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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쓸쓸한 우리 국정 문학 만화

by 마음대로다 2020. 4. 13.

쓸쓸한 우리 국정 문학 만화

 

 

 



 

평생을 악당으로, 그리고 평생을 죽은 듯이 지내다가, 며느리 밥풀꽃 전상서, 다시금 평생을 예예 그리고 아니오 아니오 하면서 지내는 삶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들은 처음에는 회사원이었다. 형사 비슷한 것도 했었다. 그들이 신학을 버리고, 문학을 버리고, 그들이 미술을 버리고, 예술을 버리는 것은, 중심과 본질은 버린다는 악마의 약속 같은 것인 것이다. 눈 앞에 차가 있고, 눈 앞에 여자가 있다면, 아주 푸른 눈 산이 앞에 있다 보면, 사람들은 문학으로는 배부르지 않는 법인 것이다. 신학도 그렇다. 아무리 존재의 울림이 있고, 요구가 있다 해도, 어떤 칠궁이 있다 싶을 때, 마치 처음부터 칠궁을 도달하기 위해서, 선을 넘는 녀석들을 한 것처럼, 사람들은 나중에 이 글을 읽으면 그것이 무엇인가 싶을 것이다. 그런 티비 프로그램이 있었다. 신학을 공부해도, 목회의 간극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목회자도 문학가가 될 수 있고, 그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로부터 모임이 있다는 멋진 말도 할 수 있을 것인데, 항상 아프리카의 현실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사람이 아닌가? 아프리카는 흑인이 아닌가? 흑인이고, 사람이지 않은가? 나도 그렇다. 마음이 새까매졌다. 그래서 우리 인류가 아프리카의 아담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조금은 해석학적 인류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원래는 밤색 계열로서, 열대를 중심으로 대충 살았을 것이다. 새까매진 것은, 마음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것과 지옥이 송과선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신체 현상인 것이다. 후추를 수입하고자, 지리상의 발견을 했다 하는데, 얼마나 인구가 많고, 실험실적인 자료가 요청이 되면, 드디어 비좁은 유럽을 떠날 수 있었겠는가? 푸르른 하늘이라도 볼 수 있다면, 목말라 죽어도 좋다는 인간이 태어났겠는가? 자기들에게도 충분한 콜레라균을 얻기 위해서, 그와 같은 악마적인 지배의 구조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지리상의 발견을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악마적으로, 딱 적당히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중국적으로, 대단히 용이한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그나마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 위치가 불분명한 아프리카 서양에 있다면, 우리는 참 멀리 있거나, 희빈 장씨처럼,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할 것이다. 코스모 폴리탄들은, 금방금방 사탄의 지령을 내리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사탄의 지령을 준비된 상태에서 받을 때, 그것들의 돼지 고기 편육 같은 모임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한국말을 하는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대체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지 우리로서는, 처음에는, 단박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낮은 단계의 괴물들이, 다른 괴물들에 의해, 천사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태공조에 의해서도, 우리와 똑같이 관찰이 되고, 감찰이 되고,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힘이 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청소를 하는 것처럼, 새로 조성된 악마의 굴이, 항상 천사들에 의해 청소가 되는 것일 수 있다. 그것들이 항상 또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들이 잘살고, 뻔히 살고, 우리가 높은 층에서 한가로이 세상을 내다보는 것처럼, 그렇게 기쁘게 사는 것이다 상상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만화적인 상상력이 그렇게 하찮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해서, 승진하여서, 직장 모임이, 다른 모임이, 그리고 가족이, 그와 같은 악마의 소굴의 그림과, 디자인, 잘 꾸며진 방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나는 처음부터 마땅치 않았지만, 선을 넘는 녀석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칠궁의 여자들이 될 줄을 누가 알았는가? 칠궁이 어때서? 그렇게 나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원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과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발생하여서, 사람들이 저마다 사람의 가면을 벗고, 세상을 뛰쳐나와, 짧게 살 줄 알았던 것 같다. 그것을 계획하였던 것 같다. 