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이야기들의 자동 컴퓨터 세상......
서울대에는 보이는 서울대가 있고, 보이지 않는 서울대가 있다. 정문부터 재수 없게 생겼다. 그리고 옛날 본관 일층 도서관을 수족관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새로 지은 도서관이 크기도 크고, 용량도 많아, 일층 수족관에서는 공부하지 않을 걸로 예상해본다. 하지만 꼭 그렇게 레트로한 감성의 사람들이 있어서, 나이에 상관 없이, 사람 별로 없는 공간에서 공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서울대에서 공부할 때, 책들이 많고, 원서, 원하고 원망하는, 바로 옆에 책상이 몇 개 있었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에고쎈추리즘이 있어서, 나를 위해 준비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학원 입시에 바쁘다가도, 머리를 하찮게 돌리기 싫어서, 세상 대가로서의 책 읽기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때 다섯권 정도 꺼내와서 읽는 것이 그렇게 좋았었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루종일 공부하고, 대화하고, 관심하다 보니, 속도가 붙고 있었고, 내용이 부정확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항상 아메리칸 풜스트, 내가 먼저였기 때문에, 조바심이 나거나, 왠지 모르게 애지테이티드,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때도 그렇지만, 나의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문법이 먼저이고, 그것들이 붙는 것이다. 그래도 재밌게 호응하는 책들이 많아서 그렇게 좋았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영원한 가상 공간 안에서, 호몰로지라고 묻고 답하는 글이 있었다. 그것은 보이는 서울대일 것이다. 그런데 정문과 수족관에 걸친, 양면 입체 이중 공간성에서는, 보이지 않는 서울대에서도, 그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나는 수학을 잘 모르고, 보이지 않는 서울대생도, 과가 다르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슬플 수 없는 것이다. 왠지 알 것도 같기 때문이다. 수학적 원리는 대개의 경우, 공리적 연역을 원칙으로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는, 형이상학적 현상에 대한 방정식적 표기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에서는, 알 것도 말 것도 없지만, 우리나라 말이 아니고,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후자의 경우에서는, 찌르면 무조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인 것이다. 호몰로지라는 것은, 호모라는 말이다. 어째서 세상에 태어나 호모로 사는 것인가? 어떤 남자가 결혼을 했는데, 호모로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티비를 좋아하고, 라디오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게 라디오를 켜봐. 노래가 있는 것처럼, 라디오 킬즈 라디오 스타. 허준호. 분명 모든 것이 여자고, 여자의 성기가 다 있고, 말하는 것도 여자고, 함께 티비 보고, 음식 먹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하는 것도 여자인데, 그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비밀의 고백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남자가 호모로 살아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 느낌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러 장난감을, 인형을, 여자에게 아름다운 외출복을 선물하고, 함께 쇼핑하고 하는데도, 그때 잠깐, 남의 여성성이 호몰로지, 여자에게 임해서, 목소리도 미세하게 달라진 것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중교통편이든, 작은 자가용이든 간에, 큰 자가용이든 간에, 그때부터는 플라스틱 소리가 나고, 눈에 초점이 없고, 차에서 내리는 것에서부터 기계적이며, 정해진 코드에 따라 반응하고, 복잡한 말을 하면 전혀 들을 수 없고, 그때마다 전진하고, 마치 세상에 몇 개 없는 외국 논문처럼, 아는 척 하면 그만이다 하는 태도를 내비치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도 한정적인 것이다. 그것만 계속보다 보면, 호모가 정해져 있다. 옛날 중앙일보 사장 미안. 드라마를 계속 보다가, 여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 드라마 총국의 드라마가 전부 가상 컴퓨터의 노예적 작업의 결과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인 것이다. 그렇다고, 여옥처럼, 여명의 눈동자처럼,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호몰로지라는 학문은 가상일 뿐, 어떠한 현실 연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은 모두, 기분이 흐물흐물해질 때가 있다. 