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배반형이었나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언제쯤 제법 순수했던 것일까 생각하는 것이
오늘 아침의 타로 카드는 두 카드이다. 원카드, 원페어, 그런 개념이 아니라, 나의 상목적적인 착안에 머리가 부딪힌 형태라고나 할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렇게까지 사도매저키즘적인 것이 아니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 그것의 메카. 발음은 쉽지만, 코란은 읽어본 적이 없는, 미래소년 코란........
내가 좋아하는 이름, 난봉황........
다릏게 보면 얼굴도 예쁘게 생겼다. 어쩌면 임청하와 관지림 사이에서, 윤일상의 영턱스 노래들처럼 좋았는지 모른다. 나는 난봉황을 좋아했다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그것은 해양심층수가 되었다.
사람이 임청하를 좋아한다는 것과 난봉황을 좋아한다는 것이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syntax하게, 혹은 phoenix하게
사람들은 친절한 금자씨 오에스에스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오에스티,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낮게 나는 피닉스의 실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땅을 한국에서 제일 예쁜 여배우라고 손가락질을 꼽을 수 있는 여자가 불사조처럼 비행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정념을 환기시키고, 선물과 돈이었던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생일선물조차, 꽃과 음반으로 바꾸는 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총소리.
뷁.
이문열이 시대와의 불화라는 기회적일지라도 명문의 현수막을 걸었듯이, 이영애는 시대와의 사랑이라는 도장을 도장 가게 아자씨, 아자씨는 계란 좋아하우? 팠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만화는 이카루스의 날개라는 제목이 나무 가판에 걸렸을 때가 절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이 절정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혼자 있지 않고 동네 안에 있을 때의 흥분적 금석문이 그러했단 것으로다가.........
*
표현이 미안하지만, 극중에서 매우 제섭게 생긴 사람이 암살당한다. 우리는 암살의 위험 속에 늘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춤을 출 때 즐거운 것처럼, 총알이 근육 사이를 세차게 파고들어가면서, 그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북한군, 아이리스인지, 탈북자인지 모르는.
너무 그것의 언밸런스는, 서양 총영화에서는 볼 수가 없는, 인격의 다면성으로는 거의 획기적인 모습이 아니었나 한다. 우리는 늘 경험하는 것이다. 선도부장을 했다가, 반장을 했다가, 미화부장을 했다가,
아직은 그것의 장년층의 레플렉션이 폭노되지 않는 시기에는, 것도 어느 정도는 춤을 추는 듯한.........
뿌리가 없는 우리나라 대지에서의, 한 국문학자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모색적 고통, 같은 말 반복하게 만드는 문장의 한정성........
그가 괌 원주민을 닮았다는,
.............믿기지 않는 금자씨 오에스에스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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