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옛 소설 여름 그늘에 대한 향수
갑자원 광주에서 사태가 발생하고, 민주화 의거가 추진되었다. 대마도 사람들은, 세계 대전 이후에, 이제는 일본에서 그와 같은 민주화가 추진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것의 노력은 한이 없었고, 그것의 입맥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러나 늘 결정적일 때, 홈런을 날리지 못하고, 다만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만, 혹은 일본인은 살아있다는 것만, 혹은 민주화라는 경기에 참가했다는 것만을 만족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의사의 진단이 이상하다 할 것이다. 의로움이라는 것은 대대로, 한국에 많았고, 광주라면 특별한 기록이 없었대도, 늘 깊은 전라도 땅의 한복판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누가, 그 옛날 우리가 좋아하던 붉은 도장을 찍는데, 찍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은채도 그랬다. 도장을 찍고는 좋아했다. 그것은 극동 삼국의 청년들은 모두가 겪는 것이었다. 민주화 운동은 고대의 아틀란티쓰까지 간다. 우리의 문명이라고 해봤자, 서유기, 그리고 윤동주, 정한파 일본권력자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강력한 피라미디언 인사이트는 지금까지 없었을 것이다. 서유기 월광보합을 보면, 여주인공이 그렇게 슬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찾아보라고 하면, 현정이를 닮은 그 여배우의, 극중 얼굴이 아닐까 한다. 모든 배움은 눈썰매 같은 것이 있다. 내 조카 해성이도, 신학대학교를 다니는 삼촌이 좋았을 것이다. 그것의 깨끗한 자리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현정이는 내가 교편을 잡고, 시집을 발간하고, 여의도에 사는 여배우와 불륜을 일으키고, 그래도 자기를 좋아하는 변태 같고, 그렇게 자주 중국을 여행하는 것을 계획하였을 것이다. 그곳으로 가면, 건너편 방에 한국 사람이 와 있고, 그것이 늘 수상쩍다 하지만, 간신히 그것의 붉은 질투의 칼날을 극복하고 하였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부채 권법만 같다. 그렇게 서유기 월광보합을 보면 슬프고 그렇다. 영문학을 볼 줄 알고, 번역본으로도 막힘이 없으며, 영어로 읽을 줄 알고, 파스칼의 팡세를 읽는다면, 이미 민중은 여자들의 질투, 아틀란티쓰의 경계에 진입한 것을 뜻한다. 여자건, 남자건, 정이건, 말주변이 없고, 서로의 리얼리즘이 없고, 종교혁명이 없이, 조심스러운 약정으로 결혼하는 것이겠기 때문이다. 교육제도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고, 어떠한 비판도 할 수가 없다. 다만 아이들을 체벌하는 것에 대해서만, 자기들이 부모인 것을 자랑할 만한 기회를 얻는 것이다. 때로는 부분적으로 허용했으면 좋겠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면서. 숱한 시험의 기회주의적 함정 출제 같은 것은 절대로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의 아틀란티쓰에 사람들이 늘 죽고, 낙오하고, 염증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하여도 그렇다. 나는 현정이가 키가 작은 것이 슬펐고, 서울의 황현정 아나운서가 키가 큰 것이, 일종의 빌둥스로만처럼 반갑고, 그것의 이념처럼 흥분이 되고 그랬었다. 우리의 지식은 어느 부분에까지 이르러야, 딱딱해지며, 한 번은 배신해도, 영원히 배신하지 않을 사도 바울 베도로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인가? 다만 흰 종이에, 은채처럼, 영희처럼, 붉은 도장을 찍는 것으로, 자기 이름을 숱한 제도의 양식에다, 재미가 있고, 사라지는 것인가?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그것의 출발이, 식민제국주의의 부요함이었대도, 민주화 운동이 격렬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사탄이 좋아할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도 득이 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뒤늦게 연세대학교 앞에서 최루탄 축제를 벌였던 것이, 정말이지 하나의 이미지즘이요, 실천이성이요, 실성할 것 같은, 판에 박힌 설치미술 같은 것일지라도,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일본에 그와 같은 기타로도 있었고, 소지로도 있었다. 우리가 약간 어눌한 국문학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스스로를 전변하여, 한국을 지원하는 높은 빌딩숲의 신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인데도 부요한, 그것의 후지산을 얼마든지 나타낼 수가 있었다. 그와 같은 계획이 얼마든지 있었다. 대마도 사람들은 초기에 자신이 있었고, 그들이 오래사는 것의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하였었다. 책이 얼마나 많이 발간이 되는가? 책이 많이 발간이 되어, 일제가 문화통치로 나아가는 무한수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처럼, 서양의 좋은 문명, 그들에게는 이제는 사라질 것들을, 얼마나 많이 일본에서 발간하고, 일본 사람 특유의 장인 정신과, 사무라이 정신, 그리고 그들의 혼합과 같은 것들의 현대 문명이, 이제는 그것들을 창발할 것만 남은 것처럼 여겼던 것이다. 