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상상力
나는 판타지는 싫어한다. 판타지는 아주 깊은, 딮 인더 나잇에서나 가능한 전개이기 때문이다. 나는 보이는 것이 신기하고, 아름답고, 그러다가 집에서 티비를 보면, 그것이 신기하고, 꽃과 같고 그렇기 때문이다. 판타지는, 유튜브로 보면, 정성과 자본 가득한 컴퓨터 게임들의 스토리 영상 같은 것들이다. 자주 보면, 그것도 일상의 시간이 될 수 있으나, 우리가 엊그제 보았던, 왕이 된 남자의 마지막 장면과, 우리들의 아름다운 블로그 세상과, 드문드문 보아줄 수 있는 드라마의 내용들의 결합에서 보면, 영 동떨어져 있는 것들인 것이다. 삼국지의 원소 같고, 오나라 같고, 삼족오 같고 그렇다. 아이들은 판타지를 좋아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아직은 삼족오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성이 그렇게 많은 양의 리얼러티를 확보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도, 해석에 따라서는 남녀관계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유명한 한국인 영국 시인의 오 힌지라는 시가 있다. 오 힌지. 유아더 베스트. 그런 내용이 있다. 한국 말로 해석하면, 처음을 영어로 써서, 오 경첩, 당신은 최고다. 당신은 기능적이고, 오 힌지. 힌지. 힌지. 에버라스팅 힌지. 우리는 시에서 매우 다급한 인상을 받는다. 마땅히 어떠한 경첩을 가리키는지, 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유종호의 옛날 책에서, 그것이 아니라 김현의 옛날 책에서, 그 책을 읽을 때, 내 교회의 전도사님이 내가 신학대학을 간다니까, 축하 선물로 주었었는데, 현실주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있었다. 전체에의 통찰도 있었고. 유종호의 책 제목이 그랬을 것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내가 미래에의 최고 문학생이지만, 아직까지는 내 마음껏, 나의 진심을 다해, 문학용어들을 말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고, 다분 아름다운 애국적 문학적 진행을 두고, 마음이 들뜨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주의 상상력도 그렇고, 전체에의 통찰도 그렇고, 그것은 세계주의적으로도 호환이 되는 입장들이었다. 그러나 국내 작품으로만 한정된다면, 세계 고전들은 늘 언제나 알 수 없는 기본 베이스로 하고, 처음부터 기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 전도사님이 내게 아름다운 두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준 것도 같았다. 여자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남자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지 않은가? 그 힌지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나는 책을 읽고, 다 읽고, 읽는 중간중간에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방학 내내,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들이 바쁘면 그제야 공부를 하고, 학교 공부에 짓눌려 있다가, 처음으로 여자친구 같은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같은 무게중심과 시간, 노력과 경주를 다하였을 것이다. 자유는 훈련이고, 유물론이다. 그것을 분명히 스즈키 카타나 하게 염두에 두어야만, 자기에게, 자기의 정신과 육체에게 효과가 닿는 것이다. 입시 공부에 온 몸과 마음이 독으로 가득할 것인데, 그것을 적어도 씻어내는 힌지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그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대학교 기숙사 책상에도 꼽아 놓고는, 하루 왠종일 마음이 극단적인 갤럭시 상태에 있다가도, 잠들기 전 책을 읽으면서, 그것들이 유성우처럼 땅으로 쏟아져내리는, 전체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내 지금에 관한 전체에의 통찰, 가난한 국문학 현실주의적 상상력이 또한 경주되었던 것이다. 그때 한국인 영국 시인의 대표작 오 힌지, 유아더 베스트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구글맵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업적인 세계, 그러니까 동물원적인 계획과, 구획, 그리고 마음 따뜻한 사육사가 어린아이들도 돌보고, 동물원의 주인공인 코끼리도 돌보는 세계에서는, 그것은 분명 선명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되면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여섯 시는 무엇인가? 한 시는 한시이고. 우리가 이비에스 인기 다큐멘타리에, 중국 한시 기행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어느 대학 교수가, 늘 막걸리 마신 것 같은 기분과 열정으로, 그들 쉽고 어려운 중국 한시를 읊는. 열두 시면 무엇인가? 그리고 시는 내용을 갖고 있고, 때로는 사람들을 갖고 있다. 오십 육분이면, 오십 육명이나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시는, 대게 한 시 같고, 일 분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것이나, 편지를 쓰는 것 같은 것이면. 삼 분에서부터는 세 분은 아닌 것이다. 사 분은 식당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숫자 같은 인상을 준다. 우리는 시를 쓸 수가 없다. 숱한 시들이 있지만, 기숙사에 사람이 없고, 티비를 보고 싶은 마음에 식당에 가면,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몇몇 있고, 함께 보고 있다가, 먼저 자리를 뜨고, 경영학과나 국문학과, 남녀끼리 만나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티비까지 함께 보다가, 금세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고, 나는 공부는 한 삼십분 하고는, 티비는 두 시간을 보기도 하였는 것이다. 그렇게 책보다 꽃과 같은 티비가 좋았던 것 같다. 우리는 카타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도저히 그 야심한 밤에 서해안으로, 제부도나 대부도로 나이트라이딩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정확히 내가 모르는 관념이 이것이다, 그것만큼은 알고 있다, 도형적 진단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아는 것 같고, 다른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것 같고, 사랑해서 자위한 것 같고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모르는 것 같고, 책을 꺼냈다가, 꼽았다가, 책만 가득히 있는 도서관에 갔다가, 거기서 나왔다가를, 미친 듯이, 수십번 수백번을 반복하였던 것이다. 갤럭시 폴드를 보자. 우리는 컴퓨터를 갖고 처음에는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백 명이면 백 명, 한 번쯤은 소설을 쓰고자 하였는 것이다. 타자 연습을 하다가, 봄봄 소설을 쓰거나, 어린왕자를 쓸 때에는. 소설을 쓰고, 그 환희의 시간, 우윳 빛 천사 같은, 모든 생명으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을 것 같은. 소설의 내용은 그렇다. 남자가 여자에게 푸념을 하는 것이다. 소설이 잘 쓰여지지 않는다고. 그리고는 스즈키 가타나와, 갤럭시 폴드만 있으면, 뭔가 기분이 달라지고, 야외에 가서, 그림도 보고, 시도 읽고, 비오는 날에도 다이나믹하게 라이딩을 즐기면, 왠지 모르게 불이 붙을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둘은 중산층이었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양념통닭을 시켜먹었다. 여자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소설이 끝이 난다. 삶은 분명 사물이 아니라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만 써도, 우리는 정말 기쁘고, 독일 사람 베토벤이, 한국 사람이 언젠가는 소설을 쓸 것인데, 영국 사람들보다 환희의 기운이 더욱 클 것이다고 예언한 것에는, 다만 주관적인 차원에서는 결코 모자라지 않는 것이다. 아내가 몇 달 뒤에, 소설을 끝낸 남편에게, 폴드를 사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필 우리에게 핸드폰은 백만원 가량 하고, 폴드는 이백만원 가량 한다. 남자는 아내를 이용한 것이다. 결혼이란 그와 같은 제한된 도시 경험의, 이용 관계의, 힌지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것들의 연속인지 모른다. 얼마나 힌지, 아름다운가? 그것은 시를 읽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람들만 천지인이 원활한데, 쓰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힌지, 애매한 것이다. 갤럭시 폴드는 그것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지금 이 시간,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들이 이 나라에 있는가? 플라타너스가 있는 거리에서,
POOQ
말을 잇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