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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세한도

by 마음대로다 2018. 10. 13.











최후의 세한도





그렇게 눈물이 나온다. 수사학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절대적이요, 어른들에게는 수사학이기 때문이다. 참 수사학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한다. 어른들은. 그러나, 마땅히 할 곳도 없고, 수사학적이라는 말에서 도리어 본질론보다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랑은 수사학적이다. 그리고 촉서루이다. 아이들에게 마냥 러브스토리로 호떡을 만들어주면, 뜨겁다고 맛있게 먹을 것이나, 그런 식의 전체이겠으나, 우리는 분명 비본질이요 부분인 것을 알면서도, 우리들의 지식은, 우리들의 마음은, 그것의 우위에 서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수사학적으로 사랑하고, 결혼한다. 남자나 여자나, 서로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성관계도 가져보고, 마지 못해 결혼하는 경우가 아니면, 실은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서로를 이용하고픈 마음에 결혼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를 존재로 여기지, 이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숱한 연애의 사유, 사랑의 이유가 있겠으나, 그런 식의 귀족주의적인 진행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참다운 노블, 그러니까 귀족 소설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신체의 설탕화가 되어 있는, 감각적인 고통의 분자들 때문에, 두뇌가 끊임없이 에스오에스 신호를 보낸 나머지, 정말이지 그와 같은 몽고군의 침입 때문에, 황룡사 구층 목탑마저도 불에 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손 더 게스트와 백일의 낭군님은 서로가 앙상블이 되어서, 최후의 세한도를 우리에게 내비치는 것인지 모른다. 세한도는 한계에 이르러 감상하다 보면, 악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사학이라는 것이 그렇다. 본질적인 참다운 사랑인 줄 알았던 것이, 나중에는 수사학에 기댄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냥 학문적인 전통의 인용에 불가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우리는 순간 독서실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방귀를 뀐 것처럼, 실제 악마를 본 것처럼 생각이 되고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런 최종최후의 경험 때문에 우리가 수사학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은 아이 때부터 시작되고 진행되는 것으로서, 하지만 그 수사학적 내면을 모니터링해서, 적당히 교정을 보고자 하는 부모는 세상천지에 없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본질주의자처럼 살고, 민중서림 에센스 영한사전, 말에 기교가 많거나, 학문적인 고집이 많은 사람을 싫어할 것이다. 일상의 수다는 동정표를 많이 얻거나, 영원한 우리들의 피렌체와 같지만, 그것마저도 최후의 세한도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손 더 게스트에서,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가 살던 여인숙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가 살다 보니까, 그 처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드라마의 의미와 가치를 확신하고, 옮겨 다닌다고 서로 분석하고 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없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모름지기, 백일의 낭군님과 같은, 사랑인지 아닌지 그런 느낌 같은 느낌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많이 맞는다. 정답을 맞는다. 비도 맞는다. 정답을 많이 틀린 사람이 귀신에 쫓길 확률은 별로 없다. 우리는 백점 귀신을 신봉하고, 그것을 어떤 학생이 입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팔십점 귀신을 보기도 한다. 우리들의 모든 사회적 발언은, 자기가 극심한 고통을 당한 뒤에나, 토해내지는 것이지, 정답 간의 긴밀한 관계에서 정말이지 황홀하고 아카데믹하게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와 같은 계림의 풍경을 무수하게 오고가면서, 대학을 따져서 사람들을 서둘러 나누기 때문에, 그 모습들이 신기하지 않지, 정말이지 확대해서 보고, 따로 또 같이 보고, 사진도 날마다 선명하게 찍고, 서로 대조해 보면, 정말이지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들인 것이다. 시험 문제부터가 그렇다. 시험이 세한도를 어둡게, 그리고 물감이 번진 것처럼 그려내고 있으면, 우리는 꼼짝없이, 아주 슬픈 음악처럼 들어가고 만다. 얼마나 나스타샤 킨스키는 인기가 있었는가?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우리나라 대학촌의 일반적인 영문학적 이해는 실로 대단했었다. 정답으로는 선명하지 않지만, 늘 언제나 전 세계를 도는 세한도처럼, 생각이 가고, 그것이 과연 우리나라 대표적인 작품인가 생각이 가고 그랬었다. 세한도는, 악마 같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작품인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은 가난하고, 누군가 정말 손 더 게스트처럼, 순전 세한도를 갖고 서로 싸우기도 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한도는 대표 작품이면서, 동시에 악마의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표 작품이 아니라, 예를 들면 국보가 아니라 보물, 보물이 아니라 지방 사적 정도가 되었다면, 이런 단출하고, 세련되고, 기괴하며, 무시하기에는 놀라운 작품이 있다고 내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작품이 얼마나 드물고, 뻔한지, 자칫하면 세한도가 으뜸의 미술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비유처럼, 우리는 칠년 정도 세한도를 갖고 기뻐하고, 놀러가고, 거기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뽀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살이 찔 것이고, 황소도 헤설피 울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칠년이 지나, 다음 칠년 동안에는, 세한도를 갖고 아무도 먹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생각만 개여울처럼 깊어지고,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 그림과 사람은 뼈만 앙상하게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수사학은 존재의 본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선함은 존재가 악함 때문인 것이고, 부분적이고 과정적인, 조금성, 그것을 갖고 자기의 선함을 주장하는 것이고, 수사학적 악함은 존재의 본연적인 선함을 갖고 악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때에는 또다시 존재를 의지하면 되는 것인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세한도처럼 되어 있다. 나는 최후의 세한대학교, 혹은 최후의 한세대학교라고 이름 붙이려고 했으나, 둘 다 실제하는 학교명이어서 그만 두었다. 그러나 그 학교는 그나마 최후에 이르러 훌륭한 학생들을 두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처럼. 수사학의 최후는 무엇인가? 기차에 올라 타는 것이 아닌가? 목적지가 분명한, 그런 것은 수사학에 어울리지 않다. 오래고, 길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옛날 식의 장항선 같은. 느낌. 가다가 뒤로도 가고, 그러다가 앞으로 가는. 거기서 창밖으로 우연히 떨어지게 되면, 강원도 산골에서 꼼짝 없이 얼어죽는. 다만 그것을 보여주는 의식으로서의 수사학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마지막은 개인이던지, 사회이던지, 우리의 작은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 같다. 우리가 이성의 경제를 이용해서, 다만 우리의 빈약한 생명을 연장한다고 해도, 그런 사실이 들통난다고 해도, 그렇게 갑자기 상대가 양반 신분으로 변신하여,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을 멍석말이 시킬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는 그와 같은 고상한 문제를 탐구하는, 아주 빼어난 소설을 우리가 써내려갈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키스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탄과 같은 권력에 의해 목이 잘릴 때가 아닌가? 공기는 이미 탁해져 있고, 차원의 구멍도 차단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 세한도의 나무들처럼, 우리는 소년소녀의 슬픈 언약식 같은 키스를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욕정 때문에, 연인들이 혀를 내밀고 키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해석의 방향이 지금껏 너무 일방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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