만화는 버릴 것이 없다. 우리가 외국 만화는 잘 보지 않지 않은가? 우리가 외국을 사랑해서 그렇지, 뇌의 인지와 그것의 함양에 정확한 측정 기계가 있어서, 스스로 그것을 확인케 하면, 조금도 나중에는 외국 만화 같은 것은 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아지트가 있어서, 독립하고, 보스턴, 휴스턴 애스트로스니, 하면서, 듀카티 같은 것을 잘 정비하여 타고 다니고, 글을 쓰고, 두번 버려지고, 세번 버려진 것 같은 암컷 로봇을 만나, 프랑스 종말론 만화처럼, 세상 마지막 만화처럼 살아갈 것이다. 내가 그렇게 여수 안쪽을 도는데, 버려진 양어장이 보기가 좋았었다. 바다 풍경은 막혀 있어서 그저 그랬지만, 주위의 바다가 충분히 커버 댄스를 하였고, 양어장까지 내려가는 길이 그렇게 고전적이고 우리들 옛날 영화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슬픔의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여자가, 남자가 자기를 한적한 곳에, 어두운 곳에, 끌고 가서 자기를 때리지 않을까? 염려치 않겠는가?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은, 천국이 가까이 온 것이고, 의식이 잠든 사람은, 사실 섹스가 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내려 가는 길이 그렇게 좋았고, 돌 계단 아래 작은 모래 밭에다가, 생각 서예라는 글씨를 썼고, 올라오는 길도 그렇게 좋았다. 우리는 생각하여야 한다. 어째서 박찬욱 감독이 그렇게 쇠망하였는지를 말이다.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은 내가 박찬욱 감독을 죽이는 사람인 것이고, 의식이 잠든 사람은 나의 말을 다만 유명론적인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렇게 미국 영화가 숱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처럼, 버릴 것이 없는 시간을 살면서, 좀비 영화의 창궐과 승리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모른다. 영화는 나오자마자 쓰레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누적이 되는 것처럼, 똑같이 누적이 된다. 우리가 미분만 잘하고, 적분을 잘하지 못하면, 혹은 적분만 잘하고, 미분을 잘하지 못하면, 그와 같은 사태를 예측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에 배우고는, 나의 내부를 측량당한 것 같아 마음이 그랬었다. 시험에는, 내가 시그마를 그렇게 못했다. 미분 시험이 한 세 개 정도 나오고, 적분 시험이 그보다 적던지, 많던지 하였는데, 미분을 거짐 다 맞히면, 적분은 두 개 정도는 꼭 틀렸다. 나는 더 락에 나오는 군인들처럼, 마음이 동료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 슬퍼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몰라야 하는가? 어떻게 잊혀지는가? 어떻게 존재는 원통과 같은 것인가? 성문종합 영어 독해가 내게는 수학 중에 수학 같아서 만족감을 주었었다. 나는 그때부터 미국 영화가 좀비 영화를 찍고는, 헤어나오지 못할 시간을, 예측하고 기다렸던 사람 같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정말 죽을 듯한 전설의 고향을 보고는, 낮에는 수박 화채를 맛있게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미국은 그렇지 않다. 수학적으로 보면, 장비가 미발달한 문명의 사람이 무서움의 권력적 편린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 원한을 사게 되면, 그는 반드시 귀신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처녀 귀신도 보게 되고, 총각 귀신도 보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서양은 그렇지 않다. 불쌍하고 가난한 브레인은 브레인으로 여기지를 않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는 클래식의 음악 같은가? 얼마나 우리는 장비 하나 갖고만도 기쁨이 한이 없는가? 내가 포토샾을 하는 것이 얼마나 여자들에게는 잔잔한 충격인지 모른다. 어쩌면 전성시대인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영화는 여자를 팔아먹는 것이다. 여자들도 그것을 뻔히 알지만, 사랑이라는 이터널 오브젝트를 향해, 급류에 휘말려가면서도, 출발 드림팀에서 봉을 잡고 있다가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시도하고, 노력하고, 뛰어들고 하는것이다. 처음에는 그와 같은 클래시컬 뮤직을 모르고는, 미국이 남자들과 동일시 되었었다. 그것의 한 쪽 같았던 작품들이 있고, 관계적인 시그마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과 동일시가 되었고, 주파수가 거기에 잘 맞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다. 어째서 마녀사냥을 하겠는가? 그냥 콜라를 배터지게 마시게 하고는, 죽게 할 일이지, 사람들의 마지막 양심마저 좀비로 만들겠는가? 그것은 말 그대로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겠다는, 연금술적인 작계 뿐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영화를 그렇게, 중성적인, 그렇지만 남성적인 것으로 증명되었던, 올드보이를 만들고는, 영화의 스크린 막에서 모든 기관과 내장이 모두 노출된 사람처럼, 박찬욱은 아가씨나 찍고 만 것이다. 박찬욱을 보면, 어딘가에서 남자 취급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자연적인 스크린이라는 디멘젼에서는, 성기가 끊임 없이 디스카운트가 되고, 불쌍한 워싱턴, 어쩔 수 없이 창작가의 편안한 물질적 관계망에 순응하게 되어버린것이다. 그것마저도, 아뢰야식처럼, 사람들의 인지를 위한 거울 반영 이론처럼 물론 여길 수는 있다. 사탄의 구원은 사탄만이 할 수 있다는 원리도 있다. 사람이나 천사가 어째서 사탄을 구원하겠는가? 그러니 거기서는 정말 현상학적 판단 중지가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다. 홍콩 영화가 예스 마담과 같은 훌륭한 남성 영화를 찍었던 때가 그래서 그립고, 흥미롭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들 너무나 짧고, 의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처럼, 거미의 기억 상실 어떤 노래처럼, 정말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의 홍콩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전 작품들이 수준이 없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살아났던 때가 우리들에게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그랬다. 미국 영화의 전성기도 그때에 있었고, 일본 영화는 지금도 나름 전성기이지만, 애니가 훌륭했던 때가 그때였었다. 


여자들이 화장을 하는 이유는, 예술적인 것 뿐이다. 누가 입에다가 고기와 돈을 바르겠는가? 누가 입에다가 돌과 유리를 칠하겠는가? 예술가들이 바르는 붉은 색 안료 뿐인 것이다. 그것이 비싼 값을 받기 때문에, 그것이 고기 같고, 돈 같고, 오카네, 집을 짓는 거대한 돌 같고, 시멘트 같고, 철근, 그리고 유리 같은 것이다. 여자들에게는 붉은 색 안료 밖에 없지만, 나에게는 포토샾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들의 팔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여성 영화가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있었다.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주성치의 소림 축구의 한 장면처럼, 생각의 깊은 어둠, 그것의 철벽을 밀치고, 내리치는 느낌으로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환상에 깊이 빠지지 않는 남방 불교인들이 없다고 한다. 물론 내가 없고, 영화만 있었다면, 일본에게도 먹힐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내가 없고서도, 천년을 약속받은 고려시대의 사찰 짓는 시간은 되었던 것이다. 폐하 천년은 갈 것입니다. 그러한가? 김대성이 국왕의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에 그렇게 답하였는데, 지금 보면 너무 말씀이 소박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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