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예언
사탄은 그림자와 같다. 사탄이 빛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탄은 그림자이나, 그냥 그림자가 아니라, 한 서른 번의 겹침 끝에 나타나는 그림자가 사탄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그림자의 그라데이션을 자기 집처럼 오고간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사랑하고, 동시에 로마서를 사랑하는 이유는, 한자로 말해, 악마가 두 개나 되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그런 그림자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너무 힘들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절체절명의 우주 안에서는, 그와 같은 낱말 풀이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기독교인이, 무조건 개독을 욕할 때, 무슨 마태복음이 이빠이 커다란 마귀라는 것이냐? 로마는, 무슨 미국 영화 불가사리 같은 것이냐? 우리가 그와 같은 생각을 일절, 그리고 이절 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무지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은 좋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확정은 세상에 별로 없다. 소위 제도적인 기독교와, 인간 그 자체로서의 예수는, 누군가 그것을 구별하라고 해서 구별한 것이 아니라, 그 말들이 몇 개 가슴에 박히고 나면, 그렇게 오직 옛날에는 과학이 아니라 선별이었을 터인데, 서양 의학이 아니라 한의학이 그러는 것처럼, 허브 향기가 마음에 진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오지심도 있고, 사양지심도 있어서, 그것을 티를 내지 않을 뿐인 것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미립자만큼일지라도, 그것을 안다고 하면, 사탄이라는 이름과 의미에 마태복음과 로마서라는 말이 서로 끌어당기는 것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미국 영화 베놈을 예고편만 보자면, 그와 같은 비참 같은 것이 엿보이기도 한다. 엄청 끌어당기고 있다. 그러니까 나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성적으로, 누군가 연구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다.
우리나라 영화가 세간에 화제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칼날에, 오늘 죽고, 내일 죽고 하더라도, 실제의 칼날이 아니기 때문에, 서예도 할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고, 미인도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나의 시와 그림은 재미가 있는 것일까? 시크릿 가든 이프 케임 디 아워. 러시아 민요에 검은 눈동자가 있는데, 검은 눈동자를 듣고 싶어서 확인해 보면, 이프 케임 디 아워가 도리어 내가 처음, 어렸을 때 받았던 검은 눈동자의 느낌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시크릿 가든은, 현빈, 그것이 아니라 서양 음악이 아니냐고 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밥을 먹고, 다만 부족한 것이 아닌,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사교적으로도, 논문적으로도, 표현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그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것이 아닌, 공동 작업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무위자연의 절대 고요 안에서도, 그것은 도리어 천직과 같아서, 대자연 안에서도, 부족함 없이 강건하고, 도리어 멀리 여행하고, 어째서 중국이 나의 나라가 아닌가? 다만 말이 달라서인가? 하는 것과 같은 호연지기, 어째서 일본이 내 나라 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다만 숱한 왜구들 때문인가? 그와 같은 단호한 말, 다만 밥만 먹고, 김치만 먹고,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어느 드라마에서의 내용처럼, 그렇게 가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밥만 먹고서, 문예 비평이 허용하는 모든 지역을, 사랑하고, 그려내고, 자기화시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밥은 마치 검은 눈동자처럼, 힘이 없고, 눈처럼 녹아버린다. 눈은 고소하지 않지만, 밥은 입 안에서 고소하게 녹아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무엇인가? 어떻게 생긴 것인가? 사람의 혀 모양을 갖고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데, 우리는 그와 같은 밥상머리 마음과 생각들을 갖고, 미래의 사랑하는 사람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잔칫상을 갖고, 많은 사람들이 먹으면, 정말 돼지도 잡는 물리학이 펼쳐지는데, 혼자 있다 보면, 콩나물 국에다가도 먹고, 물김치에다가도 먹고, 그냥 맹물에다가도 말아서 먹는 것이다. 