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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역사저널 그날 임오군란 편을 보고

by 마음대로다 2018. 10. 8.

역사저널 그날 임오군란 편을 보고 





세상의 종말에 이르러, 우리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종말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행동에 따라 조금씩 미뤄지기도 하고, 당겨지기도 하는데, 언젠가 비슷한 드라마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잘 살면 당연히 종말은 미뤄지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겨진다면, 결국에는 누군가 말과 행동이 영 좋지 않았던 것이 되는 것이다. 조선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시각각 당겨지고 있었다. 누군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다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민중들을 탓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탓하는 것인데, 민중들 탓한다는 것은, 민중들에게 권력이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한말 조선은 이상한 그와 같은 말놀이의 분위기가 있었다. 민씨 집안이라는 말은, 장기판의 말은, 민본주의사상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가난할 때, 상징에 의존한다고, 고종이 혹은 주변 사람들이 민비를 천거하고, 중전으로 삼은 것은, 그와 같은 민본주의적인 사상, 그것의 오래된 심볼리즘을 이어가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보니, 전체 조선의 역사에서, 그다지 두각이 없던 민씨성의 사람들이 중앙 정치에 나아가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가 아는 바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릇이 그만큼인 사람에게, 어째서 더 담지 못했느냐 말하면 어찌 되겠는가? 가장 중심적이고, 좋은 것을 담고, 그 위에다가 개인적으로 첨가할 수 있는 것을 담는 것을, 우리는 차례요 순서라고 여긴다. 그러나 가장 중심적이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세상을 창고로 여기고, 거기에 저장만 하다가, 때로는 약한 마음에 뇌물을 바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철학으로서의 무당굿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딱 적당했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을 많이 낳는다고, 그것이 다 소용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부터는 민중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민중들에게 책을 읽히고, 신문을 읽히고, 논변하게 하고, 설명하게 하고, 생각을 피력하게 해야 하는 것이지, 겨울 날의 나목들처럼, 다만 감각적인 분지들만 무수할 뿐, 어떠한 글자 하나 발설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에는 전쟁이 나서, 기후가 어지러워서, 죽는 것은 민중인데, 임오군란이 발발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다시 전쟁이 나서, 기후가 사납고, 가뭄이 들어서, 죽는 것은 민중들인데, 그들에게 정치를 그나마 서포트하게 하면, 창고지기나 할 것이고, 마땅한 내용으로는 조금도 신속하지 못하고, 다만 창고에 쌀이 많다는 이유로 자기들의 지식과 계급이 상승한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새로 태어난 것처럼 여길 뿐인 것이다. 민중들은 또다시 전쟁이 나면, 화살받이가 되고, 탐관오리들의 오리고기나 될 뿐인데, 다시금 국가적 위기에 이르러 정치를 조금 하게 하면, 국가적 기능의 빈 자리나 겨우 채울 뿐, 그것의 의미적인 진행에 있어서는 아첨과 무당굿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좀체 없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운 민비의 네 아들의 죽음에 관한 상징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이다.......




Andre Gagnon, ond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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