사람들이 엉터리 뉴스에 있을 때, 사람들이 포르노만 보지 않는 것처럼 얼른 빠져나올 것으로 생각했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관점에 따라서는 일본의 민주화 세력에, 그들의 풍요로운 정신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고, 일본에도 주체가 있다는 전제인 것이다. 우리로서는 여간해서는 해보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실패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분명 조총련이나, 민단 사람들이, 매우 강력한 탈 아틀란티쓰의 기둥이 되고자 하였던 것이다. 수많은 초기의 한국 사람들이, 조총련 사람들이,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월북을 감행한 것도, 그것이 아무리 북한이 제법 강성했을 때라고 해도, 믿겨지지가 않는 것은, 그것의 정신적 동기가 우리에게는 지금까지도 낯선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쟁 이후에, 죽지 못해 부요함을 확보했어도, 학문에, 그리고 그들의 경제에 정신이 있는지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도 지원하고, 한국에도 지원하고 했던 것이다. 한국이 너무 뛰어나진 것일까? 아니면 일본의 예술이 몰락한 것일까? 유명한 그림에다, 너도나도 붉은 도장이나 찍으면서 좋아했던 하루살이들이, 이 정도까지의 교류의 높은 탑을 쌓았다는 것이 신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외화와, 외적인 관계의 양상, 거듭되는 객관적인 사태가, 결단코 단순화될 수가 없고, 골고루 모든 개인들에게 해당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남녀가 결혼해서 얻는 것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제도에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보이지 않게 효성이 깊었던 이차돈만이, 섬진강의 봄꽃을 보면서 머리가 잘리는 것은 아닌 것이다. 원시인 둘이 결혼을 하게 되면, 당연히 숱한 아브라함들이 나오고, 숱한 이삭들이 나오는 것이며, 숱한 이삭들 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자가 성경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호신대를 생각하면, 별다른 교수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학대학교는 툭하면, 잘 모르는 외국인들로 나아간다. 잘 알고, 친하고, 나의 하이데거 같고, 프로이트 같고, 그렇다면 모를까? 어딘가에서 소피를 얻어다가, 사람들 문에 골고루 발라주는 느낌인 것이다. 항상 어딘가에서, 나도 그처럼, 높은 대우를 받을 것 같은 미래지향적 느낌이 있기는 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이다. 하지만 이미, 성경에 자기 생각이 없는 것이고, 다른 말 할 것 없이, 아틀란티쓰의 길이 활짝 열린 것인 것이다. 신학생이 문학 서적을 읽을 시간이 없다. 참 그런 것이 우습고, 내가 학교 다니던 내내, 슬퍼하던 것일 것이다. 공관복음서 같은 것은 있다. 신학 자체가 문학이고, 문학의 궤변까지 아우르는 것이며, 신학 자체가 음악이고, 신학 자체가 돈 주앙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리학적으로 완벽한 것이기에, 따로 덧붙일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를 시작하게 되면, 익숙한 형틀이 제시가 되고, 그것은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와 사색당파의 시간과 그렇게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엄숙주의나, 사회적 모랄리즘에 동참하게 되면, 한번 동성애에 맛을 들이게 되면, 지금의 워싱턴이나 애틀랜타, 유타, 미시건, 프랑스의 세로방스, 이탈리아의 바티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것이다. 동성애와 아틀란티쓰를 같은 저울에 놓아 무게를 측정하게 되면, 나는 먼저 그것이 어떻게 같은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아틀란티쓰에 맛을 들이게 되면, 우리나라는 전국이 초토화가 된다. 사람들은 차분한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틀란티쓰에서, 다른 아틀란티쓰로, 누군가의 멋진 소설 제목처럼, 태평양 횡단 특급을 타게 되는 것이다. 생각은 연결이다.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나쁜 생각이 주는 환희와, 그것들의 꾸준한 연속에, 자기들의 아들들을 내주게 된다. 모든 역사는 아틀란티쓰가 된다. 공포영화를 우리는 처음에는 재미로 보지만, 그것은 아틀란티쓰가 된다. 지금 우리는 그와 같은 지평융합을 그나마, 훌륭한 문명과 문화, 생활 세계의 두터운 그림 속에서 마주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만 그것인가? 그렇게 한번의 세계 경험과, 전쟁으로, 우리가 극복한 것인가?
그 옛날 광주는 아틀란티쓰로 나아갔다. 광주는 일본도 아니었고, 서울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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