그것이 다만 유사여성성이고, 남성성의 상실이고, 나상실, 혹은 상실의 시대정신,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흐물흐물해질 때를 기가 막히게 표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뭐 대단한 내용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얀 캔버스에, 식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와 같은 궁극의 형이상학 앞에서는, 전부, 우리 모두는 하라주쿠 춤을 추는 존재들인 것이다. 다만 반대로, 피부와 피부, 머리카락, 그런 것들 모두가 경화되는 현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두고 베타 영역의 호몰로지적인 순열이라고 부를 만 한 것인데, 그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액션이나, 관계의 관계, 그냥 전 세계 수 많은 완장들의 제로썸 게임, 그와 같은 것에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여성성의 불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는 호몰로지가 되어간다. 그러나 화성에서 도리어, 여성물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인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도 내가 싫어하는, 살인과 방화, 추적과 육십분, 아무튼 그런 것들에 매몰되고, 매료되는 것은, 어쩌면 그와 같은 화성에서의 여성물을 함께 발견하고자 하는 애타는 노력일 수 있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단계적으로, 호몰로지를 진행시켜서, 여성성을 유지하게 한다면 모를까, 대게의 경우, 음악과 예술, 미술과 패션, 문예 비평과 대학 영화의 공간에서, 거대한 지들에게도 원서에 질식되고, 서로 호몰로지 아는 척을 하려다보니까, 내면적인 감각이 심각하게 경화되는 현상을 낳게 되는 것이다. 호몰로지의 끝은 카니발리즘이다. 한번 헨신을 했는데, 다른 연거푸 헨신에 어려움을 겪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수학 공리적인 연역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 그러니까 오래된 정원인 것이고, 중국풍의 괴석들인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튼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반드시 야식을 먹게 되고, 야스꾸니 신사를 다녀온 다음에는, 일본풍의 한국풍의 깐풍기풍의 수사드라마를, 공포의, 스티븐 한스큉, 또한 보게 되는 것이다. 아내에게서 이제 그만 자지? 내일 출근 안해? 하는 소리를 듣고, 남자는 그런 호몰로지의 권유에 잠을 청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죽는다. 그는 죽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작가들이 고소를 당하지 않는 것은, 그들은 다만 몇 개의 요소, 몇 톤 트럭, 정명훈, 씨엔블루, 방법, 메모리즈, 그렇게 함께 보고, 섞다가 보니까, 비슷비슷한, 서로 얼굴이 구분되지 않는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찰들의 세계관과 그렇게 일치를 한다. 경찰들이 사탄과 싸울 수 없다. 경찰들도 불쌍하다. 하지만, 한자 色의 컴퍼스처럼, 이마에 그것이 박히고, 사탄이 그 끝을 잡아끄는 방향으로만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사탄적인 호몰로지인 것 같아도, 그것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일본은 수준이 항상 떨어지고, 중국은 엔트리가 없으며, 히말라야는 그냥 높은 산이 하늘이 희멀건하고, 차마고도, 나머지는 마침내 겨우 우리들의 죽음보다 나은 비존재들로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슈퍼컴퓨터가, 전쟁 중의 인간들에게 식량을 가지고 다니게 하겠는가?
슈퍼컴퓨터가, 강동식을 쳐서, 곤란하게 되니까, 고소를 당할 것 같은 위기 속에서, 유럽에도 비슷한 케이스를 만들었고, 한국 영화 판데믹이 있으니, 공조되고, 그것에 속도가 붙었는데, 사람들의 무의식인지, 아니면 좀더 속도가 강화된 계산인지 모르겠으나, 결국 유럽인들에게 지금 식량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띄우는 것이다. 그와 같은 명령, 프롬프트로 인해서, 사람들은 휴지를 사고, 보고 또 보고, 사고 또 사고 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공부를 하지 않으니, 더 이상 본질에 이르는 길을 상실하였고, 다만, 우리들 잘 모르는 히트곡 중에 있는, 어른 아이처럼, 자기들이 어째서, 사망자가 이렇게 많이 나오고, 전쟁도 아닌데, 식료품 사재기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내 여자친구는 유선형의 옷을 입으면, 오히려 호몰로지가 될 것 같아서, 겉으로도 가을 낙엽 같은 것을 입었고, 나의 마음을 상실시켰다. 그러나 여자들의 의상 순번에서는,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초콜렛 풍의 가을 낙엽 같은 것을 외칠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찔리기 때문에, 더 이상 상상력을 진행시킬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어째서 이와 같은 수학적인 호몰로지가 없었던 것일까?
오후 다섯 시 반에는, 반드시 어린이 동요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랬을 수 있다......
낮에 나온 반달은, 씨발 반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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