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밤나무
예전에 너도밤나무라는 말을 썼던 적이 있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모두 불확정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모두 까먹기 때문이다. 시험에 들게 되면, 우리는 모두 흔들리게 되어 있다. 시험은 본시, 쓸데 없는 것들의 밤나무 열매와 같기 때문이다. 틀리면 찔리게 되고, 운동화로도 밤열매의 가시가 들어올 때가 많다. 밤나무가 집 근처에 있으면, 우리는 가을을 지낼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는 열매 하나에 웃고, 울고 하였던, 극한빈층들이었기 때문이다. 밥은 부지런히 먹고, 다른 과자들도 허겁지겁 먹었던 것은, 우리가 생각을 하려면, 배가 고프면 그것이 많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 많은 데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과, 먹는 것이 별 것 없는 데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래서 같은 무게로써 신기하다 여겼었다. 때로는 먼저 친구들이 부럽고, 때로는 나중 친구들의 축엽성, 가독성, 무슨 말이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말들도 갑자기 생각을 잘하는 아이들이 부럽고 그랬었다. 문제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친구들은 친구들일 뿐, 그들은 모두 다른 신병훈련소에 간다. 지금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혹시 여기 운전면허증 있는 사람? 할 때 손을 들었을 것이다. 각종 장기와 특기, 그런 것들을 사주는 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좋았었다. 가족 관계의 어려움도, 곳곳에서 신경 써주는 것 같았다. 어째서 시험은 남과의 시험이었다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시험이요, 포임 중에 포임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쫓겨나서, 꿈에서, 꿈이 이뤄지는 곳에서,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밤나무 같은 것들이 많은 것이다. 도토리 나무는 그것의 문학적, 은유적 의미가, 친구들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음식이 있다는 것은, 친구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토리 묵을 해먹었다는 것은, 친구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미래는 오직 죽음 밖에 남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와 같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소년과 소녀 때에는, 세상은 정말 아름답고, 자대배치 받기 전에, 각종 장기들, 운전면허증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의 전진과 투신, 돌파와 어드벤쳐의 세계인 것 같은 것이다. 문학도 그렇다. 우리나라 문학은 그와 같은 학생 운동의 어드벤처의 세상과 같았다. 한 명 그와 같은 퓨전 오브 호라이즌을 성공한 사람이 없는 것이 탈이지만. 문학은 뭔가 될 것 같은 우주였었다. 밥만 먹다 보면, 그와 같은 경쟁 함수가 없는 시공간성 때문에, 차별이 없고, 밥이 하늘인 세상과는 별개로, 멍청해지고, 어눌해지고, 말만 번지르르 해지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 빵만 먹다 보면, 완전히 외국어를 자기화시킨 절대의 스님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빵이 되는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적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두 사람의 적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새로이 한 사람이 생기는데, 그래서 한 사람은 자국 사람이고, 다른 두 사람은 외국 사람인 것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 바깥에서는 늘, 도토리와 싸우고, 걱정 많은 공무원들의 플랭카드와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어렵고, 그지 없고, 저와 같은 문학적 포토샵의 세계에서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한계에 도달해서는, 도리어 여자 친구의 노래처럼 해가 뜰 수는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메시지는 최근 잘 만든 드라마나 영화에서 곧잘 발견할 수 있다. 한 사람은 수많은 화살을 맞아도, 적과 싸우며, 다른 한 사람은 무참하게 두들겨 맞아도, 선천적인 백낙청성으로다가, 그것도 아니되면 좀비처럼 몸을 다시 짜맞추고 일어서는 것이다. 신디로퍼의 이퓨고웨이. 이 모든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고, 같은 말이지만, 우리말로써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이제는 뭔가 알 것도 같다. 알 것도 같다가, 모르는 것이다. 옛날에는 그렇게, 송광사나, 선암사, 대흥사에 가고 싶었는데, 불국사, 화엄사, 지금은 지나가기만 해도, 누군가 농구 선수가 삼점슛을 멋지게 성공하는 것 같고, 생각만 해도 그런 것인 것이다. 대흥사를 사진으로 보았을 때가 그렇게, 매혹적이고, 나의 삶은 도토리와 같았고 그랬던 것 같다. 너도밤나무는 뭔가 더 함축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한국 사람이면, 전쟁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일까? 세상 모든 전쟁이 다들 사랑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가? 누군가 집을 샀는데, 집 근처에 감나무며 밤나무가 여섯구루씩 일곱그루씩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도시 외곽에, 저렴하지만 땅이 넓고 아름답고 한가로운 곳을 생각하였지만, 돌아보니까 그러한 것이다. 아이들은 늘 언제나 두려움이 익숙하고, 어른들과는 다른 채널로써, 시험이 자기만의 투쟁이자, 동시에 친구들과의 경쟁인 것이다. 그와 같은 하루의 연속인 것이다. 우리가 친구들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친구들 때문에 겨우 공부도 할 수 있고, 시험보기 전에 너도 밤나무냐? 응 나도 밤나무야, 그와 같은 대화로써 겨우 사회에 진입하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어제는 밥을 하고, 김치찌게를 끓이고, 김에다가 저녁을 먹었었다. 김치에다 참치만 끓였는데, 그렇게 맛이 좋은 것이었다.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가지고 와서, 바꿔먹자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싸이월드에 글을 남기자, 도토리들이 우리들 평범한 야산에 그렇게 발견이 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