힘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힘은 먹는 것과 같아서, 잡아먹고자 하면, 그와 같은 욕망 때문에 힘이 절로 생기는 것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슨 사자나 호랑이가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생각을 장기알로 표현해서, 그것을 콧잔등 위에 하나하나 놓는 것이라고 하면,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의 글이 끝에는 그 생각이라는 것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렇게 하나하나 놓는 것이라면, 세상 누구도 그런 것을 가질 수 없고, 이고지고 이동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가슴이 아프거나, 찢어지거나, 한이 맺히면, 그것이 밥으로 일정 정도 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정신이 사납고 날카로울 때, 된장국을 두부에다 먹으면, 마음이 그나마 이완이 되는 것을 숱하게 확인하였었다. 그리고 선비는 거기다가 검은 색 벼루, 먹, 붓으로써 글씨를 쓰는 것이다. 시크릿 가든. 그것은 붓이 처음 종이를 지나는 소리 같고, 획을 좀더 진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와 같은 식생활과, 문방사우의 경험으로 인해서, 그와 같은 검은 눈동자의 음악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소질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가능태, 잠재태, 현실태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를 보면, 그와 같은 진행의 예언이, 혹은 동시성이, 싱크로니시티, 실현되고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영화를 봐도, 어느 때는 질리고, 재미 없다 하고, 연기가 형편 없다 하고 그러는데, 어느새 우리는 미국 영화를 보고, 프랑스 영화는 뭔지 모르고, 영국은, 아예 학교가 없는 것 같고, 영화 학교가 학교는 아니지만, 그런 서양 영화를 보고 같은 태도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처음 서양의 로맨틱 드라마가 우리와 비슷할 때는, 소피 마르소를 끝으로, 우리는 그나마 비슷한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새, 미국 영화는 베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사람일 수 있다. 대충이라도 거론하기는 어렵다. 요즘 들어,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영화라는 허무한 시간을 채우는 액션일지라도, 그리고 대사가 우리에게는 진부한 항목과 항목, 버섯이 자라는 항목과 다만 조각에 필요한 원료일지라도, 종말에 이르러, 그와 같은 화이트와 다크니스가 작동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 먹을 갈 때, 향나무 잎을 함께 갈면, 더욱 진하고, 향기도 좋아진다고 했다. 나의 것은 그래도 회색 빛이 돌았다. 또다시 학교 때에만 만날 수 있었던 화선지에 붓을 지나게 하면, 시크릿 하는 소리가 들렸고, 붓을 공중으로 들면, 가든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금 덧붙이는 표현으로는, 주자의 피 같고, 그것을 덮는 것 같고, 뭔가를 잘 그려내지 못한, 의지만 가득한, 멍청한 여자의 머리카락만 같고, 그런 비난을 마다하지 않는 여자의 눈물도 같고 그랬던 것이다. 작은 붓으로 그리면, 충분하나, 붓글씨를 써도, 마땅한 성경의 말씀 같은 것이 없었는 것이다. 그 의식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사람 없이, 붓을 쓰는 순간에는 성리학적으로 칼날이 번뜩하였으나, 그것의 결과물은 사막과 더불어 인간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초나라 나무들과 풀들 같았던 것이다. 힘이 빠지게 되어 있다. 서양은 군대 행진곡 같은 것들도 많고, 사람들이 틈만 나면 행진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도 어느 정도 행진하게 되자, 한국 영화는 이프 케임 디 아워, 사람들을 진행에 합류시키게 되었고, 마치 자연처럼, 자연은 예뻤다가 그저 그랬다가 하니까, 그런 방식으로다가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것의 구멍은, 매우 작고, 통과하려면, 그러나 소인이나, 폭력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구멍을 통과하고 싶어서, 소인이 되거나, 폭력 인간이 되기도 하지만, 삼손이 그 좋은 머리를 모두 잘린 뒤에도, 어린이의 손을 잡고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약속과 사랑이 파기되지 않는 것이다.
서양은 불쌍하고, 나와 같은 주자의 축복과 사랑 때문에, 그들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불쌍함이 좀더 선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림자가 계단을 내려오다, 잠깐 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본 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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