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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드라마는 어째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가? 그것의 한계효용적 측면에서

by 마음대로다 2013. 3. 26.

드라마는 어째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가? 그것의 한계효용적 측면에서

 

 

 

 

 

 

 

 

나는 불안을 탈피하기 위해서 음악을 잘 선별하고, 클래식 음악, 다시 말해서 고전음악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불안하다면, 고전음악도 불안했다. 고전이 되지 못하는 것은, 민음사 세계문학 컬렉션에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발견할 수 있는 것에서, 불안은 엠플리피케이션된다. 증폭. 지금 우리는 불안하지 않고, 날씨가 불안하다. 춘삼월이는 기생짓을 그만 두고, 공부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그래서라면 다분 좋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의 시짓에서 잡히지 않는 세상은, 숱한 영화적 따라쟁이들을 양산한다.

 

한국문단은 사실 드라마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내가 사라지면, 문단이 다시금 지어지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 호가호위, 선생이 여우짓을 한다. 드라마단에서 조선 왕조는, 무서운 기생집 주인 같다. 아주 비싼 차를 타고 왔다갔다 하고, 아랫것들에게 싸늘하고, 때로는 친한 척 하고, 기다란 길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비보호 좌회전 중인 오토바이로 접근해서 개궁둥이 같은 얼굴을 보여주는.

 

프랑스 정치보호소 같은 정신병원을 좋아하고, 약먹는 것을 무슨 정신의 독도적 행위랍시고 지들끼리 바하의 평균율을 획득한다.

 

드라마 중에는 순수드라마가 있다. 다분. 그 드라마는 드라마들과 싸운다. 울릉도가 조선이고, 독도가 고조선이며, 한반도 전체가 개조선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들은 엿장사들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어중간한 애클레티즘으로 향하며, 그것들의 캐비넷은 다시금 아주 이상한 종류의 연예담의 고전들로 굴러 떨어진다. 기생들 중엔 반드시 잘못한 것들이 있고, 그런 기생들을 발가벗겨 놓고, 후려치는, 붓펜 후리펜 할 때의 후리펜, 그런 행동대장을 두고 있는 옆관념의 근대 한국화의 한 사람으로 낙착된다. 우리는 백가쟁패. 그런 형상이 어떻게 도자기 구워졌는지, 그것이 그들의 이십색쌍환들 중에 한 명을 어떻게 들고양이들로 만드는지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다. 행동대장은, 이것은 예수님도 했던 것이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짜고치는 고스톱이면, 고통은, 퍼틱이스 마인, 차라리 성경적이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연기를 얻어서,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도구적 착한 채찍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아무런 도구도 사용할 줄 모르고, 카메라에 나올 정도로 잘생기지도 않았다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투표권 없음. 못생긴 것들은, 실은 그러한데, 마음도 착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대도시 도심의 발음적 드라마적 구조.......

 

 

 

 

문제는 교수가 가장 가만 있어도 드라마가 생기는 사람이 공부를 아주 잘하고, 논문을 잘쓰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해야하는데,

 

그들은 실은 학교에 오래 있지 못하는 것처럼, 상업 세계에도 종사해야 하는 것처럼, 여자로도 카와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야 하는 것처럼, 교수님 어디 계시느냐 하면, 일본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있는데요 차마 답하지는 못해서, 그렇게 전화할 일도 없다는 상호구조 속에서, 우리는 귀가 먹먹해지고, 관심을 종이비행기 접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바닷물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래도 그들이 다시금 코스모 폴리탄이 되어 교수도 되는 것에 하자가 없는 것은, 학생들이 문어 같아서지 않겠는가? 에테르가 문어보다 못하겠지만, 곧 죽는 문어보다는 안죽는 신비로운 바닷물이 좋은 것이니까.......

 

 

 

드라마를 찍을 때 그들이 전기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바닷물일 때 그나마 지능이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