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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그 옛날 월간조선과 신동아에 관한 느낌

by 마음대로다 2018. 11. 13.

그 옛날 월간조선과 신동아에 관한 느낌 






바둑은 천박하고, 척박, 서로 성숙한 대화는 오간 데 없고 일일이 어떻게 하려고나 한다. 일종의 낯설게 하기, 사랑했던 사람도, 달마시안처럼, 소파에 누워 있으면, 저게 지금 누군가 하지 않겠는가? 남자도 그렇다. 처음에는 쏘세지 안주가 기가 막힌 맥주집 같다가, 남자들의 천연적인 변증법, 나중에는 인체 크기의 말벌이 사람 말을 한다고, 모임에 나가, 집에 하나 있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카프카를 떠올릴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뭔 소린 줄 알아들을 것이다. 오목하다는 것. 그리고 오목하기 위해서 볼록하다는 것. 척박한 바둑을 일일이 따지기 전에, 오목해지는 것의 거대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군대는, 그 순정한 마음이 강탈당하고, 새 부대로 끊임없이 대치되고 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제국주의는, 그것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위장전술 같은 것이었는가? 군대는 환영받지 못한다. 공부를 잘했다면 군대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지금 해외 유학생이 없고, 군대에 입대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 언론 같은 데서, 유골 발굴과 환급? 환기? 그런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침을 바르고들 말을 했는데, 그렇게 반대 주장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도 없는데, 사태가 급격하게 오블라디 오블리크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의 그와 같은 전통은 좋고, 사진은 포토제닉의 전형이며,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도 줄어들기만 했지,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유길준이나 서광범, 서재필만 보더라도, 그렇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미풍으로다가 재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닥달하고, 최면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사람들도, 독립한 사람들도 미국 아닌 미국을 참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의 브루클린. 그것의 허드슨 리버......


어떻게 미국은, 미국 아미는, 완벽한 인간 조종과, 완벽한 신체 변형에 성공한 것일까? 


정말 어떤 물질을 투여하면, 몸집이 부풀고, 손톱이라도 급격하게 자라고, 이빨이 동물의 것으로 변하는 것일까? 미국 영화는 하도 그런 것을 기정사실로 하여서 궁금한 것이다. 만일 몽환적이고, 피만 빨리 돌고, 힘만 조금 세지고, 너무 피가 빨리 돌고, 그래서 눈만 조금 빨게 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닐까? 태공조가 실험 때마다, 같은 약의 투여에, 서로 다른 반응들을 개입하여 만드니까, 그것이 우연하기는 하지만, 자기들의 실험의 재테크 같은 것으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위기를 그렇게 조성하면, 묘하게 자살특공대 같은 느낌은 만들 수가 있었던 것 같다. 눈이 어떻게 안 보이고, 체력도 급격하게 떨어지니까, 남몰래, 마지막 작전 같은 것에, 마치 휴가 같은 기분을 역전적으로 만끽하려고 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오목한 것들에는, 정물화가 있고, 이런저런 잡지들이 있고, 인터뷰가 있고, 오목한 것들에는, 반드시 마지막 만남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들도 군인이 있어서, 그녀는 남자에게, 도대체 설명할 수 없는 우주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작전명 스타게이트,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맹위를 발휘하다가, 밀림만 가득한 베트남에서는 힘을 잃었던 것도 그와 같은 생리적인 템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어는 얼마나 어려운가? 주한미군.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얼마나 대구와 같은가? 시골 출신 찰리는, 러브미 텐더, 일본에서 기가 죽고, 일본은 한국 사람들도 기를 죽이는 맹위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기가 죽지 않는 것을 영국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 그렇게 한국에 와서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기가 죽는 것이다. 일본도 식민지 초기에, 한국 사람들의 일본어 실력에 귀신에 홀린 것처럼, 기가 죽었었다. 표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고급어를 쓰고 있으면, 그만큼 고급스러운 아우라가 보이는 것이다. 영어를 쓸 때도, 프랜드쉽 같은 관념어가 좋더니, 그것의 이런저런 캠프에서의 만남, 자기들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근사한 러브스토리의 남자 주인공 같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알 것인가? 아니, 전 세계의 인민들은 알 것인가? 얼마나 많은 미국 군인들이 실험실에서, 다만 미신적인 패이트리어티즘으로다가 죽어가는지? 얼마나 그들을 중심으로, 영화가 하나씩 둘씩, 완벽한 계획에 의거해서 제작이 되는지? 약물을 투여해서, 한국어를 갑자기 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어렵다는 것이 객관적이겠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어쩌면 허용치 내에 있는 것인 것이다. 한국에서 근무하고, 조금 공부하고, 어학연수생처럼, 한국 티비도 많이 봤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칠번방의 기적 같은 것이 그와 같았을 것이다. 초능력은 당연히 없지 않겠는가? 그것의 프레퍼레이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프레퍼레이션을 아는 것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어느 누가 바라겠는가? 그러니까 그와 같이 만나는 것이다. 미국은 매우 슈퍼스티셔스한 국가이고, 밀리터리하고, 그것의 중심에는 무한한 프래그머티즘이 흐른다. 하지만, 보이져호처럼, 이런저런 관측선의 이름들처럼, 지능이 그 테두리까지 정확하게 도달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가 과학이란 이름으로, 그와 같은 세계를 향해, 지능이 축소된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겠는가? 


다른 우주로의 여행을 준비 중이던, 한국말이 갑자기 능통해진, 의식의 몽롱상태, 육군 장교가, 월간조선이나 신동아를 보게 되면, 얼마나 놀랬겠는가? 그들은 전치사가 문장들을 단속하여서, 지능이 다소 전치사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한국어에 능통하게 되면, 몽롱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몽룡을 읽어보면, 남원을 여행하고 싶을 뿐인 것이다. 우리는 월간조선이나 신동아가 군인 장교들이 좋아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여기곤 하였다. 그렇게 비난하여, 낮추어 보았었는데, 보편성의 오목으로, 거의 모든 신체가 변해가던 미국 장교에게는, 도리어 몽롱하지 않는, 문선명한, 이성계의 국가로도 보였던 것이다. 어진을 보면, 우리는 항상 그런 식인 것이다. 정조도 그렇고, 영조도 그렇다. 그런 그들에게 구원의 은마는 오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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