원래 매개가 사탄의 것으로 쌓인 사람들은, 작은 노동에도 짜증을 잘 내고, 그것의 처음은 천사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습관적인 것이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야수와 같은 본질에 충실할 것을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본인이었다면 익숙한 얼굴이고, 서양인이었다면 일본과 서양의 오래된 관계인 것이다. 사탄의 매개에 찌든 사람은, 경제적인 불황이 닥치면, 야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준비되었는지 모른다. 판데믹은 조금도 잘 모르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내가 보지 않았던, 원전 사고 한국 영화의 제목이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팬더램이었나? 일반인들은, 아프면, 그것이 낫기를 바란다. 이렇게 아프다가, 손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야한 생각을 갑자기 많이 하고, 짐승이 되어서, 나도열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죄인이나, 살인자인 경우, 그것이 하늘의 계급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손톱만 조금 빨리 자라도,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섹스를 하면, 다만 화가가 되고, 잘 안 주는 이성에게, 남자건, 여자건, 화가 나긴 하지만, 그것이 다 부처님의 불법 아래서 어떻게 되기를 바라지만, 사탄의 매개가 평생토록 쌓인 사람은, 항상 높은 층에서 뛰어내리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일본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고, 미국 영화에도, 프랑스 이런저런 뜀틀에서도 익숙한 것이다. 섹스와 마약이 쌍을 이루면, 환상인 것이다. 그럴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 고층 아파트에 살고, 그럴 확률이 일도 없는 사람들이 전혀 다른 공간에서 마치 국정원처럼 사는 것이다. 사탄이 새를 좋아하는 것은, 중국인처럼, 약간 병적인 데가 있다. 우리는 가끔 갑갑하지만, 그들은 전염병처럼 항상 갑갑하기 때문이다. 갑갑한 것에는 장사가 없다는 우리 옛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새가슴이 되면, 주사를 맞고, 자기 가슴을 열고, 갈비뼈를 열고, 새장 속을 박차고 나와, 세상을 향해 안과 밖이 바뀌는 액션 딜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사탄은 공부할 수가 없다. 사탄은 처음에는 반드시 우등한 인간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어린 청소년들이, 공부에 지쳐, 처음으로 오르는 악마의 소굴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그와 같은 만화 속에서, 차를 몰고, 직장을 구하고, 사탄과 싸우고, 훌륭한 사람들을 친구로 삼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사탄은 티비를 보면서, 안과 밖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정의가 그렇다. 정의를 위해 달려가면, 늘 칠궁 같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영문학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들 장희빈과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그것의 유식에 의지해서, 장기를 내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것의 프로그램들이 연결되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유식은 신비하게도, 향기가 있고, 사람들에게 죽은 제갈공명처럼 영향을 미친다. 그와 같은 유식적 배경이 없는, 작가의 자유가 차고 넘치는, 강처럼 흐르는,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그와 같은 문학은 없는 것인가? 그것은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 일조. 일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까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울릉도가 있고, 제주도가 있고, 거제도가 있는데, 충무 김밥이 유명한 거제도가, 설마 그와 같은, 자유로운 문법과 문학이 유럽에는 있을 수 없다는 헌법 같은 거제도인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음악은 수준이 높다. 그리고 기성의 문법도 수준이 아주 높다. 이제는 수준 이하의 문학을 가지고, 형이상학이 왕성한, 저들에게는 다만 피직스 다음인데, 우리에게는 어느 방송국의 꽃놀이 노래잔치처럼, 다만 형태가 몹시 이상한 것인 것이다. 여자들이 거울을 앞에 두고, 아름다움의 자기장을 만들고 있다가, 사탄과 같은 남자들과 싸우고는 지지 않기 위해서, 거울을 갖고 계속 이야기하게 되고, 반드시 그와 같은 거울 단계의 형이상학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숙종의 잘못이기도 하고, 희빈 장씨의 잘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장씨가 얼마나 많은데, 장비, 장영란, 장희빈, 그리고 사람보다 못한 모든 원자에도 그처럼 장단이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높은 체계의 이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좋은 매개들로 사람들을 채우고, 오직 그와 같은 부분균질의 높은 탑을 가지고, 항상 언제 이겼는지 모르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사탄은 권력적인 자부심이 많아서, 금방, 그리고 항상, 나의 편에 서기도 한다. 그것의 패턴을 읽어내는 의무가 우리에게 어느 정도는 있는 것이다.