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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대국이었으나, 어느새인가
너무나 애절한 나라가 되어 있다. 말로만 듣던 사탄이
나타나서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헤이즐럿 드라마를
꿈꾼다. 여학생이 백 번 화장 끝에
어느 날 화장이 잘 먹으면
얼마나 슬프고, 느무끼뜨빠, 옷차림까지 잘 맞으면
남의 남자 예수님의 수의 같고 그러한가?
사탄은 분열되어 있고, 산포되어 있다.
남자가 사탄의 확률, 그리고 여자가 자연적인
사탄의 확률, 그것은 간혹 보도가 되는
엠비씨 보도대상 데이트 폭력의 숫자
같은 것. 우리는 옛날에 사귀는 사람과 질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했었다.
꼭 중학교 때에, 램프의 요정이 있는 건물 같은 곳에서,
가장 높은 층의 교실은, 바람이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지도 않고 지난다고 하는데, 그렇게 부처님께
묻고 답하는 사람들처럼, 사귀는 사람과
질리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고 답했을 것이다.
그랬을 때 누군가, 어둠 속에서,
애국이 아직도 저축부장의 학교은행 저축일처럼
저축될 때, 나는 계산도 잘못했는데,
어떻게 저축부장이 되었는지,
그렇게 오늘 헤어지는 것처럼
사는 것으로 살면, 금세 금슬이 좋아진다고
했었다.
사랑은 과연 주관에서 벗어나서,
국가적 재난, 혹은 국가적 예산, 혹은
국제경제적 약속이나 지원, 혹은
문학 같은 것이 될 수 있을까?
남자가 과연 어느 때에 여자에게
헤어지기를 선언해야, 도리어 사랑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둘이 전혀 다른 육체적 시공간을 살아가더라도
전진하고, 저녁에는 서로가 높은 집이 되어
절 같고,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고,
사랑이 없어도 좀비가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반야심경을 그렇게 힘있게 염불하고
그렇겠는가?
객관적인 명제, 혹은 철학적, 혹은 추상적 명제 같은 것이
데이트를 잃어버릴 때, 반대의 경우에서 우리가
많은 번민을 했지만, 맨날 데이트만 하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또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움의 전쟁에서 밀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참 미국이 비실비실한 노래들에 휩싸여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발라드라는 인식이 별로 없었다.
사탄은 정말이지 이문열의 시인처럼
정치적 주장에도 있는 것 같았고
머리 없는 경제 발전에도 있는 것 같았고
조선시대 당쟁과 사화에도 있는 것 같았고
처녀들의 옷고름을 직접적으로 열고,
다시 닫는, 그런 열정의 폭탄 같은
국문학 소설이 없는 것에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이름이
위대한 개츠비 같은 위대한 신현균으로
집중되고 말았다.
숱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나를 사탄으로 몰아도
사람들은 헤이즐럿, 헤어질 수가 없다.
헤어날 수가 없다.
나는 드라마 도깨비의 여주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인상을
검수원의 봉인번호처럼 확인하고는
넘긴 적이 있었다. 얼굴이나
모습이나, 그런 습한 옷감 속의
신체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목소리나
단어법이나, 어떤 인토네이션이.....
형숙이가 그랬다. 나는 여자에 관해서는
사천왕과 같은 사람이었다. 남자가
채널을 수시 때때로 맞추면서
말을 하고, 웃고, 말하고, 웃고
때로는 말을 안 하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여자에게는 네 발과 같다.
봉인번호를 볼 때, 정말 그런 자세가 나오는 때가 있다.
그 다음에는 두 발로 걷다가
여자도 잘해주고, 그런 하늘, 너무 고통스러운,
다음에는 세 발로 걷는다. 그것은
철학이라는 영창이다. 피아노는 객관적이다.
인간 육성이라는 것의 거리이다.
나는 철학적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형숙이와 헤어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형숙이는 신학과였지만, 자세히 보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문학과였던 것도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면
열등하고, 작고, 숨쉬기에도 애절한
절대 빈곤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째서 내 앞에서 그와 같은
어린아이의 강력한 분절의 음향으로
발성되었는지가 이상한 것이지만.
나는 소녀의 기도원에서 기도한다는
소식을 편지로써 접해 듣고
내 마음의 간수와 집사가
짐을 먼저 정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신학과 여학생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한다는 내용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인가
항변하는 것도 같았다. 머리가 뜨거웠고,
관념은 이런저런 사진들로 혼란하였으며
프랑스 말을 하는, 혹은 조선 말을 하는,
그러니까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만일 그 모든 것을 해결하려면
나는 나 자신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집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단순하려면, 철학적이 되는 것 밖에 없었다.
코피가 나서 콧구멍에 넣었던 휴지 조각을
빼내면, 조금 얼얼하기는 하지만
시원하지 않은가?
그리고 산뜻하게 누군가 죽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면
그렇게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학을 간다든지, 중국 여행을 간다든지.....
넓게 보면 우리는 같은
방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무게에
솔직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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