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드라마
태양인을 부를 때, 그것의 비밀은 우리 모두가 소양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슬픔을 두려워 해야 하는 이유는, 한번 화살을 맞게 되면, 계속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속으로 터널을 질주하다 보면, 세상 모든 드라마가 빛과 어둠인 줄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슬픔을 두려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는 집이 실제의 집이 아직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형도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와 같이 세자빈이 울부짖지만 않았다면, 나는 몰랐을 수도 있다. 얼마나 서울은 안타까운가? 아이 바우 투 디 마이 컨추리.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기형도는 완전한 시간 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남자끼리는 아무런 틈이 없지만, 기형도가 여자에게는 분명 아주 많은 여유와 틈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도 단계가 있어서, 처음에는 매우 잘 쓴 시로 보인다. 두번째로는 수많은 책들이 있던 한신대학교 구내 서점에서, 하나의 시집으로 보인다. 세번째로는 너무나 불쌍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폰팔이 같기도 하다. 어쩌면 회사원 같기도 하다. 회사원을 하다가, 시만 쓰려고 하면 슬픈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사람 같기도 하다. 폰을 팔아서, 여배우들에게도 전화를 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느즈막히 철학세미나를 참가하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하는데, 졸업하여 마땅한 선후배가 없는데도, 오직 그렇게 새로이 사람들이 생긴, 서울은 언덕이 많은데 거기를 성큼성큼 그들 무리 따라 걷는 사람 같기도 하다. 여자는 의지해서 죽는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을 의지해서 죽는다. 그러니 독립 같은 것은 처음부터, 기형도처럼, 몰랐을 수도 있다. 나는 매우 불쌍하나, 신기하게도 검수원이지 폰팔이가 아니며, 회사원과 슬픈 구멍의 앙상블로 사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대우해주는 세미나가 아니면, 별로 계속 다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만일 세자빈이 그렇게, 슬픈 존재를 먼저 보이고, 그렇게 드라마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예쁜 직원이 한 명 있었다. 학교는 동선이 여럿이 있어서, 좋아하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하루의 터울이면 불가능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주일이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서울대학교도 그럴 것이다. 모든 대학이 경복궁과 같은 인문학으로는, 창경궁, 덕수궁, 그와 같은 문학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와 전자방으로 행진하였던 것일 수 있다. 나의 머리가 피라미드의 금모래 빛과 같은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사랑이 아니라 하기도 그렇다. 무슨 일로 행정 무슨 사무실에 갈 일이 있으면, 조금 쌀쌀맞았다. 나이가 있는, 다른 여직원과는, 나의 문장 많음은 천부적이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파라다이스 같았다. 좋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공지영의 소설 제목 같은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에 그런 것이기에,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서로 복도에서 부딪히기도 했고, 도서관 넓은, 만우관 앞에서 어긋나기도 했다. 나는 주체가 없고, 유미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하려면, 물감이 가득 튜브에 단속되어야 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보았을 수도 있다. 사람들 다 그럴 것이다. 너무 평범한 얼굴로, 여섯 시간 여덟 시간 보아서는 안 되고, 예쁜 얼굴로 한 삼십 분 보는 것이어야 한다. 기형도를 불쌍히 여기지도 말아야 하고, 미워하지도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시간이 실제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엎질러진 물이 있고, 그 다음에 그것을 자기의 삶으로써, 너무한 것이긴 하지만, 단정한 글과 단어로 채우는 것이 있는 것이다. 기형도가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은, 과도하게 남자다운 것이고, 기형도가 동그랗게 눈에 띠는 것은, 어떤 여자의 여성성이 예민한 것이고, 사뭇 훌륭한 것인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사소한 드라마가, 계속해서 차원을 갖고 놀지, 공간과 시간, 인물들 간의 인과가 한없이 이상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울은 퇴근 후 집에까지 길이 멀고, 결혼까지의 길도 정말이지 멀다. 광주는 법원만 지나도 컴컴해지고, 수완지구, 혹은 광천구라고 해도, 대충 가다보면 컴컴해진다. 서울은 그렇지 않다. 서울은. 아주 환하다.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그리고 두 시간 동안 퇴근하는 내내 기형도 같은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다. 실상은 한번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죽는다고,
뻔히 알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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