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떨어지는 재미로 산다. 언제 올랐는지는 모른다. 부지불식 중에 올랐을 수도 있다. 나는 국민학교 때에, 여러 여자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미 올랐던 것 같다. 사람은 나름 생식기를 갖고, 사랑의 감정이 피닉스처럼 펼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참 신기하고, 신기하다. 그것을 한 열 번을 쓴다 해도, 나의 어렸을 때의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부모라고 하는, 어른들의 흉내를 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림을 그렸고, 시를 썼다. 내가 죽었다면 이런 식의 회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너무 작고, 무의미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여자들은 나를 무시무시하게 좋아했다. 그것의 피크가, 육학년, 그러니까 최고학년, 혹은 졸업반에서였을 것이다. 다른 교실에도 예쁜 여학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면, 마치 돈을 써서, 육학년 십사반에 모인 것처럼, 다들 모여 있었다. 내 보기에 여자들이 똑똑하고, 여자들이 예쁘고, 여자들이 발랄하고, 남자 친구들은 똑똑하고, 발랄하고, 야구를 잘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만점을 받으면 당연히 일등이고, 하나라도 틀리면, 다른 친구도 하나라도 틀렸겠지 바랐던 것이 거절 되었을 때, 그렇게 마음이 서글프고 그랬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화성까지 가서 물어 봐야 하지 않는가?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문제를 하나라도 맞히고, 혹은 틀리고 하면, 자기 생명이 부정확해진다는? 그림은 오학년 때에도 잘 그리고, 특별반 선택을 할 때, 그림반을 택했는데, 중학교 진학이나, 아무튼 미대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작정하는 케이스가 있다고도 해서, 긴장도 하고, 그림을 정성껏, 수업 시간 이상의 노력으로다가 그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독재적인 칭찬을 받고자 하였으나, 일종의 컴피티션, 다른 아이가 소나무를 그렇게 미색으로 수채 물감 느낌으로 잘 그려서, 칭찬의 대상이 그에게 넘어가는 아쉬움을 만끽해야 했었다. 보다 잘 그린 사람들이 있었다. 늘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더구나, 세상은 은하철도 구구구라든지, 플란다스의 개라든지, 정말 그와 같은 국선이나 미술대전의 각축장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추상 공간에서, 비가 내려도 화가가 되는 것 같았고, 눈이 내려도 화가가 되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예수님이, 바로 옆에서, 아직 시지각과 위험에 대한 고지가 완벽하지 않을 때에, 그런 말씀을 하시니, 나의 내면적인 소경험을 비추어서 그것을 맞다 여겼던 것이다. 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래서 소나무를 미색으로 아름답게 그린 것을 도리어, 낮게 여기기도 했었다. 일송정의 느낌은 있으나, 너무 색깔에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나중에, 정말 나중에, 십년, 그리고 이십년이 지나, 아오이 소라를 닮은 할머니로부터, 내 옷이 멋지다는 말투로써,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는데,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가서, 내 옛날 그림이 그렇게 멋졌다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그런 과찬에 빠지면, 과천 정부 청사가 되고 만다. 얼른 포장하여, 소중하게 간직하였다. 어렸을 때, 아오이 소라가 내 그림을 보았고, 내 보랏빛 가득한 정원의 꽃나무 그늘, 아래에는 벤치가 있는, 그 느낌을 온전히 감상하였구나 하였었다. 그리고 육학년 때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새로 배우면, 앞에 나가서 노래를 했었다. 어째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겸손하였고, 시범 케이스가 필요했고, 그나마 그중 나은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하였었다. 하지만, 늘 언제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중에 금호고등학교 합창단에서 노래를 연습하고, 음악 시간에 실기 시험을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합창단의 노래 실력이 일반인에 비해서 월등한 것이었다. 불안하고, 떨리고, 의미가 살지 않고 하였으나, 합창단이 부르면, 마음이 착 가라앉고, 진행하고, 물감이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뇌하는 인문학자였고, 그것의 마지막 기회가 노래라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문화신학 같은 것은 너무 말이 많은 케이스였다. 언제나 지금, 그리고 생각과 감정의 당사자였다. 그것이 시험지 바깥의 문제지였다. 나는 노래하다가 죽을 것 같았다. 나는 만점을 받아야 했다. 완벽하다는 말을 분명하게 들어야 했다. 그러나, 혹은 그리고,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에게는 농을 하지 않았으나, 내 부르는 모습을 흉내내면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웃는 영광을 내게 부여해 주었었다. 그것이 세련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미세한 것들. 떨림들. 노래하는 내내. 그리고 그것을 끝내고 난, 정검다리를 모두 건넌 다음에의 느낌.
비가 내려도, 우리는 학교에서 승리하는 것 같았다. 건물이 주는 느낌이 그것이고, 학제가 주는 느낌이 그것이다. 그것을 지금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무엇을 하나 익히고, 시원한 여름 건물로 들어가는 느낌이 아주 고전적이고, 동시에 아름답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어린아이들과 소년들, 소녀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이대 만큼은 그처럼, 아름답고, 참으로 아름답다 여겨진다. 그때는 인간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말도 그렇게 슬펐다. 두번 세번 들으니, 그냥 사나운 말이기도 한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인간은 물에서 왔으니, 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는 피천득 드는 것이었다. 무슨 고대 철학자의 원소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성평등주의적인 관념론, 그런 것이 아니면, 이념주의적인 물활론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떤 느낌은 있는데, 심증은 있는데, 그것의 무의식적인 문자를 도저히 적발해내지 못하겠다. 우리가 똑단추를 잠글 때, 그것을 한번 떼어보고, 안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돌아다니지 않는가? 우리가 가난한 옛날 집에서, 그리고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서, 행여 그렇게 남초지역, 여초지역, 구분할 것이 아니라, 여자는 마음이 벌써 올드미스, 어쩌다보니 한군데에서 서로 타 죽게 되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하늘에 해가 떠도 마땅한 것이고, 마음으로만 가늠해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마땅한 것인 것이다. 평생 잘 모르겠는 퍼즐 속에서, 모텔 주인이 아닌 이상, 남자가 새 가죽으로 나타나도 당연한 것이고, 헌 술은 여자에게 모두 넘어갔다고 해도, 모두 모으면, 거대한 독처럼 거대할 지라도, 같은 말이겠지만, 그것마저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자가 한 여름에, 항아리 치마를 예쁘게 입고 나타나면, 우리는 그것의 이데올로기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는 것이다. 옛날 작은 방에서도, 꿈이 가지런하면, 대학이나, 공장 기숙사에서도, 그것이 연속할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것인 것이다. 남자에게는 학문이 있다면, 여자에게는 여행이 있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말하기를, 자기가 몇 년 있으면, 아라비아 사막을 여행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남자는 꿈이냐고 묻고, 여자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 앞에서, 노아의 방주의 동물들 같기만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잘 모른다. 남자들만 여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순수한 것 같지만, 여자들이 물에 빠졌다가, 옷이 모두 마를 때까지 사막을 걸어도, 제법 순수한 데가 있는 것이다......
둘이 순양극장에서, 문희를 닮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는 배우의 장마라는 영화를, 정말 장마 기간에 보았다.
음악이 보고 난 뒤에도 넘실거렸고, 정말로도 둘은 사랑하였고, 거짓말, 그러니까 문학적으로도 둘은 사랑하였다. 다만 여자는, 독의 뚜껑을 열어놓으니, 물이 차는 것이 아닌가 하였고, 남자는 항상 사랑 때문에 기력이 딸려서, 일을 잘 못하겠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