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금치
만약 희한한 영화 감독이 나와서, 꼭 삼우중공업이 있는 자리에다가, 거대한 세트를 짓고, 배의 부속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투기를 만든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들어맞는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여수로 버거킹 식자재 배달을 갈 때, 가끔은 그렇게 아시아나 항공이나 다른 비행기들이 이착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검수원 할 때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검수원 할 때는, 멋지고 그렇다는 느낌이었지만, 식자재 배달을 갈 때가 그렇게, 어떤 불만의 통찰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동차는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어떤 힘든 일이 되었는가? 비행기는 날아간다고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박정현의 플라스틱 러브를 생각하다 보면, 반드시 그럴 듯한 것은 아닌 것이다. 일도 괜찮았고, 그런데 사고로써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잠깐, 나를 돌이켜 보면, 얼마나 작은 오토바이부터 시작하여서, 마이티 운전까지를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인간이 글을 알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비행기까지를 행여 몰 수 있게 된다 해도, 시큰둥한 일이 되는 것이다. 글에는, 이 아름다운 글에는, 세상의 모든 영화가 있고, 에스에프가 있고, 러브스토리가 있으며, 항상 불후의 명곡이 있고, 그리고 도쿄의 육체파가 있고, 세계 경제와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는 초미세결정들이 있다. 과학이 있고, 종교가 있으며, 김희보의 아름다운 한국대표시선이 있다. 나는 하나의 삶을 살면서, 식탁에 놓인 음식들 중에, 밥과 국, 그리고 자기 앞의 음식만 겨우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취지로써 글을 쓴다. 나는 다 먹는다. 내가 부여와 공주를 돌 때, 미륵사지 석탑, 정림사지를 돌 때, 목포의 유달산을 오를 때, 나는 문학으로부터 쫓겨나 있지 않았다. 내가 만일 시티를 타지 않고, 데이스타부터 탔다면,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시티는 정확하고, 정확하지만, 데이스타는 멀리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호넷을 타고, 시방삼세에게 예를 보인 뒤에, 부산을 갈 때는 다시 데이스타를 탔다. 그만큼 나는 데이스타에 만족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시티를 타고, 데이스타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만족감이 어떠한 차이에서 발원하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데이스타를 타면, 내가 가다가 멈추면, 서울에서 친구가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나는 망국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금치 전투에서 승자총통, 그러니까 그와 같은 차별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 같았던 것이다. 속도와 어둠 속에서 차를 멈추면, 세상이 고요히 일어나는 것 같았고, 나로 인해서 세상이 멸망하는 것 같지 않았으며, 그나마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 모든 영광이 선양되는 것 같았다. 우금치는 미스테리이다. 그리고 피라미드가 가미가 되면, 더더욱 미스테리가 된다. 역사웃음주의. 그런 것이 우리나라 피라미드 학파에게서 제시가 되고, 사람들에게 웃음과 슬픔, 아픔과 애련 같은 것을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는 우금치 전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 상태로, 우금치 동학농민군들의 마지막 전투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사탄의 계략에 빠지는 것이며, 중국이란 우리의 키를 누르고 억누르고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의 숱한 우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 통나무 깊이 못박힌 채 되어, 그와 같은 모습으로만 언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금치와 같다. 처음에 오토바이를 타고 먼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목숨이 두려워서 걱정이 많이 된다. 신사숙녀 같은 드라이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짐승들도 많아서, 자기의 운전 미숙 플러스, 자동차의 있는 그대로의 힘과 가속, 그렇게 끝이 없는 잘 모르는 길의 현상학들이, 아무도 미워할 수 없는 사건사고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들을 피하고, 그것들을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진관의 암실에서 하나씩 발견해 내고. 그래도 내가 자동차를 타봐서 아는데,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하면, 얼마나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는지 모른다. 데이스타와 같은 작은 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와 같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필연성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여자는 그 말 뜻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 우금치 전투에 의하면, 그와 같은 기록에 의하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사탄의 힘이 제일 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태어난 것일까? 여자들도 그렇다. 여자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 만일 사회생활이 여자들처럼 없는 것이면, 동류의 것은 서로 병렬한다고,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회의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존재론을 배워서, 분명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것이면, 여자들은 할 수가 없는 것인 것이다. 지능이 에포케, 그러니까 포켓에 잠기고, 억지와 엑서사이즈만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훈련한 다음에 포켓에서 지능을 꺼내면 되는 일인 것이다. 좋은 영화가 어렵고, 세상의 모든 영화가 물에 잠기는 것도 같은 원리인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도, 처음에는 포켓에서 나왔으나, 갈수록 들어가는 형국인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 그랬다고 하지 않는다. 사탄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사탄은 인간들이 반드시 지능 없는 부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적어도 이런저런 윙까지를 만들어놓고, 그래야지만 그들에게는 만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둡고, 그것의 연대는 갈수록 쉬워진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서, 포켓에서도 지능을 꺼내고, 성경학교까지 가슴에서 꺼내는 기가 막힌 서커스 공연이 있다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때로는 우리말 퀴즈 같은 것은 금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기가 막힌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말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 아닌가? 내가 기억하는 우금치는 대승이었다. 일본군의 기관총에 많은 사람들이 죽기는 했으나, 처음 약속과는 다르게, 그리고 알 수 없는 강력 무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에 우왕좌왕했었다. 내가 왕이다, 아니다, 내가 왕이다, 서로 죽음을 앞두고 그랬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에게 몸을 엎드리라고 했다. 최대한 은폐엄폐물을 찾으라고 했다. 그때 한 삼십 명가량이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차분히 물건을 다룰 줄 아는 시민들이 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연통을 넣어, 좌우습격조에게,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약속된 시간에 습격하라고 했다. 나는 축축한 진흙으로 만든 수레를 앞으로 전진시켰고, 따라서 수많은 은폐엄폐물을 급조하였으며, 우리들의 정예의 화승총 부대를 가지고, 먼저 적들의 사기를 꺾어라고 했다. 적들이 대포를 쏘면, 최대한 지면에 임시 진지를 파고 들어가 있어라 했고, 총과 탄약이 얼마든지 많으니, 적들이 눈에서 많이 사라질 때까지 백병전은 피한다고 알렸다. 시간이 되어 습격조가 습격하였고, 우리는 정해진 길로써, 산발하여서, 전진하였는데, 적진에 가장 가까운 매복조도 있었다. 그들은 진격 명령이 있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도 상당히 용맹하였던지,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는 과정에도, 응사하였고, 때로는 계속해서 대포도 쏘아서, 그래도 이삼 백명 가량은 되는 줄 알았는데, 죽은 사람들이 수백명이었고, 우리에게 체포된 사람들이 삼십 명 가량이 되었다. 다다음날 조정에서 관리가 내려왔다. 우리에게 하는 말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 뜻이 좀체 외국말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냐? 했더니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일종의 문학에 관련된 것이었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똑똑함에 관한 것이었다. 그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괴씸하고, 여간 마음이 씁쓸한 것이 아니었다. 관리들이 전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사찰의, 이상한 생각들로 가득한 땡중들만 같았다. 그가 마지막 한 말이 가장 철퇴와 같았고, 나는 선죽교에 있는 것 같았다.
농민들은 쉽게 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